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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May 26. 2024

꼭 바라는 소원 한 가지


가정의 달인 5월엔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까지 기념일들이 많다 보니 음력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관련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특정 종교 신자(信者)인가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가 매년 12월이면 축복(祝福)하는 예수탄생일(성탄절) 행사나 떠들썩한 분위기에 비하면 - 일부 대형사찰(寺刹)에서 거행하는 기념행사를 제외하면 - 상대적으로 '부처님 오신 날'은 산속(?)에서 소박하고도 조용하게 지나가는 편인 것 같다.


그나마 올해는 DJ ‘뉴진스님’ 인기 덕에 "불밍아웃"에 뛰어든 MZ들도 많다는데 깊은 산속에 갇혀 있는 듯한 종교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이런 시도는 젊은 세대들로부터도 불교(佛敎)라는 종교가 하나의 힙(hip)한 “문화”로 새로이 주목받는 것 같아 보인다.


처음에 언뜻 듣기엔 어떤 개그맨이 그저 '뉴진스님'이라는 캐릭터로 K-Pop 최신 아이돌그룹 '뉴진스'의 세계적인 인기에 편승(便乘)하려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뉴진"(New 進)은 엄연히 조계사 오심스님으로부터 정식으로 받은 '법명'(法名)이라고 한다.


일부 불교 국가에서는 심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는데 어쨌든 일시적 현상에 그치고 말지 그 추이는 향후 지켜볼 대목이다.




불교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종교가 원래 내세(來世)를 믿는 종교인가 또는 기복(祈福) 신앙인지 여부, 해탈(解脫)을 추구하는 철학인지를 논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딱히 종교적인 측면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예전에 산행(山行)을 하던 중 그윽한 풍경(風磬) 소리는 다 어디 가고 요란한 사람들 웅성대는 소리가 크게 나는 산사(山寺) 앞을 지나게 되었다. 멀리서 보니 그 사찰(寺刹) 마당에 줄줄이 형형색색 연등(燃燈)들이 촘촘히 매달려 있었는데 무슨 연등행사를 하는가 싶어 잠시 산행을 쉬어갈 겸 일행들과 들린 적이 있었다.


수백 개가 넘어 보이게 빼곡히 매달린 연등에는 모두 저마다 리본이 달려 있고 그 많은 리본에는 손글씨로 쓴 소원(所願)이 적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미 앞서 도착한 다른 단체 산악회나 동호회 회원들도 시끌벅쩍하게 저마다 펜으로 리본에 뭔가를 적기 위해 분주했다.


그 절 시주함에 자발적으로 ‘시주’(施主)를 조금 하고 리본에 손글씨를 적어 매다는 식이었다. 필자도 그 리본 하나를 얻을 요량으로 그 단체 무리들을 헤집고 지나가다 보니 웅성웅성하는 말이 들렸다.


"야, 너는 뭐라고 적었어? 한번 보자, 뭐 적었어?"  

"안돼, 안 보여줄 거야!"


그 순간 아, 소원 적는 것도 옆에 사람 베껴 적는가 했다. 아니면 남의 소원이 그렇게 궁금한가? 옆에 누가 어떤 소원 적는지 힐끗힐끗 쳐다보며 베껴 쓸려고 하지 말고 자기 소원이나 잘 적고 또 잘 빌면 될 텐데 하고 생각했다.


연등에 목숨 걸듯 "소원리본"을 거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일행 중 몇 명도 리본에 손글씨를 쓴 후 관리하시는 스님들과 함께 연등에다 같이 매달아 걸었다. 우리가 스스로 이루지 못할 (하지만 이루고 싶은) 그 소원 딱 하나만을 적은지라 사람들은 저마다 간절하고도 흐뭇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으리라.


빼곡히 매달린 연등을 구경하며 지나가다 보니 필자도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 연등에 매달린 "남들의" 소원리본을 하나씩 읽어보게 되었다. 조금 전에 리본에 소원을 적으며 옆에 쓰고 있는 사람 빼낀다고 뭐라 한 자신은 까마득히 잊은 채로.


천천히 걸으며 고개를 높이 들어 하나하나 읽어보니 삐뚤삐뚤 급하게 갈겨쓴 글씨체도 있고, 정갈하게 가지런히 쓴 글씨체도 있었다. 극락왕생(極樂往生) 소원성취 시험합격 사업번창 대박기원 무병무탈(無病無頉) 등도 있었고, 돈 많이 벌고 부자 되게 해 주세요, 또는 연애나 결혼을, 또 출산이나 승진, 출세를 기원(祈願)하는 글들도 보였다.


그런데 점차 연등을 따라 발걸음을 옮길수록, 그 리본을 따라 하나씩 읽을수록 시험합격이나 부자, 사업성공, 승진, 출세보다는 "우리 가족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쓴 소원글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표현은 달라도 아프지 않게 건강을 기원하는 소원 문구가 많이 눈에 띄는 것을 보고 (물론 거기에 있는 연등 리본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아, 대개 사람들은 이 정도로 건강에 걱정 근심이 많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처님 오신 날'은 불교 최대의 명절인 종교 기념일이고 법정 공휴일이다. 하루를 쉬면서 우리가 이 날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지는 (불교이냐 다른 종교 신도이냐 여부와 저마다의 그 신앙과 믿음을 떠나) 모두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사찰 마당의 연등에 소원, 그 기도의 글귀를 적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엿보는 것은 어쩌면 나약하기 그지없는 우리 인간의 한 단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또한 그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같은 인간으로서 어떤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단지 그 고통이다. 아무도 죽지 않게 해달라고 빌지는 않았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살게 해달라고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비는 사람들이 많듯이 병들어 아파하며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병들어 아파하며 고통받는 가족을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꼭 바라는 딱 하나의 소원을, 우리가 스스로 이루지 못할 (하지만 이루고 싶은) 소원 딱 하나를 적을 수 있다면 독자(작가)분들은 무엇을 적고 싶으신가?


'영생'(永生)이라고 적지 않고 "우리 가족 제발 아프지 않게 해 달라"라고 간절히 비는, 그 숱한 연등에 매달린 소원리본 주인들의 그 기도와 심정이 절실히 그리고 애달프게 와닿는 하루였다.













시주(施主) : 승려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다음 [어학사전])

부처님 오신 날 : 석가모니의 탄생일. 음력 4월 8일로 사월 초파일 또는 석가탄신일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기념일 중 가장 큰 명절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기념법회를 비롯하여 연등놀이·관등놀이·방생·탑돌이 등이 행해진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인도 등지에서도 이날을 축하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출처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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