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쭘] 오늘도 알람은 같은 시각에 변함없이 울렸다. 민재는 옷을 차려입고 회사를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옆집 문 앞에 새벽 배송 박스들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이웃집 현관문과 엘리베이터 사이에 새벽 배송 박스들 때문에 민재가 지나갈 공간이 애매해졌다. 민재는 잠시 고민하다가 무척 날씬하지 않은 민재의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 순간 뒤에서 이웃집 문이 열렸다. 아마 새벽 배송 때문이리라. 민재는 새벽에 나오는 이웃이 아마 헝클어진 머리와 용모인 상태로 자신을 보면 무척 당황할 것이라 생각하여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잽싸게 올라탔다. 이웃집에서 옆집 남자가 나와 새벽 배송 박스들을 발로 문에 밀어 넣는 것이 얼핏 보였다. 그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문이 거의 닫히기 직전 '커컹' 소리와 함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이웃집 남자가 버튼을 눌렀을 것이라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옆집 남자가 올라탔다. 오른쪽에 비켜서있던 나를 스쳐가며 “안녕하세요”라고 작고 형식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나도 똑같이 “안녕하세요”라고 하고 층수가 표시되는 LED판을 다시 응시했다. 민재는 갑자기 옆집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 민재가 문을 잡아주지 않은 것에 대해 민재를 야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재는 새벽 배송 때문에 문을 연 사람은 당연히 옆집 여자일 것이라 생각했다. 민재는 항상 5시 45~50분에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옆집 남자를 마주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민재가 일반 사람들보다 출근이 빠른 편이었으므로 이 아파트에서 그 시간에 출근하는 다른 사람들을 마주치기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민재는 옆집 남자가 민재를 야박하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살짝 긴장이 되었다. 긴장이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언젠가 아내에게 옆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석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민재의 아내가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옆집에 꽤 큰 택배박스가 있어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박스에 청와대 마크가 찍혀 있었더랬다. 그래서 민재의 아내는 옆집 남자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재의 아내는 그 택배박스 하나 때문만은 아니고 종종 마주치는 옆집 남자와 여자의 분위기가 왠지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 같다고 했다. 옆집 남자가 청와대에서 일한다고 해서 민재가 긴장할 이유는 없지만 조금 전 엘리베이터 건도 있고 민재는 오늘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지하 1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앞에 있던 민재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통로를 나가 출입문을 여는데 뒤에 바로 옆집 남자가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민재는 출입문을 옆집 남자를 위해 잠시 잡아주고 옆집 남자가 문을 잡자 고개를 돌려 앞장서 걸어갔다. 한 다섯 발자국 걸었을까, 갑자기 뒤에서 옆집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는데 뭐라고 하는지 정확치 않았다. 민재는 순간 “수고하세요”, “잘 다녀오세요” 뭐 이런 종류의 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안면 정도만 있던 옆집 남자가 민재에게 할 말이 달리 뭐가 있겠는가. 거기까지 민재의 생각이 미치자 민재는 무언가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고하세요” 민재는 반쯤 몸을 돌려 말했다. 완전히 몸을 돌리지는 않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면서 45도 정도만 몸을 틀어 말했다. 그 정도면 예의나 매너에 어긋나지는 않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여보세요, 어디 계세요 지금 주차장에서 나가고 있으니까 정문에 있으세요. 금방 갑니다..... 어쩌고저쩌고...” 젠장, 민재한테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굉장히 뻘쭘했다. 옆집 남자는 그냥 전화를 받고 있었다. 민재는 별것도 아닌 것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게 민재니까. 트리플 A형. 민재는 잠시 후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아직도 쌀쌀한 새벽 주차장을 걷는데 얼굴이 달아올라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민재는 웃으며 회사를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