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의 아내 현수는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분명히 앱을 보면 바로 앞에 있어야 하는데 가게는 보이지 않고 아무런 간판이나 표지도 없었다.
“저기 계단이 있는데?”
건물 구석에 작은 문이 있었고 낡은 계단이 보였다. 현수와 민재가 그 쪽으로 가자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보였다. 1명 정도 오갈 수 있는 좁은 계단이었다.
현수가 먼저 내려가기 시작했고 민재는 그 뒤를 따랐다. 현수가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민재의 코 속으로 진하고 고소한 커피 냄새가 훅 하고 들어왔다.
“지금 만석이어서 기다리셔야 하는데요, 여기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들어가자 마자 남자 직원 하나가 민재와 현수에게 그렇게 안내를 해주었다 민재는 직원이 가르키는 의자로 이동하면서 카페 안을 둘러 보았다. 벽면은 갈색 벽돌 무늬로 되어 있었고 테이블은 5개가 있고 의자는 테이블당 4개도 있고 2~3개도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카페 정 중앙에 마치 요새 유행하는 중앙정원 공간 처럼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테이블은 없었고 커피콩 볶는 기계와 커피 콩 포대, 직원들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 들이 그냥 아무렇게 책상과 의자에 널부려져 있었다.
건너편 바에도 의자가 4개 있었고 바 넘어로 3명의 직원이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민머리에 귀걸이를 한 남자 1명과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남자,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앞에 웨이브 머리를 한 남자 였다. 세 명다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지금 자리가 없어서요,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민재를 보고 웨이브 머리를 한 직원이 다시 말을 했다. 민재가 입구에서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자기가 처음에 안내한 말을 못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말을 걸었다. 하지만 민재는 앉기 싫었다. 수술을 받은 이후에는 되도록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직원 입장에서야 덩치큰 민재가 서 있는 것이 신경쓰일 수 있겠지만 민재에게는 이것이 타협의 안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뚝뚝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직원에게 말을 했다.
“서 있는 게 더 좋아서요.”
손님이 서 있겠다고 해서 쫓아낼 수 는 없는 일일 것이고 직원은 체념한 듯 다시 커피 만드는 일로 돌아갔다.
테이블 마다 분위기는 모두 달랐다. 커플인 듯 보이는 남녀가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기도 했고 친구사이로 보이는 세 명의 남녀가 깔깔 대고 있기도 했다.
“자기야 냄새 너무 좋다 그지?”
현수가 민재의 팔을 끌며 말을 했다.
“응 그러게. 그냥 여기 있기만 해도 좋다”
“뭐 마실거야?”
“엉 자기가 2개 골라줘 나눠 마시자. 난 아무거나 좋아”
“그럼 아이리쉬 커피하고 여기 시그니쳐 아인슈페너 2개 시키자”
“아이리쉬 커피면 술 들어갈텐데 괜찮겠어? ㅎㅎ 난 좋아”
“자기가 운전할 건데 뭐 ㅎㅎ 난 좀 취해보지뭐”
현수가 해맑게 웃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바에 앉아 있던 비니를 쓰고 있던 여성이 계산을 하고 카페를 떠났다. 한 명이 앉아 있었지만 바에는 원래 4개의 의자가 있었고 2개는 계산과 주문한 커피를 건네주는 공간이 없어서 원래 사람이 앉아 있지 않았다. 그 옆에 있는 2개의 의자에 현수와 민재는 자리를 잡았다.
“아이리쉬 커피 하고 시그니처 아인슈페너 주세요”
“네”
민머리에 귀걸이를 한 직원이 무뚝뚝하게 대답을 하고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커피를 갈고 시트를 놓더니 오른손으로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물을 따르는 방식이 민재의 것과 달랐다. 민재는 원을 그리면서 따르는데 이 직원은 일자로 곧게 따르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정원이 학원이 5시에 끝나니까 4시에는 출발해야 겠어”
민재는 한참을 커피 만드는 직원의 모습을 멍하게 보고 있다가 현수가 말을 걸어 시선을 거두었다. 불멍에 이어서 커피멍도 힐링에 무척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민재는 생각했다.
“응 그래. 정원이 추운데 기다리게 하면 안되지”
민재는 막내인 정원이를 걱정하며 말하는 현수를 보고 휴대폰에서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3시 20분을 조금 넘었었다. 원래 오래 커피를 마시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두 사람이었기에 4시에 출발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마침내 두 잔의 커피가 두 사람 눈 앞에 등장했다. 아이리쉬 커피는 조금 큰 샴페인 잔 처럼 생긴 유리잔에 정말 검게 보이는 액체가 담겨 있었고 시그니쳐 아인슈페너는 하얀 머그컵에 크림과 시나몬 가루가 뿌려진 채로 있었다. 현수는 아이리쉬 커피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우와 맛있다”
현수는 탄성을 자아 냈다. 민재도 아인슈페너 잔을 들고 숟가락으로 크림, 시나몬 파우더, 커피를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넣었다. 따뜻했고 신선해서 더 고소하게 느껴지는 쌉쌀한 커피와 달콤한 크림, 시나몬 파우더 특유의 향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이번에는 잔을 들어 한모금 마셔봤다. 민재는 회사에서 보낸 고된 한주가 커피 한잔으로 꽤 근사하게 보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마셔봐”
현수는 자신이 마시던 아이리쉬 커피를 민재에게 내밀었다. 민재는 아이리쉬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맛을 보았다. 오묘한 맛이었다. 예전 스트라스부르에서 추운 겨울에 뱅쇼를 처음 마셨던 것 처럼 알콜이 들어간 또 하나의 새로운 음료가 민재의 미각을 확 바꾸는 듯 했다.
“이야 이거도 맛있네”
“응 맛있지. 운전해야 되니까 그만 마시고 ㅎㅎ”
“이제 슬슬 일어나야 겠는데”
“그래”
민재와 현수는 의자를 집어 넣고 짐을 챙겼다. 막내 정원이가 좋아하는 빈대떡과 큰 딸인 혜원이가 사달라고 했던 올리브 치아바타가 든 가방 등 두 사람의 손은 짐으로 가득이었다. 민재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갔고 현수가 뒤를 따랐다. 차가운 바람이 훅 하고 두 사람의 얼굴을 지나쳐 간다. 그런데 입안에 여전히 남은 작은 지하 카페에서의 커피가 맴돌아서 들어오기 전 처럼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이번에 마신 입안의 커피 맛은 영원히 갈 것 같았다. 민재는 혀끝으로 커피맛을 다시 느끼면서 차가 있는 주차장 쪽으로 현수와 함께 총총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