브런치 글쓰기(30)
한참 재밌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힘들게 느껴지거나 망설여지기도 하는 게 글쓰기인 것 같다. 조금씩 흔들릴 때마다 문제는 항상 자신의 마음가짐에 있음을 되새기고자 한다.
이 매거진 <THL 브런치 글쓰기 습작노트>에 틈틈이 글쓰기 관련 떠오른 이런저런 단상을 적어오다가 어느새 30번째 글을 올리게 되었다.
무명의 작가 지망생이 끄적이는 글이나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하겠냐마는 그냥 혹시라도 브런치스토리를 처음 시작하시는 독자(작가)분이 지금 필자의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필자의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공유하고 싶다.
물론 거듭되는 후회와 회한으로도 그 '학습 효과'는 여전히 더디지만 조금이나마 어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을 나누고도 싶다.
어쩌면 때로는 글감 때문에, 글의 테마나 토픽에, 아니면 글쓰기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나 어떤 회의감으로 혹여 "잠 못 드는" 독자(작가)분이 있다면 "거북이 보다 느린" 필자의 행보(行步)도 한 번쯤 떠올려 보실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필자가 스스로에게 늘 반복하는 자기 다짐의 일환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일 먼저 내가 진정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듯 그런 연장선상에서 저마다 큰 마음먹고 시작한 글쓰기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기를, 또한 그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일전에 다른 글에서 쓴 바와 같이, 정 어렵거나 안 되겠거든 (일정 시간을 정해두고) 가끔씩 좀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다고 본다.
필자가 최근 발행한 글 중에 "어떤 인연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평소 생각해 둔 몇 개의 에피소드와 가볍지만은 않은 테마를 글 하나에 한꺼번에 그리고 또 너무 급하게 시간에 쫓기며 발행한 것 같아 후회막급(後悔莫及)했다. 실은 그 글은 쓰기 시작하기 전에 다른 어떤 글 못지않게 오랜 시간 생각했고 이렇게 저렇게 썼다가 지웠다가를 몇 번이고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두통이 올 정도로 머리가 너무 아파와 아마 거의 포기하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글을 발행한 후 바로 취소하려다 이미 해당 발행글을 읽으신 분들도 다수 있었고 라이킷까지 하신 독자(작가)분들도 있어서 그냥 문맥상 의미전달이 모호한 표현과 오류 등을 부분적으로 다시 교정하였고 지금은 매거진 <THL 이런저런 단상 혹은 끄적임>에 [어떤 단상 12]라는 새로운 글제목으로 포스팅되어 있다.
필자가 이런 일을 겪으며 느낀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시간 운운은 핑계일지도 모르고) 어떤 글 주제에 대한 '내재화'(內在化) 부족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 내재화되지 못하거나 또 충분히 체득(體得) 하지 못한 채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좀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물론 지금 여기서는, 또 필자의 위에 언급한 그 에세이 글에서는 창작이나 창의적 허구, 예술적 상상력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 와중에, '수학능력시험 문제점' 관련 원인분석 인터뷰 중 언급된 조지은 교수(옥스퍼드대 언어학)의 지적도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아래 재인용 참조)
조지은 교수(옥스퍼드대 언어학)의 인상 깊은 분석도 짧게나마 옮겨 적어둔다 ; "...단어도 내재화가 되려면 반드시 상황과 관련짓고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출처 : 앞서 발행한 필자의 글, [수학능력시험 문제점 대해부 <교실이데아>] 중에서)
물론 이런 일로 글쓰기가 주눅 들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어떤 주제나 소재든지 온갖 다양한 방식의 '실험정신'을 갖고 접근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이 필자의 졸고 [변기도 예술이다] 중 한 대목을 여기 다시 재인용해 둔다.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전하고자 하는 이 메시지가 필자 스스로에게도 제대로 '내재화'될 때까지 거듭 각인시키고 또 계속 상기시키고자 할 따름이다.
새로운 예술적 소재를 찾으려 하지 말고 새 관점과 시각을 찾아라.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며 다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아라.
끝으로, 지난주 목요일 필자의 매거진 <THL 행복 에세이>에 발행한 졸고, [외로움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소식을 짧게 덧붙이며 이만 줄인다.
동병상련(同病相憐) :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동정하고 도움을 이르는 말. 출전은 《오월춘추(吳越春秋)》의 <합려내전(閤閭內傳)>이다.(Daum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