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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Apr 27. 2024

주목(注目)해야 할 주목(朱木)


지난 추억 속에 흠뻑 빠져 아주 어렸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내는 글을 최근 연이어 몇 편 쓰다 보니 그때 그 추억들이 마치 고구마 캐듯 고구마줄기 같은 기억의 줄기를 따라 줄줄이 엮어져 나오는 것 같다. 옛 기억을 다시 더듬어보며 지난 추억의 한 조각을 여기에도 적어 두고자 한다.




예전 이십 대 어느 여름에 학교선생님을 모시고 친구 여럿이 같이 등산을 간 적이 있었다. 우리 일행의 산행 목표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따라 솟아 있는 소백산 정상까지 등반하는 것이었다.


다른 즐거운 기억들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경험 중 하나는 바로 어렵고 힘들게 올라간 소백산 정상에서 마주한 또 다른 자연 세계였다. 잠시나마 도심에서 벗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연, 그 산속으로 걸어 들어가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이나 어떤 해방감 그 이상이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수려(秀麗)한 자연경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정상까지 등반하느라 지친 몸을 가누며 가져간 물로 목을 축이고 경치를 구경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산지기라는 산장(山莊) 관리인이 지나가다 어디서 오셨냐 물으며 인사말을 건넸다.


앞서 먼저 산 정상에 올라와 있었던 무슨 산악회 회원, 그런 등산 애호가들의 동호회로 보이는 수십여 명의 단체 무리들은 줄지어 서둘러 큰 하산길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우리 일행은 좀 더 정상 주위를 둘러볼 요량으로 그 산지기의 안내를 받으며 산 정상에서 좀 다른 길로 이동하게 되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다 우리는 바로 철제 펜스(fence)로 둘러싸인 커다란 숲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주 키 큰 거목(巨木)들이 빽빽하게 울창한 숲을 이루며 산 정상 부근에서 보던 경치와는 다르게 또 다른 장관(壯觀)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 이 숲엔 왜 철제 울타리가 따로 쳐져 있냐고 우리가 물으니 산지기는 '특별 보호구역'이라 그렇다며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무슨 휴전선 근처도 아닌데 혹시 인근에 군부대나 군사시설이라도 있나 보다 하며 좀 더 울타리 가까이 가보니 나무들이 굵고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모두 불그스레한 색을 띠고 있어 필자는 처음 접한 그 나무들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그 신기한 나무 숲을 한참 쳐다보게 되었다. 그 나무들은 바로 주목(朱木)이었다.




주목과의 상록교목. 학명은 Taxus cuspidata Siebold & Zucc.이다. 심재의 색이 홍갈색을 띠어 '붉은 나무'라는 뜻의 주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자생한다. 소백산 능선에 분포하는 주목군락과 설악산에 자생하는 설악눈주목이 잘 알려져 있다. (출처 [다음백과])


주목(朱木 Taxus cuspidata)은 "굵기가 한 뼘 남짓하면 나이는 수백 년, 한 아름에 이르면 지나온 세월은 벌써 천 년이 넘는다"라고 한다. 또 흔히 주목의 특징을 얘기할 때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 살고, 죽어서도 썩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나무"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예전 산행 갔던 그 당시에 처음 본 소백산 정상의 주목 군락은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색다른(!), 어쩌면 좀 신비스럽기까지 한 나무숲이었으며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필자에겐 지금도 생각나는 아주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그 당시 산지기가 앞서 길을 안내해 주며 친절하게 많은 설명을 해준 것 같은데 지금은 기억에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다만, 일부 몰지각(沒知覺)한 사람들이 보호종에 속하는 이 주목나무를 몰래 불법으로 벌목(伐木)하거나 채취(採取)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라고 했던 것만은 기억난다. (더구나 이 소백산 주목 군락 숲 내에 자생하는 어린 주목나무들은 더욱 피해가 크다고도 했다.)


왜냐하면 아주 작은 주목나무들은 고급 분재(盆栽 Bonsai)로 팔리고 불법으로 벌목한 나무들도 바둑판이나 장기판용 또는 다른 (조각) 장식용 목재 소재 등으로도 고가로 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안타까운 하소연을 들었기 때문이다.


수백 년 넘게, 어쩌면 천년 넘게 살아온 수령(樹齡)을 가진 주목나무를 고작 바둑판이나 장기판, 목재 장식품 몇 개 만들려고 불법으로 베어 잘라내고 죽여버린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좀 찾아 들여다보니, 주의할 것은 주목나무, 또 그 열매와 씨앗이 함유하고 있는 치명적인 독성물질 때문에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매우 유독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역으로 현대의학에서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항암제 소재로의 활용과 그와 관련된 새로운 연구개발은 상당히 고무적(鼓舞的)이다고 한다. (물론 그런 용도로 벌목 또는 채취되는 피해도 크겠지만)




주목은 아스라이 먼 3억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자리를 잡아오다가, 한반도에서 새 둥지를 마련한 세월만도 2백만 년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몇 번에 걸친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자자손손 삶을 이어왔다. 어릴 때부터 많은 햇빛을 받아들여 더 높이, 더 빨리 자라겠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아주 천천히 숲 속의 그늘에서 적어도 몇 세기를 내다보는 여유가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성급한 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어느새 수명을 다할 것이니 그날이 오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하루 종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주목이 주는 메시지는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하다. (출처 [우리 나무의 세계 2], [다음백과])


최근 산림훼손과 지구온난화 등으로 기후변화에 민감한 주목나무의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을 이루는 소백산, 태백산 등에 주목 자생지가 있는데 주목 자생지 중에서 소백산 주목 군락이 그나마 상태가 제일 좋다고 한다.


끝으로, '자연은 후손들에게 빌려온 것'이라는 명언을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지구의 자연환경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의 삶의 질을 좌우함과 동시에 우리 인류의 미래 존속(存續)을 위한 마지막 보루(堡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깊은 산속 나무숲에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다 귀하고 소중함을 잊지 말자.


“소백산 정상의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출처 [다음백과])














백두대간(白頭大幹) :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의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 태백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으로 우리나라 땅의 근골을 이루는 거대한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2009년 3월 5일자로 개정된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백두대간이라 함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 · 설악산 · 태백산 · 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Daum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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