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Happy Letter May 16. 2024

거짓말에 관하여 (두 번째)


앞서 발행한 [거짓말에 관하여(첫 번째)]라는 글로 독자분들의 원성(怨聲)만 산 것 같다.


THL작가님, '선의의 거짓말'인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도 자라나는 꿈 많은 어린아이들의 기대를 깨지 않기 위해 "산타 할아버지"가 오늘 밤에 다녀가실 거야라는 둥, 우는 아이에겐 선물 안 주신다는 둥 하기도 했잖아요!

그래서 "그럼, THL 작가님은 평소 거짓말 한 번도 안 하고 살아요?"라고 묻는 분을 위해서라도, 또 그 "소소한(?) 거짓말"을 한번 살펴볼 요량으로 두 번째 글에서는 "좀 다른 의미의 거짓말"에 대해 써보려 한다.

 



우리는 살다 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예의상으로도)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또 마찬가지로 상대방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야 할 때도.


누가 같은 방향이라 차에 태워준대도 그냥 남에게 신세 지기가 싫어서 “어디 들릴 곳이 있다”며 혼자 따로 가겠다고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살아가다 보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예의상" 괜찮다고 (거짓)말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로 많을 것이다.


누구에게 언제 어디서 잠깐 만나자고 전화 연락했더니 상대방은 몸이 안 좋다거나 다른 바쁜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실제 몸이 안 좋거나 무지 바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아, 지금 이 사람은 날 만나기를 꺼려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그냥 나랑 만나기가 선뜻 내키지 않거나.(아니면, 그의 인생사(관심사)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다는 말은 직접적으로 못 하고 다른 "거짓말"로 애써 둘러대는 것이다. 정말 나를 만날 의향이 있다면 (그가 제안받은 그날은 시간이 안되더라도) 다른 가능한 일정은 이러이러하다 제시하며 바로 되물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가장 흔히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나중에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 "다음에 언제 같이 술 한잔 하자!"이다. 우리는 다들 이제 이런 말들이 으레 헤어지며 하는 그냥 "Goodbye!"에 다름 아니다고 잘 알고 있다.(왜냐하면 정말 나랑 같이 밥 먹으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만난 바로 그 자리에서 특정 일시와 장소 등 약속을 잡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소 자주 듣고 또 하는 "소소한 거짓말"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어쩌다 무슨 판매상이나 현장 판촉하는 외판원(또는 콜센터의 전화상으로든) 등을 접하게 되면 끈질긴 구매(계약) 권유를 거절하기 위해 저마다 둘러대기 같은 "거짓말"을 좀 해야 한다.(특히 좀 어려운 인간관계 속 지인이 권유할 때는 더더욱!)


대개 가격이 좀 그렇다(비싸다) 하면 바로 D/C 00% 이야기를 꺼내거나 무이자 할부 결제 또는 추가로 특별 사은품을 덤으로 무상제공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색상이나 디자인이 아니어서 운운하면 (다른 색상과 디자인도 곧 공급할 예정이니) 일단 써보시라며 물건을 맡기듯 두고 가는 경우도 있다.


특별히 교육받고 잘 단련된 (필드 외근직이든, 콜센터 내근직이든) 영업사원을 거절하고 물리치기는 좀체 쉽지 않다. 이럴 때도 우리는 불가피하게도 "소소한 (거짓)말"을 좀 해야 한다.


내가 거절하는 것이라는 형태로 대응하면 계속해서 왜 제품(계약)이 마음에 안 드는지, 또 왜 이런 좋은(?) 조건[가격]의 기회를 마다하는지 일일이 다 논리적으로 변명하기가 어렵다.(영업사원은 이미 고객이 어떤 거절 반응을 보이든 고객반응 유형별 추가 후속대응방안을 손에 다 들고 있고 또 이어서 그다음 허를 찌르는 반문을 고객에게 던질 준비를 다 하고 있다.)


이럴 경우 (잠재) 고객으로서 제시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 본 바로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거나 결정하기가 여의치 않고 어려울 때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 핑계(?)를 대는 것도 방법이다고 본다. "우리 남편이(와이프가) 싫어한다" 내지는 "우리 와이프(남편)한테 한번 물어봐야 한다"라고 답해 보면 어떨까 싶다.


바로 면전에 같이 서있는 (혹은 지금 유선상 통화 중인) 나를 어떻게 설득하거나 혹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자리에 없는 우리 남편 또는 우리 와이프를 (아무리 뛰어난 베테랑 영업사원이라 해도) 설득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에겐 앞서 언급한 이 모든 사사롭고 소소한 것[거짓말]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찾아온다.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시한부'(時限附)라는 판정을 전해 들은 환자의 가족 입장이라면 이들은 과연 어떤 (거짓)말을 병상의 환자에게 전하는 것이 최선일까?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까? 저마다 가족회의를 통해, 혹은 중병에 걸려 연일 사투를 벌이며 고생하고 있는 환자의 평소 소망에 따라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환자에게 전해야 할까? 있는 사실 그대로 알려준다고 가정하더라도 가족들이 환자에게 알려주는 그 방법과 시기를 두고도 우리는 또 한 번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원래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우리는 (때로는 본의 아니게) 크고 작은 거짓말들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 사회공동체 속 '선의의 거짓말'은 어찌 보면 우리들 각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물론 그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도 그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일상생활 속 '체면치레'가 좋은 뜻으로 '예의'의 범주인지 아니면 또 다른 '거짓말'의 일종인지는 상황에 따라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어떤 경우엔 분수에 맞지 않게 사양할 줄 모르고 넙죽넙죽 다 받는다며 겸손하지 못하고 무례(無禮)하다고만 할지도, 아니면 오히려 사람이 솔직해서 좋다고 할지도.


따라서 그 체면치레 같은 "예의상 거짓말"도 어쩌면 옷차림처럼 '티피오'(TPO : 때(time), 장소(place), 경우(occasion))를 함께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또한 개개인의 성향과 저마다의 가치판단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얀 거짓말 :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

화초(花草) : 1. (기본의미) 꽃이 피는 풀과 나무. 또는 관상용의 모든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실용적이지 못한 노리개나 장식품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다음 [어학사전])


매거진의 이전글 거짓말에 관하여 (첫 번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