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과연 현실이 될까5

by 이정표

강원도로 떠날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고, 마지막 버킷리스트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바로, 한점의 ‘천문과학관 가기’였다.

한점이 어릴 적부터 찾았다는 그곳은 경기도 외곽에 위치해 있었고, 우리는 한점이 운전하는 차에 함께 올라 그곳으로 향했다. 계속 가다보니 어느새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숲길을 달리고 있었다. 굽이진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고 나서야 마침내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들려오는 건 새소리와 바람 소리뿐이었다. 그곳은 도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깊고 높은 산 중턱에 자리해 있었다. 건물은 생각보다 작고 오래됐지만 정갈한 분위기를 풍겼다.

낡은 외관과 달리, 내부는 비교적 깔끔하고 잘 관리되는 듯 보였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우리 말고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했다.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는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맨질맨질한 바닥에서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그 소릴 들으며 걷자니 꼭, 학교다닐 때 현장학습 온 기분이 들었다. 전시실과 관측실, 체험관, 그리고 천체투영실까지. 작고 단촐했지만 우주에 관한 것이라면 모형이든 사진이든 빠짐없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보면 좋아할 만한 것들이었다.

하나하나 살펴보는 사이, 문득 옆에서 익숙하면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엔 조용하던 한점이, 마치 해설사라도 된 듯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목소리는 살짝 들떠 있었고, 말투는 격양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엄마 아빠 손잡고 놀이공원에 온 아이 같았다.

“근데 여기 오는 게 왜 버킷리스트야?”

향수 아저씨가 물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올 수 있을텐데.

보아하니 자주 왔던 거 같고.”

신나서 떠들던 한점이 그 말에 잠시 입을 닫았다. 그러더니 시무룩해진 얼굴로, 여느 때처럼 알쏭달쏭한 말로 답했다.

“안 좋은 추억을… 좋은 추억으로 덮고 싶어서요.”

무언가 숨기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우리는 천체투영실로 향했다. 그곳은 다른 곳보다 크고, 넓었다. 높은 천장은 돔 형태였고, 천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스크린이었다. 좌석들은 모두 뒤로 완전히 젖혀져서, 누운 채로 천장을 올려다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곳도 역시 넓은 공간에 우리뿐이었다. 텅 빈 좌석들 사이에 앉아있자니 마치 극장을 통째로 빌린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일렬로 나란히 앉아, 좌석을 젖히고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캄캄한 가운데, 거대한 스크린만 환하게 빛났다. 근엄하면서도 나른한 목소리가 우리를 안내했고, 어느새 눈앞에는 우주의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쏟아질 듯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자, 경이로움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점점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별들 사이를 유영하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우리도 곧, 저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되겠지. 죽음을 앞두고 있으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챠키 언니의 옆얼굴이 스크린 불빛에 번쩍이며 드러났다. 잔뜩 몰입한 표정은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오른편의 한점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되고 싶어요.”

한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삶의 마지막 여행을 앞둔 지금, 저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나는 다시 우주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었다.

해설이 끝나자, 깊은 몰입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긴 잠에서 막 깨어난 사람들처럼,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곧 불이 켜질 거라는 기대와 달리 사방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천장의 스크린에선 은하수가 천천히 회전하는 마지막 장면만 반복되고 있었다. 곯아떨어져 자고 있던 향수 아저씨를 옆에 앉은 챠키 언니가 흔들어 깨웠다. 한점이 작게 “이상한데...”라고 중얼거리자, 불길한 느낌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우주 여행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우리는 출입구로 걸어갔다. 육중한 문의 손잡이를 잡고 당겨봤지만,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아무리 두드리고 소리치고 문에 귀를 대 보아도, 밖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관람 전 안내에 따라 꺼놓은 핸드폰을 켜고 연락을 시도해봤지만, 전파조차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꼼짝없이 이곳에 갇힌 것이다.

“관람객 응대가 영 엉망이구만. 아니면, 시설 문제인가?”

향수 아저씨가 투덜거렸다.

“제가 왔을 땐,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어요.”

한점이 의아하다는 듯이 답했다. 살짝 억울해 보이기 까지 했다.

“이쯤 되면 굿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내 머릿속에선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버킷리스트가 쫙 지나쳐갔다. 그 중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남은 여행만큼은 무사하길,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근데, 여기 되게 춥다. 몸이 으슬으슬하네.”

챠키 언니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캄캄한 어둠 속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데도 귀신이 있으려나?

하긴, 이렇게 크고 어두운 곳에 사람도 별로 없으면...”

“그런 말 좀 하지 마. 갇힌 것도 속상한데, 참.”

향수 아저씨가 질색하며 언니의 말을 가로막더니, 소름 돋은 듯 양팔을 사정없이 문질렀다. 그러곤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귀신 얘기하면 자기 얘기 하는 거 다 듣고, 신나서 몰려온다는 말도 몰라요? 쉿!”

아저씨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댄 다음, 엄지와 검지를 모아 입을 지퍼로 닫는 시늉을 하며 단단히 입단속을 시켰다.

그 모습에 챠키 언니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음을 참더니,

아저씨와 똑같은 동작을 따라 했다.

“그래도 저거라도 켜져 있어서 다행이네요.”

내가 천장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귀신 얘기에 곤두섰던 신경이 그걸 보자 조금 가라앉았다.

“운치도 있고, 좋네요 뭐. 어차피 죽을 거,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깍지 낀 두 손을 뒤통수에 갖다 댄 채, 칼이 체념인지 통달인지 모를 말투로 말했다.

어느새 우리는, 조금 전처럼 좌석에 누워 천장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전하는 은하계와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한 우주 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상상에 다시금 빠졌다. 어느덧 마음은 고요히 가라앉았다.

“여기 오는 게 왜 버킷리스트냐고 하셨죠?”

고요한 정적을 깨고, 한점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웬일로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곳은 저한테 특별한 곳이거든요. 어릴 적 부모님과 자주 왔었고, 크고 나선 혼자 자주 찾는 아지트가 되었어요.

그러다, 전에 사귀던 사람이랑 자주 왔었는데... 결국 제가 차였어요.

그 뒤로는 여길 도저히 못 오겠더라고요. 온통 그 사람과의 추억으로 가득해서…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오면, 이곳이 조금은 새롭게 느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본 건데… 다행히, 제 예상이 맞았네요.

함께라서,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어릴 적 처음 왔을 때 그 느낌도 다시 떠오르고요.”

말끝을 잘 흐리지 않는 한점이, 웬일로 말을 흐렸다. 힘겨워 보였지만, 숨을 고르면서도 끝까지 말을 마쳤다.

“많이 사랑했나 보네요.”

칼이, 자신에게 말하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네, 아주 많이요. 근데… 제가 숨기는 게 싫었대요.”

한점이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고, 여자들 숨기는 거 아주 질색해.”

무언가 떠오른 듯, 챠키 언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남자예요, 그 사람.”

한점이 평소처럼 말을 바로잡았다. 하지만 평상시 보다 덤덤한 말투였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어리둥절한 얼굴의 향수 아저씨도 평소라면 되물었을 텐데,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 사람은 항상 당당했어요. 저와는 달리. 우리 사이도 당당히 밝히고 싶어했죠. 여느 연인들처럼, 평범해지고 싶어했거든요.

반대로 전, 꽁꽁 숨기기만 했어요. 두려웠거든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무너질까 봐, 흠집이라도 날까 봐요.

그 일로 매일같이 다퉜어요. 결국 지친 그 사람이 헤어지자고 말했고… 전, 잡지 않았어요.

그 사람과 제가 게이가 아니었다면… 우린 절대 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어요. 제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여기까지 말을 마친 한점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셨죠. 글쎄요, 간다 해도 이번엔 용기를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만약 헤어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땐 용기를 내서 그 사람을 잡고 싶었어요. 그리고 우리 사이를, 세상에 당당히 밝히고 싶었어요.”

그날, 한점은 생애 처음으로 우리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침묵했고, 그러다 조용히, 그의 어깨와 손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그 침묵과 손길의 의미가 잘 전해졌는지, 그는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홀가분해 보였다.

그 뒤로 우리는 침묵 속에서, 각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길고 긴 침묵이 오히려 꼭 필요한 시간처럼 편안하게만 느껴졌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곁에 있는 이들이 마치 저 어둠을 밝히는 별들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 덕분에, 어느새 외롭지 않은 자신을 발견했다.

살짝 잠이 들락날락하던 와중, 쾅쾅 하는 소리와 함께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바깥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곧이어 후레시 불빛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세요?”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관리자에게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는 일찍 밖으로 나왔다.

원래는 밤까지 남아, 별을 관측할 계획이었다. 야간 관측 프로그램까지 미리 신청해 둔 상태였지만 모두 취소했다. 밤하늘이라면 실컷 본 우리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보다는 어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따뜻한 햇살을 쬐고 싶었다.

밖으로 나오자 차로 곧장 가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새삼 바깥 풍경을 음미하면서. 청량한 새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고, 산속의 공기는 유난히 상쾌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온몸이 비로소 풀리는 느낌이었다. 깊은 산중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 모임 이름도 지을까요?”

산책하던 중,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 게 뭐, 꼭 필요한가?”

향수 아저씨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왜요, 하나 있으면 좋죠. 전 좋은데요?”

챠키 언니가 거들었다.

“어떤 게 좋을까요? 혹시 생각해둔 거 있어요?”

칼이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내가 바로 답했다.

“우리, 처음에 과거로 가려고 했잖아요. 그러다가 사기꾼을 만나고… 아무튼, 과거로 가려던 게 꼭 시간여행자들 같단 말이죠. 그러다 결국 과거 대신, 같이 죽기로 했으니까…”

“그럼 ‘죽음 여행자들’이 되는 건가요?”

내 긴 설명을 끊고 한점이 끼어들었다.

“죽음은 빼고, 그냥 ‘여행자들’ 어때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 무슨 반지 찾으러 나서는 원정대라도 된 기분이네.”

챠키 언니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 영화라면 반지를 ‘찾으러’ 나선 게 아니라, ‘없애러’ 떠난 거였어요.”

여전히 틀린 건 못참겠다는 듯, 한점이 정정해 주었다.

한점은 어느새, 예전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어른이들은 '여행자들'이란 원정대를 꾸리고, 죽음의 나라를 향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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