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 리더십이란 말을 싫어한다

최고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by 일구삼

나는 아버지 리더십이란 말을 싫어한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어서인지 본인들 딴에는 좋게 표현하는 말일 텐데 좋게 들리진 않는다. 어느 인터뷰에서 누군가 아버지 리더십을 지향한다는 표현을 읽으면 내 머릿속엔 대충 이런 이미지가 그려진다. 조금 꽉 막혀있고, 가부장적이고, 팀과 선수들을 사랑하는 건 맞지만, 때로는 애정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러나 조금 애잔하기도 해서 대놓고 욕할 수는 없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아버지 리더십이란 말을 들었을 때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까? 알 수 없지만, 유서 깊은 유교 사회에서 그 말만으로 어느 정도의 권위를 쉽게 취득한다는 점에서 역시 별로다. 실력과 인품으로 존중받을 생각을 해야지 대충 아버지란 말로 무마하는 건 멋지지 않다. 어이없는 작전을 해놓고 아버지 리더십 어쩌구 하는 날엔 진짜 더 안 멋있다. 술 취한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와 전혀 존중받지 못할 행동을 하면서 '어디 아버지한테!' 하는 것 같다. 그런 흑역사는 내일이 되면 본인도 깨닫기 마련이니 여러 감독들도 사실은 본인들이 진짜 '감독'으로 인정받는 방법이 뭔지 다 알 거다.


그러니까 분명 우리가 사회에서 만난 그 수많은 남자 어른들도 이제는 알겠지. 본인이 과거에 했던 '딸 같아서'이라는 발언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때때로는 따뜻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으나 그 시대의 '딸' 발언은 대상을 어리고, 약하고, 훈육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걸 드러낼 뿐이다. 그러니 딸이고 아들이고 뭐든 그런 건 집에서나 찾고 새로운 리더가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친구 리더십이 훨씬 나아 보인다. 친구라면 기본적으로 동등한 관계이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정도로 신뢰가 깊은 관계니까.


이제는 21세기.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를 꽤 많이 취득한 것 같다. 암,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살다 얼마 전 타 구단의 감독님이 잘렸다는 기사를 봤다. 헉. 너무 놀람과 동시에 이해가 안 되다가 갑자기 너무 화가 났는데 이건..., 공인가 사인가? 끝끝내 구단의 성적을 올리지 못해 프런트로부터 경질당했다는 게 기사의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시기가 너무 극단적이다. 시즌 중에 갑자기 감독을 바꾸다니, 그것도 경기를 마친 직후 통보하다니. '내일부터 당신은 출근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꼴이라니. 유교 사회 운운하며 비판한 게 방금 전인데 "동방예의지국에서 어딜!"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상한 마음에 추후 나오는 기사들을 찾아 읽다 보니 이제는 전 감독이 된 감독님의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거기에서 그 감독은 그렇게 말했다. "선수들이 다들 울었다. 나도 아기처럼 울었다. 우리는 함께 울만큼 서로 아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선수 한 명 한 명을 내 아들처럼 여겼다." 그야말로 아버지 리더십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니지만, 역시 안 멋있지만, 그래. 그래도 그들이 말하는 아버지 리더십의 정체는 알겠다. 본인의 아들에게 그러하듯, 최고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선수의 밝은 미래를 그렸을 마음. 우리 모두 우리를 낳고 길러준 사람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찡하니까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 감독님도 분명 그렇게 선수들을 대했을 것이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른이 되어 잘 익어가는 과정을 우리는 '홀로서기'라고 부르곤 한다.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행동과 결과에 책임을 지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다 큰 어른인 선수들에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 수 있겠지만, 이별 앞에서는 어른이든 아이든 하등 상관없고 대신 성숙의 기회도 똑같이 온다. 이 이별이 좋은 이별이 되려면 역시나 잘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혼자서도 잘 서고, 잘 달리고, 잘 해낸다고. 그럴수록 부모님 품은 점점 멀어진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고 애처로운 얼굴은 숨길 수가 없지만 그대로 무너지는 것만큼 별로인 게 없다. 그러니, 이제는 비상할 때다. 아주 높고 멀리! 그럴수록 영영 더 멀어지겠지만 그래도.




*한화 이글스 수베로 감독은 이번 달 12일에 경질 당해 한국을 떠났다. 인터뷰에선 감독과 선수들이 어떤 유대관계를 맺어왔는지 느껴진다.

[단독] 한화 수베로 감독 단독 인터뷰 “구단 결정 존중한다”…모레 출국 예정 (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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