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물

아버지 생신

by 심내음

내음 씨는 아버지 생신이라 점심 약속을 잡았다. 저녁이 더 좋을 수도 있는데 최근 수술을 받아 아직 회복 중이어서 저녁에는 누워 있고 싶었다. 약속 장소인 식당으로 갔다. 어제 전화로 생신인데 뭐 드시고 싶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 아버지 생신인데 아버지 드시고 싶은 걸로 먹어야죠 "


라고 채근드리니 그제야


" 그럼 얼마 전에 형이랑 먹은 전복 갈비찜 먹으러 가자 "


라고 메뉴를 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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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내음 씨는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산을 들고 걸으면 아직도 불편하다. 흐린 구름을 뒤로하고 식당에 도착했다. 점심을 약간 빗겨나간 13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직 오시지 않은 것 같다. 내음 씨는 아버지가 들어오실 때 잘 볼 수 있는 자리로 우선 앉았다.


아버지는 티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우산을 드신 편한 차림으로 오셨다. 내음 씨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 중이셔서 왠지 빨래도 제대로 못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아버지 시킬까요? "

" 그래 얼른 시켜라. 너 바쁜데 얼름 먹고 들어가야지 "


그러던 중 내음 씨는 갑자기 아버지의 벨트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벨트는 예전 학교 때 보이스카웃들이 하는 짙은 감색에 플라스틱 자동 버클이 있는 것이었다.


' 그래도 예전에는 브랜드 제품 1~2개를 번갈아 가면서 매셨는데 퇴임하시고는 그냥 편하게 다니시는 거겠지 '


라고 생각했다. 벨트가 너무 낡아 보여 계속 신경이 쓰였다.


' 내가 벨트를 사드린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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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시작했다. 아버지께 전복을 드시기 좋게 잘라드렸다.


" 너 먹어라. 난 하나면 된다 "


전복이 4개 갈비가 대여섯 개 들어 있었는데 전복 하나만 드시고는 나는 됐다 나는 됐다 너 나머지 먹어라를 반복하셨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랬던 것 같다. 매번 하나만 드시면 충분하다고. 뭘 시켜도 하나만 드시고는 충분하다 배부르다 라고 하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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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전복과 갈비가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식사를 끝냈다. 아버지는 계산을 하시겠다고 카운터로 가신다. 70이 넘으시고 아들이 40이 넘었어도 왜 당신이 계산을 하시려고 하는 걸까 하고 내음 씨는 생각했다. 수입이래야 연금에서 생활비 어머니 드리고 남은 몇 푼이 다일 텐데. 하긴 내음 씨도 월급에서 생활비에 애들 학원비 빼면 얼마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계산을 끝내고 인사를 드리려는데 내음 씨 아버지는 갑자기 국숫집을 잠시 가자고 하신다. 양이 부족하셔서 그럴리는 없는데 왜 갑자기 국숫집을 가자고 하시는지 영문을 몰랐다.


국숫집에 들어가셔서 국숫집 사장님과 인사를 하시더니 다짜고짜 콩물을 주문하신다. 그러면서


" 우리 애가 콩물을 좋아해서 하나 사주려고요 "


라고 하신다. '오늘 당신이 생신이신데 왜 내 콩물을 그렇게 챙기시나' 내음 씨는 좀 울컥하고 북받쳤다. 내음 씨도 벌써 두 딸이 중학생이 되고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아예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다 아는 것 같지도 않다. 불효를 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효도를 하는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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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라 비가 다시 내린다. 내음 씨는 오른손에 우산을 들고 왼손에는 콩물 비닐봉지를 들고 오는데 왠지 걸음이 터덜터덜해진다. 내음 씨는 그냥 아버지가 안쓰럽고 마음이 안 좋았다.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이 콩물로 맛있게 콩국수를 먹을 수 있을까? 소금 간은 안 해도 되겠다. 40대가 되고 눈물이 많아졌는데 왠지 이 콩물은 소금 간을 안 해도 짭짤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가 퇴임하시고 많은 물건들을 처분하셨는데 한 두개 있었던 브랜트 벨트도 그중에 하나였다. 몇 푼이라도 받아서 자식들, 손주들 용돈 주고 싶다고 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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