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과연 현실이 될까4

by 이정표

"전 시위할래요. 광화문광장에서."

칼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위라니, 무슨 시위?"

챠키 언니가 의아한 듯 물었다.

"간통죄 부활, 그리고 와이프랑 상간남도 같이 고발하려고요."

칼이 더욱 비장한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이혼하고 상간자 소송 하는게 어때?"

향수 아저씨가 안타까운 듯 다시 물었다.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해줘요. 소송은 어느 세월에 하고요. 곧 떠나야하는데... 그리고 그걸로는 도무지 분이 안 풀려요."

칼이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뭐라는줄 알아요? 왜 죽녜요. 등신같이. 자기였으면 죽이고 감빵 갔을 거래요.

죽이겠다는 게 아니라 제가 죽겠다잖아요. 억울한 사람 죽기 전에 하소연도 실컷 못하나요?"

칼은 저러다 꼭 칼춤이라도 출 것만 같았다.

"혹시 피켓 들고 현수막 펼치고, 뭐 그럴 건 아니지?"

아저씨가 우려스러운 듯 말했다.

"네, 그렇게 하려고요. 이미 주문 제작 다 해놨어요.
그게 뭐 어때서요? 마음 같아선, 선거 유세용 트럭이라도 통째로 빌리고 싶은데요?

확성기 틀고 아주 동네방네 떠나가라 아주 실컷 떠들고 싶어요."

칼이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못 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 봤던 서글서글한 인상에 사람 좋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제는 울분에 가득 차 있었다. 두 눈은 이글이글 불타고, 안색이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저기 말야, 그거 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걸리는 거 알지? 그리고 알다시피, 앞으로의 버킷리스트라도 좀 순탄했음 좋겠어. 마지막 가는 길에 경찰이랑 엮일 만들고 싶지 않아"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속내를 내비쳤다.

“버킷리스트만 성공하면 뭐하나요. 버킷리스트가 우선인가요? 사람이 우선인가요?”

칼은 이렇게 묻고서 사람들을 죽 둘러보았다. 그러나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아요, 그럼. 이번엔 저 혼자 할게요. 저 혼자서라도 꼭 할겁니다."

"그럼 전 이번엔 빠질게요."

한점이 스리슬쩍 답했다.

“전 할래요.”

내가 나섰다.

“취지도 좋잖아요. 간통죄 부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니 이런 악법들은 다 없어져야 돼요.”

이렇게 말하는 내 눈 앞에 그동안 겪었던 부당한 일들이 주르륵 지나가고 있었다.

"나도 할래. 재밌을 것 같은데?"

언니가 신난 건지 화난 건지 모를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뭐, 산 사람, 아니 곧 죽을 사람 소원도 못 들어줄까. 까짓것 한번 해보지 뭐.”

향수 아저씨가 마지못해 승낙했다.

"뭐 여기까지 같이 왔는데, 계속 같이 가보죠.“

한점이 덤덤하게 말했다.

시위를 앞둔 어느날이었다. 단톡방에서 얘기가 오고갔다.

“그날, 광장에서 정치시위가 열릴 거래요. 다른 날로 바꿔야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요즘 하도 시끌시끌 해서, 다른 날도 마찬가지일거에요.”

“차라리 잘됐죠 뭐, 인파에 파묻힐 수 있어서.”

드디어 시위를 하기로 한 당일이 찾아왔다.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검은 모자에 마스크를 차림이었다. 한점은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어디 물건이라도 훔치러 가는 도둑들 같았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칼은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의기양양하게 나타났다. 우리는 입을 떡 벌리고 바라봤다. 칼이 손에 든 건 피켓이랑 현수막이었다.

“아니, 저렇게 큰 현수막으로 뭐 하려고?”

아저씨가 놀라며 묻자, 칼이 살짝 흥분한 듯 답했다.

“이건 그동안 아내가 저한테 했던 짓들을 쭉 나열한 거예요. 건물 옥상 위에서 펼칠거에요.”
“그리고 이건.”

그가 가리킨 피켓에는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크게 간통죄 부활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조그맣게 사람 이름 두개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간통죄 부활이랑 두 사람 고발하는 거에요.”

“하다가 바로 잡혀가는 거 아냐? 사실적시...”

아저씨가 걱정스레 하려던 말을 칼이 끊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럴까봐 글자 크기를 11포인트로 했어요. 반경 1미터 안의 사람들만 볼 수 있게.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는데...”

아저씨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현수막을 설치할 옥상부터 찾는 게 관건이었다. 우리는 일단 건물부터 물색하기 시작했다. 광장 주변에 건물은 많았지만, 입구부터 경비에 막힌 곳이 많았다. 입구 안으로 슬쩍 들어와도 사람들 눈과 씨씨TV를 피해 다니느라, 주로 계단을 이용해 옥상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올라가도 옥상 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도 옥상 문이 열려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직접 올라가는 것 외에는 딱히 없었다. 현수막을 설치할 옥상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 여기야. 웬지 느낌이 좋아.”

아저씨는 언제부턴가 건물에 들어서기 전부터, 저렇게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느 건물에 들어갔는지 헷갈리기 시작하며, 옥신각신 말다툼까지 벌어졌다.

“여기 아까전에 들어왔던 곳 같은데...”

“아니에요. 처음 들어오는 거에요.”

“아냐. 여기 들어왔던거 맞다니까.”

언제부턴가 너나 할 것 없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언제까지 올라가야 돼 계단 몇개 남았어?”

계속된 실패로, 우리는 팀을 나눠서 움직이기로 했다. 먼저 찾는 팀이 다른 팀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나와 한점이 한팀이고, 아저씨와 챠키 언니, 칼이 함께였다.

나는 한점과 함께 계단을 오르면서 변한 칼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혼잣말하듯 읖조렸다.

"경험치가 쌓이다 레벨업 해서, 전투력이 상승한건가.“

"과부화가 와서 폭발한 거죠."

그러자 옆에 있던 한점이 무심코 답했다.


덜컥. 끼익-

옥상에 도착한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웬일로 손잡이가 돌아갔다. 밖에서 밝은 빛과 공기가 사르륵 들어왔다.

“와 찾았다!”

탁 트인 밝은 옥상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나와 한점은 기쁨의 환호를 터뜨렸다.

칼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하자,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갈게요."

그렇게 풍경을 내려다보며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칼은 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해 봐도 받지 않자,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네? 아직도 안 왔다고요? 아까 잔뜩 신나서 혼자 뛰어갔는데. 혹시 길이 엇갈린거 아니에요?”

“그냥 내리고 가죠. 이러다 날 새겠어요.”

“그래도 기다리라고 했는데, 좀만 더 기다려보자. 오는 중일 거야.”

“어차피 내릴건데 시간만 낭비할 뿐이에요.”

칼은 어쩌면 이걸 차르륵 내릴 때의 짜릿한 손맛을 느끼고 싶은 걸지도 몰라.

그렇게 한점과 내가 옥신각신 하다가, 마지못해 한점이 하자는대로 현수막을 내리려던 찰나였다.

덜컹-

“안돼! 하지마!”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온통 땀범벅, 눈물범벅인 칼이 벌건 눈으로 나타나더니 우리를 향해 소리치며 절뚝이며 걸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옥상 찾아다니느라 고생하게 한 것도. 근데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말한 칼은 현수막을 들더니 절뚝이며 출입문으로 향했다.

“다리는 왜 그래요? 다쳤어요?”

놀란 내가 물었다.

“급하게 오다가 좀 삐끗했어.다행이야. 늦지 않게 와서.”

내가 칼을 부축하고, 한점이 현수막을 받아든 채 우리는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려가던 중간에 올라오는 아저씨와 언니를 만났다. 둘은 무슨 일이냐는 눈짓을 보냈고, 한점이 가까이에 대고 속삭이며 상황을 알려주었다.


광장 밖으로 나가자 모든 긴장이 풀리며 다리까지 풀렸다. 칼을 벤치에 앉히고 나도 간신히 걸터 앉았다. 광장에는 정치 집회기 한창이라 인파가 몰려 있었고, 스피커 소리가 시끄러웠다. 구호를 외치며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챠키 언니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 그거 가져가시면 안돼요!”

무슨 일인가 싶어 언니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언니가 시위대쪽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다른 시위자들이 언니 옆에 쌓여있는 피켓을 또 가져가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했을 땐, 피켓을 가져간 사람들은 이미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린 뒤였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피켓을 찾으려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피켓도 똑같이 빨간 바탕에 흰색이라 얼핏 같아 보여서 찾기가 어려웠다. 거기다 시위자들은 잔뜩 흥분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성난 집회 참가자들을 헤집고 다니며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러다 몸이 부딪히고 팔꿈치에 얼굴이 맞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시위대를 에워싼 경찰들이 보였다. 검은 복장에 장비구를 쓰고 방패를 들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우리는 피켓은 커녕 그들 사이에 끼어버렸다. 그렇게 이리저리 밀려다니는데, 어느 순간, 내 손에 뭔가가 쥐어져서 바라보니, 피켓이었고 간통죄 부활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찾았어요! 여기 피켓 하나!”

간신히 빠져나온 내가 진즉 빠져나와 모여있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머리는 산발이괴, 멍 자국에 긁힌 상처 투성이였다. 그리고 내가 찾은 피켓이 유일했다.


다음날 동영상을 보는데 우리가 있었던 집회에 관한 뉴스가 올라와 있었다.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며 시위자들과 경찰들 간에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화면이 시위자들을 비추는데, 순간, 한 시위자가 들고 있는 피켓에 익숙한 글자가 적혀있었다. 난 화면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건,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간통죄 부활이 적힌 피켓이었다. 그 동영상은 벌써 좋아요가 1천이었고, 댓글은 수백개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댓글창을 보니, 다들 정치 얘기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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