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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내음 Sep 20. 2022

양산 든 남자

민재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 산책할까? 아니면 이거 마저 끝내고 할까?’


 


민재는 지금 작성하고 있던 파워 포인트를 내려다 보면서 20 페이지까지 할까 아니면 지금 페이지에서 멈추고 산책을 할까 고민했다. 민재에게 근무 시간 중 휴식은 머리 속에 지금까지도 금기로 자리잡고 항상 고민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산책을 하고 와서 보고서를 더 잘 만들 수 있는데 항상 고민을 하게 되는 구나. 이제 부터는 이런 생각이 들면 일단 나가자’


 


민재는 사무실을 나섰다. 몇 미터를 지나 나무가 조금 많이 있는 길이 나오고 곧 작은 공원이 보였다. 갑자기 햇살이 세게 내리 쬔다. 민재는 주저 없이 사무실을 나설 때 챙겨온 조그마한 양산겸 우산을 폈다.


 


이걸 쓰게 된 건 올해 부터 였다. 양지와 음지의 온도는 너무도 차이가 났고 산책을 할 때 그늘로만 갈 수 없었기에 양산은 꼭 필요 했다.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막 다녔던 건 민재의 젊은 날이었고 따가운 햇살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고민하게 되자 민재는 양산을 꼭 챙겨서 다녔다. 그런데 과거나 지금이나 선크림을 바르기 싫어하는 민재는 그대로 였다.


 


이제 민재는 양산이 어색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나이가 들면 전두엽이 퇴화해서 자신을 절제하는 인내심이 줄어든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참지않고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이 나이가 들면서 변하고 생기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몸은 참 신비롭고 이렇게 만들어지고 계획되어진 것이 하늘의 뜻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은 공원을 한 바퀴 돌았을 때 갑자기 지금 작성중인 파워 포인트를 이렇게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무실에만 계속 있었으면 이런 생각은 안 났을 거야. 산책하기를 잘 했지’


 


민재는 사무실 입구로 가면서 소중한 양산을 잘 접었다. 그리고 꼭 반려 동물인 것 처럼 양산을 툭툭 치면서 계속 잘 부탁한다고 속으로 말했다. 특별할 것 없는 민재의 오전 10시 30분에 특별한 시간과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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