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의 귀환

by 이정표

그날 이후 내 일상은 변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규칙적으로 생활했고, 할일은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처리했다. 한때 쓰레기로 가득했던 내 방은 항상 깨끗하고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집 근처 마트에서 하루 몇 시간씩, 가볍게 일도 시작했다. 나는 그곳에서 상품을 진열했다. 정신없이 물건을 주워담고 옮기고 진열하다 보면, 어느새 잡생각은 싹 사라지고 일에만 몰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활력이 샘솟았다. 뿌듯하고 상쾌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다보면 퇴근시간은 금세 다가왔다.

퇴근하면 아직 이른 오후였고, 해는 여전히 높이 떠 있었다. 집으로 향하면서, 일부러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물통이 든 백팩을 등에 메고서. 집에만 갇혀있을 땐 계절이 바뀌는지도 잘 몰랐는데, 산책을 하며 피고 지는 꽃들과 잎사귀들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레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파릇파릇한 풀과 나뭇잎, 물 위로 가지를 드리운 아름드리 나무, 활짝 핀 형형색색의 꽃들,

진한 풀 냄새와 꽃 향기,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에 앉아 정답게 지저귀는 새소리.

나는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오감으로 느꼈고, 머릿속으로는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멈춰 있던 내 삶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작지만 스스로 해낸 일들이 뿌듯하게 느껴졌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자연 속을 걷고 있자니, 온 세상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조깅을 하며 스쳐 가는 사람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들의 존재도 반갑게 느껴졌다.

산책을 마친 뒤에는 늘 도서관에 들렀다. 나만의 힐링코스였다. 도착하면 가장 먼저, 로비 한쪽 정수기를 찾았다. 백팩에서 물통을 꺼냈다. 집을 나서기 전 가득 채워져 있던 물통은 어느새 비워져 있었다. 물통에 시원한 물을 다시 채우고는, 입으로 가져가 벌컥벌컥 들이켰다. 입술에 닿자마자 목젖을 타고 흐른 냉기가 머리끝까지 전해지며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땀도 갈증도 한결 가신 뒤에야 열람실로 향했다.

열람실 안은 들어서자마자 공기부터 싹 바뀌었다.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조용하기만 했다.

이따금 책 넘기는 소리와 기침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다들 저마다 책을 보거나 뭔가를 적으며 조용히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곳곳에 놓인 높다란 서가에는 책들이 한가득 꽂혀 있었다. 그 사이를 누빌 때면, 꼭 숲 속의 빽빽한 나무들 사이를 거니는 기분이었다. 수없이 많은 책들 속엔 수많은 고뇌가 담겨 있었다. 손때 묻은 책들에선 오래된 책 냄새가 났고, 그 냄새를 맡을 때면 웬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내가 찾는 책 한권이 꽂혀있는 걸 발견할 때 느껴지는 짜릿한 희열도 좋았다.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 골라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가방에서 노트와 필통도 꺼내 펼쳐두었다. 사람들 틈에 푹 파묻혀 조용히 책을 읽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그것을 옮겨 적고, 같이 떠오르는 생각들도 적어보았다. 듣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참 많았다. 읽고 쓰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렇게 채운 노트만 벌써 열 권 째였다.

문득,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헤어질 때, 칼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봐, 싱어야.”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너무 어려워. 그런 건 대체 어떻게 찾는 걸까?”

“음… 좋아하면, 기꺼이 시간을 내게 되어 있어.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말이야.”

어쩌면, 그 일을 찾은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주로 집에 와서 가족들과 함께 먹었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언제나처럼 누군가 던진 시답잖은 농담에 깔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한집에 살면서도 오랜 시간 얼굴도 보지 못했던 터라, 함께하는 저녁 식사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죽음에서 돌아온 뒤, 소소한 기쁨들로 일상을 채우며, 나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고 있었다.


가족들은 갑작스레 달라진 내 모습에 어리둥절해할 뿐이었다. 특히 아무렇지 않게 외출하는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영문도 모르는 가족들 눈에, 늘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오더니,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랜만의 상봉으로 가족들과의 사이는 전보다 더욱 애틋해졌지만, 그렇다고 모든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서로 맞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특히,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들은 더 늦기전 아무데나 받아주는 회사에 취업 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계속 준비하길 권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이제는 그저 나로 살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나를 억지로 끼워맞추기 보단, 내 안에 있는 걸 자연스레 꺼내서 펼쳐 보이고 싶었다. 삶의 불확실함은 여전히 날 두렵게 했지만, 그 안에 깃든 오묘한 신비를 믿어보고 싶었다. 선명하지만 거슬리는 외부의 목소리보다, 희미하지만 이끌리는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나를 제대로 믿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되돌아보면, 가장 나를 의심한 건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그런 내 결심을 가족들에게도 분명히 전했다. 처음엔 못내 아쉬워했지만, 예전과 달리 흔들림 없는 내 눈빛을 보고는 이내 조용히 수긍했다.


어느덧 총성은 멎고 세상은 평화로워졌다. 펄펄 끓는 고열에 시달리다 죽기 직전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막 벗어나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이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사기꾼들은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죄질이 악랄하다고 판단해 주범은 징역 3년 6개월을, 공범 두 명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에게서 합의하자며 연락이 왔다. 금액을 깎으려는 그들과 받아내려는 나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었지만, 결국 나는 돈을 다 받아냈다. 아니, 더 얹어서 받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다행히 다들 일상에 잘 복귀해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듯 보였다. 삶은 여전했지만, 죽음으로 도망칠 생각같은 건 이제 아무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가 함께한 지난 여정은 그들에게도 큰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언젠가 향수 아저씨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삶이 힘들어서 다시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손목에 남은 이빨자국을 바라봤다고. 다행히 지금은 잘 아물었지만, 그 자국은 꽤나 오래 갔고 그걸 볼 때면 살아갈 힘이 생겼다고 한다. 나를 살리겠다고 이렇게 꽉 깨물었다니 하면서 말이다. 그걸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 못나 보여서, 살아기로 마음을 다시 굳히셨다고 한다.

한동안 주고받던 연락은 어느 순간 뜸해졌다. 어쩌면 이대로 영영 끊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단톡방은 그대로 있었고 하려면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었지만, 웬지 그러기가 망설여졌다. 죽음이란 접점이 사라지니, 우리를 이어주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혹여나 죽고 싶은 생각이 다시 든다면, 다른데 말고 여기에다 알리라고 서로 농담처럼 말했었다. 그래서 연락이 없는게 어쩌면 다행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서로 아는 건 닉네임뿐이었다. 이름도 정확한 나이도 몰랐다.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면서도,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우린, 서로에게 익명으로 남을 관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토록 편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그저 스쳐간 인연일 수도 있겠지만, 이따금 생각날 때면 그들을 위해 속으로 조용히 빌어주었다. 어쩌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그들에게 내 응원이 가닿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잘 지내기를, 잘 이겨내기를. 그리고 두번 다시, 과거로도 죽음으로도 도망치지 않기를. 삶이 끝날 때까지 이 여정을 계속 하기를.

혹여 앞으로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이제는 과거나 죽음이 아닌 삶 속에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했다.


우리가 보낸 그 시간들은, 결국 우리만이 아는 해프닝이 되어버렸다. 가족들조차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고, 경찰도 목격자도, 왜 한밤중에 바다에서 그런 소란을 피웠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버킷리스트를 하며 마주친 사람들 중에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 모든 진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우리 다섯뿐이었다. 우리는, 세상의 눈에는 나약하고 철없고, 조금 이상한 사람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닫힌 방문 뒤에 숨어 지내고, 과거로 돌아가려 진지하게 고민하고, 된장국 하나에 목숨을 걸고, 복수하려다 되려 수습하기 바쁘고, 서로 쌈박질이나 해대고, 술에 취해 바다에 뛰어들려다 제지당해 울음을 터뜨리고마는.

그땐 그런 소동들이 그저 고생스럽고,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죽음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쓸 수 없었기에, 오히려 솔직했고, 가장 우리다웠고, 가장 생생하게 삶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어쩌면 우린, 그저 내 이야기를 실컷 쏟아붓고, 온전히 이해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따스한 온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차가운 조언보다 뜨거운 응원이, 날카로운 질타보다 부드러운 격려가.

애시당초, 죽을 마음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방 청소를 하다가 문득, 책상 서랍속에 있던 응원봉을 발견했다. 와이낫 콘서트를 위해 미리 사 놓은 건데, 콘서트가 취소되는 바람에 한번도 써보지도 못했다. 그대로 잊혀져 여지껏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잊고 있던 그 물건을 다시 보자, 티켓팅에 성공해서 콘서트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 느꼈던 흥분과 설렘도 되살아 났다.

와이낫은 그 이후로 다행히 잘 회복했고, 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한때 드라마, 예능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던 그였지만, 공백기를 가지며 인기가 전과 같지는 않았다. 그가 복귀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섞인 시선들도 쏟아졌다. 하지만 그를 응원하는 팬들도 여전히 있었고, 힘든 상황을 솔직하게 고백한 그의 용기와 진정성에 그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시 돌아온 그는 훨씬 단단하고 확신에 차 보였다.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던 내 우상 또한 자신만의 여정을 나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이었고, 이제 나처럼 인생의 출발선 앞에 서 있었다. 음악 콘서트에는 가지 못했어도, 어쩌면 그의 인생 콘서트를 다녀온 것만 같았다.

그런 그가 곧 콘서트를 열 것이란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가려던 콘서트가 취소된 이후로 처음이었다. 티켓팅은 며칠 뒤 시작이었다. 나는 또 도전해볼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혼자서. 응원봉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여러 계절이 지나고, 다시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나는 여전히 마트에서, 전보다 조금 더 오래 일하고 있었다. 오늘도 오후에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도는 실내와는 달리, 바깥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날씨는 후덥지근한 데다 더운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가로수 사이로 띄엄띄엄 걸린 태극기들이 반겨주었다. 나는 발걸음을 늦추어 천천히 지나가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 태극기들은 살짝살짝 펄럭이고 있었다. 좀 전까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던게 미안하게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광복절이었다.

죽음을 지나오니 감사한 것들이 참 많이 보였다. 소소한 일상, 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세상을 만들어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희생. 감사한 줄 모른채 당연시 여기며 살았다. 세상을 원망하며 꼭꼭 숨어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혜택들을 누리는 줄 모르고. 다시 살기로 마음 먹으면서 앞으로는 절대 이 고마움을 잊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어릴 적엔 위인은 아무나 되는 줄 알았다. 크고 나서야 한 인간으로 살아내기만도 벅찬 세상이란 걸 깨달았다. 얼굴도 모르는 나같은 후손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기꺼이 내놓은 그분들의 마음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숭고한 이상을 쫓으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을 그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하면서도 한켠 뜨거워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많은 사람은 못 구하더라도, 어쩌면 내 인생 하나쯤은 스스로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시도는 해볼 수 있으리라. 결국 실패하고 죽더라도 그 자체로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삶은 결국, 어느 정도는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내게 묻은 더러움을 견디고, 내가 받은 아픔을 견디고, 나를 흔드는 혼란을 견뎌내는 것이

삶이었다.

아무리 무게를 덜어보려 애써도, 오롯이 견뎌야 할 몫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남은 무게조차도, 지금껏 잘 버텨온 나의 멋짐에 흠뻑 취하는 것으로 훌훌 날려보내는게 어떨까.

느닷없이 세상에 던져져 버티는 삶이 좀 버겁긴 하지만, 무겁다고 휙 내팽개치는 게 아니라

때가 됐을 때 고이 반납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던 중, 평상시와 달리 백화점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챠키 언니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다 같이 백화점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맘에 드는 옷을 고르며 기뻐하던 언니를 보며, 부모님 생각이 참 많이 났었다. 그리고 지금껏 부모님께 제대로 된 선물 한 번 사드린 적이 없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일을 시작하고 돈을 차곡차곡 모은 것도, 결국 그 때문이었다. 이제 돈은 충분히 모였고, 어떤 선물을 살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최대한 근사한 걸로 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백화점 안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남성복 코너에 먼저 들렀다가, 이젠 여성복 코너에서 옷을 살피는 중이었다. 그러다 한 원피스 앞에 발길이 멈췄다. 싱그러운 초록빛과 매끄러운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내가 카운터 위에 원피스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선물하실 건가요? 포장해 드릴까요?”

직원이 묻자, 내가 흔쾌히 답했다.

“네, 맞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혹시 친구분께 선물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엄마 드릴 거예요.”

“아, 그러기에 이 원피스는 조금 젊은 층 취향인데요… 어머님 연령대에 어울리는 옷들도 따로 있어요. 보여드릴까요?”

직원은 난처한 기색을 보였지만, 난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괜찮아요. 엄마한테 이 옷, 정말 잘 어울릴 거예요.”

그렇게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려다, 불현듯 무언가 떠오른 내가 물었다.

“저, 영수증 있으면 사이즈 교환 가능하죠?”

“네, 물론이죠.”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선 내 양손엔 쇼핑백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비어 있는 벤치 하나를 발견하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옷이 담긴 상자를 쇼핑백에서 천천히 꺼내서 조심스럽게 백팩 안으로 넣었다. 백화점 로고가 선명한 쇼핑백도 혹시나 구겨질세라 조심조심 접어 함께 넣었다. 깜짝 놀래켜 드릴 생각이었다. 같은 작업을 한 번 더 반복한 뒤,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한동안 가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홀쭉했던 백팩은 어느새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매달 생활비는 드려왔지만, 선물을 드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생활비를 건넸을 때, 감격에 겨워하시던 두 분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은행에서 깨끗한 새 지폐로 바꿔 흰 봉투에 담고, 손 편지와 함께 조심스레 내밀었던 그날. 너무 기뻐하시는 두 분을 보며, 머쓱함과 동시에 그동안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기만 했다. 그때를 떠올리자 울컥함이 밀려왔다. 이번엔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기대가 되었다.

오는 길에 분식점에도 들러 떡볶이를 샀다. 가족들이 이 집 떡볶이를 참 좋아했다.


“다녀왔습니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내가 집 안으로 들어서며,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현관문이 닫히며 문종이 딸랑 소리를 냈다. 오랫동안 맡아온, 익숙하고 편안한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왔어?"

현관까지 우르르 달려 나온 아빠와 언니가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마치, 내가 아주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가족이 모두 모인 집은, 비어 있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의 온기로 덥혀지기라도 한 듯, 집 안에는 정겹고 따스한 공기가 감돌았고 무엇보다도 평화로웠다.

"어서 와."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와 함께 엄마가 환한 미소를 띤 얼굴로 다가왔다.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 온기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나는 한껏 신이 나서 다시 한 번 힘차게 외쳤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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