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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May 22. 2024

부부


필자가 조금이라도 시골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년시절 자주 찾아간 시골 친척집들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벼농사 밭농사하시던 시골 외갓집은 어릴 때 여름방학 때마다 자주 가곤 했는데 또래 사촌들과 노느라 며칠씩 머무르기도 했었다.


시골 외갓집 마당 한편엔 깊은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을 어떻게 찾았을까 늘 궁금했다. 바로 그 자리 땅밑에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 당시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알아냈을까? 집을 짓고 우물을 찾았을까, 우물을 찾고 나서 그 자리에 집을 지었을까? 물이 나올 때까지 한 우물을 계속 팠을까, 여기저기 파보다가 그 자리에 물을 발견한 걸까?


어쨌든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면 늘 찰랑찰랑 물이 차던 그 우물도 말라버려 한동안 다른 곳에서 물을 길어오느라 고생해야 했다.


긴 가뭄 끝에 기다리던 단비가 내리고 나면 그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마른 우물물도 빨리 차오르기를 바랐다. 하지만 우물 두레박을 내려 조심스레 끌어올려 봐도 그 우물은 한참을 기다려야 아주 조금씩 물이 차곤 했다.


도시에선 수도꼭지만 틀면 철철 나오는 물이 농사짓는 시골에선 그만큼 귀하고 소중하다. 오랜 가뭄에 말라 갈아진 논바닥을 보는 농부의 심정은 그야말로 속이 타들어갈 정도로 애타게 가슴 아픈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보기 좋은 것 둘 중의 하나가 어린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가문 논에 물 들어가는 거 보는 것이라는 말도 예전 그 무렵쯤 들은 것 같다.


어느 여름방학 때였다. 며칠 거세게 내리던 장맛비가 그치고 나니 연일 찌는 듯한 폭염이 기성을 부렸다. 한여름 땡볕에도 하루 종일 농사일로 구슬땀 흘리시던 외삼촌은 초저녁에 집에 오시자마자 서둘러 시원한 우물물로 등목을 하시곤 했다.


“앗 차가워! 아 좀 천천히, 조금씩 부어!”


저녁상을 준비하시던 외숙모는 이 사람 엄살도 참 심하다며 맨등을 한 대 가볍게 치며 갓 길어 올려 얼음처럼 차가운 우물물을 등에다가 두레박 채로 갖다 부었다.


어제(5월 21일)가 ‘부부의 날’이었다고 한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될 만큼 무심한 기념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모토(motto)가 없더라도 부부는 늘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도 다 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런 자족(自足)도 있겠지만 둘이 같이 사는 사람들도 다 그 이유가 있고 그런 서로 상호 간 충족(充足)이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한 배우자의 맨등에 시원한 우물물을 부어주는 그 모습, 그 정겨운 웃음을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는 내내 그 여름 저녁은 가마솥 밥 익는 냄새만큼 구수하고 넉넉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생 여정을 함께 하는 반려자인 부부는 한 날 한 시에 같이 이 세상을 떠나지는 못하겠지만 먼저 떠나는 혹은 떠나보내는 그날까지 서로를 보듬어 줄 인생의 동반자이다.


나이 들어 힘없고 거동이 불편할 때, 외출하려 허리 굽혀 신발 신을 때라도 옆에서 잠시 손 잡아줄 수 있는 사람, 계단 내려갈 때 서로 조심하라며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갈 때마다 흔들리는 팔, 떨리는 손 옆에서 꼭 잡아줄 수 있는 눈물 나게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 바로 부부가 아닐까 싶다.













등목(-沐) : 팔다리를 뻗고 바닥에 엎드린 사람의 등에 물을 끼얹어, 몸을 씻고 더위를 식혀 주는 일.

생로병사(生老病死): 사람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큰 고통.(다음 [어학사전])

부부의 날 : 평등하고 민주적인 부부문화를 만들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 매년 5월 21이다. 1995년 민간단체인 부부의 날 위원회가 표어를 내걸고 관련 행사를 개최한 것에서 시작되어, 2001년 청원을 제출하면서 마침내 200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5월 21일은 가정의 달 5월에 두 사람(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출처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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