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방 안으로 어른거리는 햇살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전날 꿨던 악몽 탓에 뒤척이느라 몸은 찌뿌둥하기만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챠키 언니는 벌써 이부자리를 말끔히 정리하고 나간 뒤였다. 밖으로 나가자, 모두 일찍 일어나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평소보다 활기차 보였다.
아침을 먹는 내내 다들 말이 없었다. 주인 할머니가 늘 하시던 일상적인 이야기에도, 평소와 달리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저씨는 자꾸만 숟가락을 떨어뜨렸고, 언니는 끊임없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칼은 다리를 떨었고, 한점은 초점 없는 눈으로 밥알을 세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아저씨와 칼은 등산을 갔고, 언니는 방 안에서 부스럭거리며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점은 벌써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익숙해진 동네를 천천히 한 바퀴 돌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뭉게랑 구름이, 그리고 몽실이와도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녀석들은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처럼 꼬리를 흔들며 재롱을 부렸다. 나는 왜인지, 그들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깊은 밤, 어느덧 어둠이 짙게 깔렸다. 몽실이는 오늘따라 졸립지도 않은지, 또랑또랑한 눈으로 활기차게 움직였다. 나는 그런 몽실이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슬슬 갈까?”
향수 아저씨의 음성이 정적을 깨며 또렷하게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흠칫하며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언니와 칼도 마찬가지였다.
불빛 하나 없는 밤, 바다를 마주보고 일렬로 선 우리는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거대한 바다 앞에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다. 저 시커먼 바다 깊숙한 곳에 뭐가 있을지 상상하니 온몸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낮이라면 모를까, 밤에 보는 바다는 절대 낭만적이지 않았다. 용왕이나 인어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물귀신이라면 또 모를까.
"이렇게 죽으려니, 허무하네요."
한점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동안 남들이 내게 함부로 던진 말을 그대로 믿었다. 쉽게 좌절했고, 쉽게 실망했고, 그리고 쉽게 포기했다. 지금 와서 가장 후회되는 건, 바로 그런 순간들이었다.
그때, 갑자기 칼이 억울해 미칠 것 같다는 듯이 외쳤다.
"이렇게는 억울해서 못 죽겠어요. 왜 잘못한 인간들은 따로 있는데, 정작 피해본 제가 죽어야 하죠?"
"나도 억울해. 평생을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좋은 엄마가 되려고만 애썼네.
그마저도 한번을 인정 못 받아봤어. 나로는 한번도 살아보지 못 했던 거야. 이렇게 영영 가버리면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하잖아."
말을 마치자마자, 챠키 언니가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저도요. 그동안 다른 사람이 함부로 내뱉은 말만 귀담아 듣고, 정작 날 제대로 믿어준 적이 한번도 없었네요."
내가 꺽꺽, 울음 섞인 소리를 내며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옆에 있는 언니를 그대로 끌어안았고, 우리는 같이 울음을 토해냈다.
머릿속에선 가족들의 다정한 모습이 하나둘 떠올랐다. 밥상을 차려주던 엄마, 같이 놀러가자던 아빠, 물건을 챙겨주던 언니.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챙겨주었다. 그런 가족들 마음도 몰라주고, 나는 항상 투덜대기만 했다.
"근데... 죽는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나요?"
칼이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말하자, 한점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어차피 결국엔 죽게 되죠. 미루고 싶어도 미룰 수 없는 때가 오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챠키 언니와 내가 흐느끼고 꺽꺽대며 우는 소리, 그리고 파도가 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어느새 내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안그래도 찬 바람이 젖은 얼굴에 닿으니, 더 차갑게 느껴졌다.
"살아있는 동안 살고 싶어. 죽기 전에, 내 인생 한번 살아보고 싶어."
울음을 그친 내가 눈물범벅인 채로,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말을 내뱉었다.
"이젠 어느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아. 잘난 사람, 멋진 사람, 좋은 사람 다 상관없어.
그저 딱 한 사람, 나로 살아보고 싶어."
챠키 언니가 흐느끼면서도, 비장하게 말했다.
"죽더라도 이렇게는 죽고 싶지 않아요. 이런 비극적인 결말로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다고요."
칼은 이를 악물고, 누군가를 향해 이를 화를 내듯 소리쳤다.
"이대로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한점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의 나라 문턱에 다다라서야, 여행자들은 비로소 깨달았어요.
자신들이 진짜 원했던 건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저, 헌나라에 더는 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죠.
이상하게도 향수 아저씨는 아까부터 아무 말이 없었다. 꼭 뭐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저 멍하니 넋을 놓고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첨벙첨벙-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바다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어? 아저씨!”
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우리는 다급하게 아저씨를 향해 달려가 말렸다.
“놔, 이거 놔!”
하지만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뿌리친 채, 물속으로 걸어들어갈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아저씨의 눈빛은 확고하게 빛나고 있었다.
“난 살기 싫어. 그만 갈 거야.”
평상시와 다른 아저씨의 모습에 다들 당황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한점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저씨를 말리느라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저씨!”
적막한 바다에서 여러 사람의 날카로운 외침이 크게 울려 퍼졌다. 우리는 아저씨를 잡아당기며 말렸다.
“남겨질 가족들 생각을 해야죠. 아들이랑 딸도 있다면서요.”
챠키 언니가 달래는 투로 말했다.
“흥 칫, 소 닭 보듯 하는게 무슨 가족. 가장 노릇 못하고, 어차피 짐이야 짐! 가족도 다 필요 없어.”
“이대로 죽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칼이 안타깝다는 듯이 외쳤다.
“사업이 쫄딱 망했다고. 네들이 사업 망해봤어? 난 이제 아무것도 없어.
네들은 젊기라도 하지. 난 나이도 많아. 갈데도 없다고.”
“아저씨 아직 젊어요. 계속 도전 해봐요.”
내가 기운을 불어넣듯 크게 외쳤다.
“사업 망해도 잘 사는 사람들 많아요.”
한점이 다정한 투로 말하며 거들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동요하는듯 보였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나둘 아저씨를 말리려 몸에 댔던 손을 뗐다.
하지만 아저씨는 이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다들 잘 살아. 안녕."
그리고는 바다를 향해 쌩하니 달려가버렸다.
“아저씨!”
애가 타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며, 아저씨를 뒤쫓았다.
“사업이고 가장이고 다 싫어. 나 엄마 보러 갈 거야. 엄마! 보고싶어! 나도 데려가줘!”
아저씨가 달리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또다시 아저씨는 바다 속으로 걸어들어 가려고 했고, 아저씨를 말리다가 우리 모두 뒤엉켰다. 누군가는 팔에 밀려 넘어지고, 누군가는 물에 빠졌다. 아저씨의 팔에 밀쳐진 내가 다이빙 하듯 얼굴부터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치듯 빠졌다. 눈과 코와 입으로 바닷물이 들이닥쳤다. 눈이 따갑고 코가 시큰하고 입안이 짬쪼름했다.
함께 힘을 합쳤지만, 이상하게 네 사람이서 아저씨 한명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저씨의 몸은 어느새 허리까지 잠겨 있었다. 우리가 밀리자 발을 동동 구르던 챠키 언니가, 아저씨의 팔뚝을 꽉 물었다. 그걸 본 나는 흠칫했지만, 이내 따라서 손목을 물었다. 그렇게 한밤의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더니, 경광등 불빛이 번쩍이며 경찰차 두대가 등장했다. 무전기를 타고 말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뭐라고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경찰관 두 명이 우리를 향해 후레시 불빛을 비추고, 호루라기를 불며 다가왔다.
갑자기 강한 후레시 불빛이 비추자, 지금껏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눈이 너무 부셔서 자연스레 눈앞을 팔로 가렸다. 갑작스런 경찰의 등장에 모두들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아저씨는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우리 앞에 선 경찰은 슥 둘러보다, 마지막으로 목 놓아 우는 아저씨를 보더니 흠칫 놀랐다. 하긴 다 큰 중년 남성이 저렇게 우는 건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경찰관 한명이 말했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 사람들끼리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여럿이서 한사람을 바다로 끌고 가려 한다고요.”
“네? 뭐라고요?”
챠키 언니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나도 내 귀를 의심했고, 다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경찰의 말인 즉슨, 지나가던 행인이 어둠 속에서 우리가 벌이는 실랑이를 보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보아하니, 우리가 아저씨를 말리는 모습을 누군가 보고 오해한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 그 정반대에요. 저희가 물에 빠지려는 아저씨를 말린 거라고요.”
한점이 억울함을 강하게 내비치며 말했다.
나는 어이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 살짝 헛웃음이 나왔다. 시간을 되감아서 동작을 거꾸로 돌리는 영화가 떠올랐다.
나는 따끔거리는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며, 우리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흙투성이에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몸 여기저기엔 시퍼런 멍 자국과 긁히고 까진 상처가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아저씨가 단연 눈에 띄었다. 멍과 상처가 제일 심한데다, 물린 상처까지 있었다. 울음은 그쳤지만 얼굴은 여전히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마치 큰 충격에 휩쓸린 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답답하고 억울했지만,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었다.
"그럼 이 분은 왜 바다에 빠지려고 하신거죠?"
침묵이 흘렀다.
"이 시간에 다들 여기서 뭐하고 계셨던 겁니까?"
"그건..."
다들 머뭇거리기만 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할말 다하는 한점조차도 침묵을 지켰다.
지금 다들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동반자살 하려던 게 밝혀져서 가족들한테 연락이 가는 것이었다.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드러내보이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나는 한점을 슬쩍 쳐다보았다.
“다들 같이 좀 가주셔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모든 걸 체념한 채, 경찰의 지시를 순순히 따랐다. 그렇게 우리는 경찰차 두대에 나눠서 타고 파출소로 향했다.
경찰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상태라 생각할 기력조차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기진맥진해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아주 기나길 것만 같았다. 그래도 경찰이 출동한 덕분에 아저씨를 말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차창에 기대어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는데, 가로수길 네온사인의 문구가 유독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급커브 구간입니다. 안전운전 하세요.
“다들 대체 무슨 사이입니까? 예?”
가족 동반모임이라도 온 줄 알았던 우리가 사실 아무 연고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경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동호회에요. 여행 동호회요.”
챠키 언니가 무슨 퀴즈 정답이라도 외치는 사람처럼 얼른 나서서 말했다
“어딜 여행하는데요?”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다요. 특히 여기 같은 시골이요.”
내가 대답하고선 아차 싶었다. 괜히 말을 덧붙이려다 지역 주민들 앞에서 지역 비하 발언을 해버린 것이다.
“낯선 사람들이 이 '시골'까지 여행을 와서 캄캄한 한밤중에 바다로 뛰어들려고 했다라..”
웬지 내 귀에는, 저 시골이란 단어에 힘이 실린 것처럼 들렸다.
“바다에 뛰어든 건 저 아저씨 혼자구요. 저흰 그냥 말린 거예요.”
한점이 콕 집어 정정해주었다.
“혹시 다들, 최근에 무슨 힘든 일이 있거나 하진 않았습니까?”
아뿔싸. 드디어 올 게 오고야 말았다. 경찰 눈에도 역시나 그 점이 수상했던 것이다.
저 말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손사래까지 치며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기 바빴다. 각자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잘 지낸다는 걸 어필하기 시작했다.
챠키 언니는 남편이랑 자식들이 너무 잘해준다며 가족들 자랑을 늘어놨고, 칼은 회사에서 승승장구하고 아내랑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기느라 너무 행복하다고 했으며, 한점은 삶이 너무 평범해서 지루하긴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지 않냐고 되물었다.
얘기만 들으면 무슨, 이보다 화목한 가정, 꿈의 직장, 그리고 평범한 인생이 따로 없었다. 다들 광고나 교과서 속에서 사는 사람들 같았다.
나도 한마디 보태려고 입을 떼려다,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도로 입을 다물었다.
“가족들하고 연락을...”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칼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연락하지 마세요! 아내는 절대 몰라야 합니다!”
경찰은 그런 그를 힐긋 보더니 말을 마쳤다.
“... 잘 하고 지내시나 보네요.”
챠키 언니가 옆에 앉은 칼을 팔꿈치로 찌르며 흘겨보았다.
“아, 전 그냥.. 아내는 제가 여기 여행 온 걸 몰라서요. 알면 자기만 쏙 빼고 혼자 갔다고 마니 섭섭해 할거에요. 하하. 아무리 신혼이라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자나요. 하하하.”
칼은 머쓱해하며 수습하겠답시고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고, 우린 숨까지 참으며 조사관 눈치를 살폈다.
“혹시, 여행하다가 서로 다툼이 있었다거나 뭐 그런 건 없었나요?”
“네 전혀 없었어요.”
내가 얼른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내 머릿속에선 아저씨와 투닥거리던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인데요. 직업이 그렇다보니 별의별 일들을 하도 많이 봐서요. 혹시 말이죠. 여행하다 사람들 간에 다툼이 생겼고 저 아저씨와 사이가 틀어져버렸다. 그래서 다같이 공모하여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에 저 아저씨를 바다 속으로...”
“그럴리가요.”
“아니에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전혀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시에 각자 대답을 쏟아냈다. 그게 마치 꼭 화음처럼 들려서 하모니를 이뤘다.
“그런 거 아닙니다.”
조사받는 내내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던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대답했다. 아저씨는 꼭 꿈꾸는 사람처럼 몽롱해 보였다.
“그러니까 ‘그 시간’에, ‘그런 복장’으로 수영을 하려고 했다는 거죠?”
아저씨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조사관이 부분부분 힘을 주며 되물었다.
“네. 맞습니다.”
“아니, 대체 왜죠?”
“제가... 바다를 너무... 좋아해서요...”
거짓말이었다. 아저씨는 산을 좋아하지, 바다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허허, 참. 그러니까 정리해 보면, 다같이 한잔 하고 돌아오는 길에, 취기도 오르고 바다를 너어어어무 좋아해서 그 캄캄한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말씀이신 거죠?”
“네.”
아저씨가 분명하게 대답했다.
“저 사람들은 그런 아저씨를 뜯어 말리고, 그걸 지나가던 행인이 보고 오해해서 신고를 한거고요?”
“네 맞습니다.”
아저씨는 다시 한번 힘주어 대답했다.
“아니 근데, 경찰이 도착했을 때 왜 그렇게 울고 계셨던 거에요? 엄청 서럽게 우셨다던데.”
“수영이... 너무 하고싶은데... 못하게 해서요...”
아무래도 아저씨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저렇게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저렇게 뻔뻔한 얼굴로 술술 말하는 걸 보니.
조사하는 경찰관도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 경찰 생활만 수십년을 했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네요.”
그리고 한심한 눈으로, 아저씨를 쳐다보고 우리를 슥 둘러보며 말했다.
“거 알만 한 양반들이 술 좀 작작 먹읍시다. 네?”
그렇게 우리는 풀려났다. 그리고, 오밤중에 취기가 잔뜩 올라, 바다 속에 뛰어들어 수영하겠다고 난리치는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이 되어있었다.
“여지껏 뭘 들은 거야? 뛰어든 건 아저씨 혼자라니까. 우린 말리기만 했고.”
한점이 파출소 밖으로 나서며 중얼중얼 투덜거렸다. 그 모습이 꼭, 수업시간에 한명이 떠들자, 반 전체가가 단체기합 받아 억울해 학생 같아 보였다.
그래도, 아저씨의 뻔뻔하다 못해 순진무구한 거짓말 덕분에, 무사히 풀려나서 다행이었다.
정작 아저씨는, 여전히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나는 슬슬 아저씨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조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온 세상이 푸르스름한 빛에 감싸여 있었다. 피부에 닿는 바람은 생각보다 서늘했다. 어느덧 날은 밤을 통과해, 새벽을 지나는 중이었다. 거리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옷에 묻어있던 물기는 어느새 입은 채로 바짝 말라 있었다. 피부에는 모래인지 소금기인지 모를 까슬한 감촉이 느껴졌다. 다들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서 빨리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만 간절한 얼굴들이었다. 나도 내 방의 폭신한 이불이 처음으로 너무나 그리웠다. 숙소까지 태워주겠다는 경찰의 제안은 한사코 거절했다. 경찰에게 숙소를 노출하기가 싫었다. 민박집까진 걸어서 한 시간 거리였다. 우린 지친 걸음을 내딛으며 말없이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한동안 텅 빈 거리를 걷다보니, 바람을 타고 비릿한 바닷내음이 코를 스쳤다.
끼룩끼룩, 갈매기 울음소리, 철썩철썩,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덜덜, 어선의 엔진 소리도 들려왔다.
캄캄한 어둠 속 저 멀리, 불빛으로 환히 물든 새벽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축축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시동을 켠 채 항구에 정박해 있는 어선의의 깜빡이는 불빛, 물결에 반사된 불빛도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그곳에 도착하자,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목청껏 외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사방에 퍼지며 귓전을 때렸다.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쓴 이들이 고무장갑 낀 손으로 상자를 분주히 나르고 있었다. 젖은 바닥 위로 장화 신은 발들이 바삐 오가며,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고, 계속 움직였다.
까맣게 탄 피부와 굵은 주름은 그들이 지나온 거친 세월을 짐작게 했다. 하지만 무표정 속에서도 반짝이는 눈빛만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곳은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생기와 열기로 가득한, 진짜 삶의 현장이었다. 그들 틈을 지나가는 우리는 마치 패잔병처럼 작고 초라해 보였다. 다른 세계와의 거센 충돌로 감각은 잔뜩 날이 서고, 자극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그 투박한 생동감이, 어쩐지 반가웠다.
꼬르륵-
너나 할 거 없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한바탕 소동을 치른데다가 시장을 지나가려니 시장기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른 새벽에 문을 연 가게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지갑도, 핸드폰도 없었다.
이런 꼴로 들어갔다간 호되게 곤욕만 치르고 쫓겨날 게 뻔했다. 더구나 첫 손님으로 낯선 사람에게 외상을 줄 가게는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이제 막 경찰 조사까지 받고 간신히 풀려난 마당에, 무전취식으로 또 다시 조사를 받을 순 없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다들 배가 고파도 묵묵히 걷는 걸 보니, 나와 같은 생각임이 분명했다. 불 꺼진 상가들 사이를 허기를 꾹 참고 지나가고 있었다.
멀리, 눈앞에 홀로 불을 밝힌 허름한 국밥집 하나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 외롭게 빛나는 그 모습은 멀리서 바라보던 새벽시장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시장이 내뿜는 역동적인 생명력과 달리, 그 불빛은 어딘가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말릴 틈도 없이 아저씨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갔다. 우리를 한참 앞서 가더니 가게 안으로 쑥 들어갔다. 놀란 우리는 눈만 깜빡이며 서로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아직 계획이 송두리째 무너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했다.
나는 아저씨를 따라 가게로 달려갔다. 헉헉대며 식당 안에 들어서자, 아저씨는 이미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어느새 다섯 사람 몫의 수저와 물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저씨는 양손을 포개 턱 밑에 댄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자리를 가리키며 여기 앉으라고 손짓했다.
아저씨가 지금 정상이 아니라는 내확신은 더욱 깊어졌다.
식당 내부는 외관만큼이나 낡고 허름했다. 연로한 할머니 한분이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계셨다. 탁탁 칼질하는 소리가 들렸고, 뭔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도 들렸다. 가게 안은 온통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눈치 없는 배에선 다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마음 같아선 그냥 저 테이블에 앉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으며 할머니께 다가가 사정을 설명하고, 아저씨를 데리고 나오려고 설득했지만 아저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께선 무뚝뚝하지만 정이 뚝뚝 묻어나는 말씨로 말씀하셨다.
“마, 다 들었데이. 강도 맞았다캤지? 사정이 딱해가… 내가 특별히 외상으로 해줄테니까, 그라지 말고, 퍼뜩 와 앉으래이. 메뉴는 저 양반이 다 시켰다 아이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휘둥그런 눈으로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다시 같은 포즈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외상이 된단 말에 뛸 듯이 기뻐하며, 할머니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는 밖으로 뛰어나가 사람들을 불렀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뚝배기 그릇들이 하나씩 올려졌다. 할머니는 투박한 손으로 장갑도 없이 그 뜨거운 그릇들을 다 나르셨다. 수저를 들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군침을 질질 흘리고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자리에 그릇이 놓이자 마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다같이 잘 먹겠습니다 하고 우렁차게 합창했다. 아저씨가 시키신 것은, 모두 같은 된장국이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요란한 식사가 시직 되었다. 그릇에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국물을 호로록 마시는 소리, 아삭하고 깍두기 씹는 소리만 들렸다. 다들 한 며칠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입맛이 까탈스럽고 된장국을 안 좋아하는 한점조차도, 정신없이 먹느라 국물을 흘리는지도 몰랐다. 그런 우리를 보고 주인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안쓰럽게 쳐다보셨다.
아저씨도 수저를 들어 한술 뜨셨는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더니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러곤 이내 목이 메인 모습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아저씨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어머니의 된장국이라는 것을.
아저씨는 쉴틈 없이 된장국을 숟가락으로 푹 떠서,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먹는 게 아니라 꼭 들이켜는 것 같았다. 마치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내 안의 허기를 채우려는 것처럼.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코는 훌쩍이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을 소매로 쓱 닦으며 된장국을 정신없이 먹는 모습이 꼭, 어린 소년 같아 보였다.
식당을 나서며, 누구보다 우렁차게 인사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꼭 딴사람 같았다. 바닷가 뿐만 아니라, 이전과도 달라 보였다. 그날, 아저씨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길 들어갔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날, 우리가 먹은 건 그냥 된장국이었지만, 아저씨에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까짓것 일년 더 연장하지 뭐. 비정규직이 판치는 세상에, 인생이라고 뭐 정규직만 있으란 법 있나.
대단하게 살 필요는 없는 거 같아. 위인전에 실릴 것도 아닌데 말야.”
아저씨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런 아저씨를 보며 한점이 내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문제는 된장국이 아니라 아저씨한테 있었던거 아냐? 다같이 고생할게 아니라, 아저씨 혼자 고생시켰어야 했는데..."
우리는 다시 텅빈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우리를 마주보고, 금빛으로 번지는 동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른이들의 발목을 단단히 감고 있던 족쇄는 잘못된 믿음이 사라지자 놀랄 만큼 쉽게 풀렸어요.
자유로워진 발목은 다른 어른이들 눈엔 낯설고 이상해 보였지만요.
여행자들은 그런 족쇄를 멀리, 아주 멀리 던져버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