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 죽어라 노력해야 들을 수 있었지

Mix Tape에 대한 기억

by 심내음

내음 씨가 어렸을 적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가요, 팝이라는 음악들을 처음 들었다. E.L.O의 Midnight Blue,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등 당시 어린 내음 씨에게는 신세계로 가는 마법 벽장의 문 같은 곡들이었다. 그때 노래는 동요가 아니면 듣지 말아야 하는 금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당시 여러 가지 새로운 음악들을 들으면 기분이 변하였고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내음 씨는 본격적으로 가수와 곡명을 기억하면서 좋아하는 노래들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테이프와 LP는 당시 내음 씨에게는 감당하기에는 다소 버거운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라디오가 있어다. 당시 말로 ‘(카세트) 데크’라고 불리던 그 기계에는 라디오에 테이프 레코더가 달려 있어서(테이프 레코더에 라디오가 달려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공테이프를 넣으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할 수 있었다. 라디오에서 내음 씨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그 곡명과 가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 다른 방송에서 진행자가 그 곡을 틀어준다고 하면 테이프를 준비하여 녹음을 하였고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들을 소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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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곡들은 녹음하기 힘든 것도 있었다. 당시 일시적으로 유행하던 곡들은 라디오에서 자주 틀어주어 하루 이틀 기다리면 곧 라디오에서 나와 바로 녹음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내음 씨가 좋아하는 어떤 곡들은 몇 주 아니 몇 달 동안 라디오에서 다시 나오지 않는 음악들도 있었다. 그렇게 몇 주 몇 달간 기다리던 곡이 마침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자기 직전에 비몽사몽 번개같이 몸을 움직여 녹음 버튼을 누르기도 하였다. 그렇게 얻은 곡들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녹음한 곡들 앞과 뒤에는 DJ(Disc Jockey - 디스크자키)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육성이나 라디오 광고가 같이 녹음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음악 외에 이런 비음악적 소음(?)이 포함되는 것은 짜증 나는 일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들어보면 이런 멘트와 광고가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곡들을 정성스럽게 골라골라 녹음해서 만든 테이프(영어로 Mix Tape 불리는)는 내음 씨에게 정말 소중한 보물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음 씨에게도 용돈이라는 것이 생길 무렵 내음 씨는 좋아하는 음악에 돈을 좀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 생일, 크리스마스에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를 사기도 했지만 용돈이 부족했던 시기라 이상하게 가수 한 명의 테이프를 사면 아깝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이 가수의 이 노래, 저 가수의 저 노래를 섞은 섞어 찌개 같은 테이프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놀랍게도 이런 Mix Tape를 만들어주는 레코드 가게가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있던 작은 상가에 레코드 가게가 있었는데 이 가게에 자기가 좋아하는 곡들을 적어서 가져다주면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려 Mix Tape를 만들어 주었고 가격은 가수 한 명의 정규앨범 가격 정도를 받았다. 당시 내음 씨는 오리지널 음반에 대한 욕심보다 좋아하는 여러 가수들의 여러 음악을 몇 달씩 라디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더 좋았다. 색깔 있는 종이에 예쁜 글씨로 가수와 노래의 이름을 적어주던 그 레코드 가게의 무료 서비스(?)도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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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현대로 돌아와 지금의 내음 씨를 보면 출퇴근하다가 우연히 좋은 음악을 들으면 스마트폰에 가사의 일부나 가수를 검색하여 그 곡을 찾을 수 있고 가사나 가수를 모르더라도 멜로디의 일부만 기억하여 스마트 폰에 흥얼거리면 원하는 곡을 찾을 수 있다. 2020년 9월 코로나 19가 인류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주었고 코로나 블루라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를 선물하고 있을 즈음 부쩍 다시 음악을 많이 듣게 된 내음 씨는 갑자기 몇 날 며칠을 기다리며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던 그때가 그리워졌다. 지금은 너무 편하고 쉽게 노래를 찾고 들을 수 있지만 그 옛날처럼 그 노래를 가지기 위해 절실하게 애간장을 태우지 못하기 때문인지 그때 그 곡들과 같은 애정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


라디오 테이프 데크는 없지만 그때 그 시절처럼 일부러 라디오를 들으면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귀찮게 스마트 폰에 있는 보이스 레코더로 녹음해서 노래를 들어볼까 하고 내음 씨는 한 번 생각해 본다.


편하지만 애정을 주기 힘들고 애정을 줄 곳을 찾기 힘든 지금보다 귀찮고 힘들어도 애정을 쏟기 쉽고 애정을 쏟을 곳을 찾기 더 수월했던 그때가 가끔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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