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는 지금 작성하고 있던 파워 포인트를 내려다 보면서 20 페이지까지 할까 아니면 지금 페이지에서 멈추고 산책을 할까 고민했다. 민재에게 근무 시간 중 휴식은 머리 속에 지금까지도 금기로 자리잡고 항상 고민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산책을 하고 와서 보고서를 더 잘 만들 수 있는데 항상 고민을 하게 되는 구나. 이제 부터는 이런 생각이 들면 일단 나가자’
민재는 사무실을 나섰다. 몇 미터를 지나 나무가 조금 많이 있는 길이 나오고 곧 작은 공원이 보였다. 갑자기 햇살이 세게 내리 쬔다. 민재는 주저 없이 사무실을 나설 때 챙겨온 조그마한 양산겸 우산을 폈다.
이걸 쓰게 된 건 올해 부터 였다. 양지와 음지의 온도는 너무도 차이가 났고 산책을 할 때 그늘로만 갈 수 없었기에 양산은 꼭 필요 했다.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막 다녔던 건 민재의 젊은 날이었고 따가운 햇살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고민하게 되자 민재는 양산을 꼭 챙겨서 다녔다. 그런데 과거나 지금이나 선크림을 바르기 싫어하는 민재는 그대로 였다.
이제 민재는 양산이 어색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나이가 들면 전두엽이 퇴화해서 자신을 절제하는 인내심이 줄어든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참지않고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이 나이가 들면서 변하고 생기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몸은 참 신비롭고 이렇게 만들어지고 계획되어진 것이 하늘의 뜻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은 공원을 한 바퀴 돌았을 때 갑자기 지금 작성중인 파워 포인트를 이렇게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무실에만 계속 있었으면 이런 생각은 안 났을 거야. 산책하기를 잘 했지’
민재는 사무실 입구로 가면서 소중한 양산을 잘 접었다. 그리고 꼭 반려 동물인 것 처럼 양산을 툭툭 치면서 계속 잘 부탁한다고 속으로 말했다. 특별할 것 없는 민재의 오전 10시 30분에 특별한 시간과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