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린이의 야구장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한 팀이다

by 일구삼

5회 이후 클리닝 타임은 거의 모든 구장에게 이벤트의 시간이다. 이 구단의 구장에 찾아와줘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여러가지 이벤트를 통해 선물을 준다. 구단과 스폰서십을 체결한 여러 브랜드의 상품이나, 무료 경기 관람권, 유니폼 등이 상품이 된다. 이러한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요건은 해당 구단의 '홈'관중일 것. 하지만 사실 그 중에서도 어린이를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벤트에 참가하는 관중은 화면을 통해 구장 내 중계된다. 화면을 쳐다보면 거의 여지없이 어린이의 얼굴이 나오고 있다. 어제도 답답한 경기 중 잠깐의 클리닝 타임에는 깜찍하게 유니폼을 차려입은 어린이의 얼굴이 나왔다. 실시간으로 구장 내 열이 올라있던 관중들의 심기가 서서히 누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그 이후에 화면에 중계되는 어린이가 풀어야하는 문제는 꽤 어려워서 다같이 정답을 쩌렁쩌렁하게 외치기도 했다. 내 앞에서 3번!!!!!을 죽을 듯이 외치는 그 아저씨는 아까까지 자기팀 선수에게 욕을 그만한 목소리로 하던 사람이었다. 어린이의 힘이란... 다행히 그 어린이는 답으로 3번을 말하고 선물을 받았다.


야구장에서 어린이는 조금 특별하다. 매우 환영받고, 맘껏 실수한다. 항상 우선시되고 모두가 반긴다. 귀여워서 그렇다기엔 그렇지않은 곳이 훨씬 더 많이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파울볼은 물론이고, 이닝 종료 후 외야수가 관중 석으로 던지는 공도 어린이의 차지다. *우리팀 외야수는 수비를 나갈 때 미리 어린이들과 함께 온 보호자를 찾아둔다고 말했다. 공이 남았을 때 언제든지 던져주기 위해서다. 본인이 직접 공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나이가 된 어린이들은 직접 손에 야무지게 글러브를 끼고 온다. 친구들과 함께 공을 받기 위해 우르르 몰려다니는 어린이들을 찾아보기도 쉽다. 그러면서 크게 떠들고 장난치는 모습도. 아주 갓난 아기가 보호자 품에 안겨 야구를 멍하니 보는 장면도 종종 중계 화면에 비친다. 초등학교 야구부의 단체 관람도 잦다. 또, 실제 경기를 하고 있는 아빠를 보러 오는 아기들도 있다. 그야말로 야구장은... 대어린이의 공간이다.


어쩌다가 이런 문화가 자리잡았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비교적 아이가 있는 가정의 모습에 익숙한 중년분들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어떻게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도 어린이를 반길 줄 알았을까.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를 비롯한 내 세대는 어린이에 대해 그렇게 열려있지 않다.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닌데 친밀하지 못하다고 해야할까. 우리들은 어린이를 예의있게 대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친하게 지내거나 반길 줄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노키즈존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비혼 결심을 하게 되면서 점점 더 아이들과 멀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야구장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게 참 신기한 부분인데, 나조차도 야구장을 다니면서 조금 달라졌다. 어린이들과 나 사이에는 우선..., 조금 전우애같은 게 있다.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느낌. 그것도, 아주, 전쟁같이 응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전투에 나온 전사다. 어린이들이 옆에서 우씨! 하면 나도 아오! 하는 것이다. 공통의 적이 있으면 당연히 내부의 결속력은 끈끈해진다. 때문에 우리가 같은 팀의 팬으로 만난 이상 그들과 나는 친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어린이, 성인으로 나뉘어지지 않는 하나의 팀이다! 또 한가지는 그들에게 은근한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 특히나 자신의 초등학교 유니폼을 입은 유소년 야구단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은 모두 은밀한 눈빛을 보낸다. '커서 우리팀에 입단하거라' 하는 훈훈한 눈빛을. 커서 우리팀에 입단하는 선수로 장성하게 자란다면 미래 나를 위한 영웅이 되어주는 건데 반기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받을 뻔한 파울공을 어린이가 가로 채 가도 '슈퍼캐치를 할 수 있는 재목이구나...', '커서 우리팀 외야를 책임질 슈퍼스타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행동이 용서된다. 야구장에 가서 살펴보면 모든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그런 훈훈한(사실은 약간 맹목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은 꽤나 효과적이어서 나같은 비관적인 어른에게도 잘 통한다. 나는 이제 sns에 올라오는 어린이 사진에도 훈훈한 눈빛을 보낼 수 있는 어른이 됐다. 걸핏하면 노키즈 존을 내세우는 카페 사장님들에게도 이 방법을 권하고 싶다. 어린이가 식기를 망가뜨리면, '식기가 맘에 들지 않아 깨뜨리다니.. 예술가가 될 모양이구나..'하고, 계단을 소란스럽게 뛰어내려가면 '다리가 튼튼하니 육상선수가 될 모양이구나...'하기를.


사실 그전에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 팀임을.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정후 선수는 수비교체 시에 싸인볼을 외야 관중에게 선물한다고 했다. 우선순위는 단연 어린이들! 이후로 경기가 시작되기 전 공을 받으려고 글러브를 끼고 모여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종종 중계된다.

https://youtu.be/sDexWLIm4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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