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기 관리는 어디까지 허용될까?
남자임에도 학창 시절부터 피부에 관심이 많았다. 여드름 때문이었다. 얼굴 안에 가득 찬 온갖 여드름은 일상생활의 자신감마저 하락하게 만든다. 자연히 여드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단은 다양한 화장품을 써보면서 내 피부에 맞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여드름이 한창 물 올랐을 때는 피부과의 시술을 받기도 했다. 여드름이 점차 잦아지던 20대 후반 즈음엔 피부과의 시술은 일시적인 것이란 이야기에 솔깃해 피부 관리숍을 찾기도 했다.
피부과까지는 문제없었지만 피부 관리숍 방문은 무척이나 고민되는 일이었다.
남자가 피부관리숍까지...?
이런 편견이 나에게도 있었다. 막상 다니면서 주변에 잘 알리지도 못했던 것 같다. 8회가량 받아봤는데 결과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이리 좋은걸 그동안 여자들만 받아왔던 것인가.
최근엔 겨드랑이 제모도 시작했다. 호기심에 한번 해보았는데 너무 편하다. 특히나 여름철에는 더욱 그렇다. 시원한 느낌이다. 꾸준히는 아니더라도 비정기적으로 하게 될 듯싶다. 또한, 복부 경락도 받아봤다. 늘어나는 뱃살이 고민이었는데 운동하기는 귀찮아 선택한 방법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아파 아마도 1회성 이벤트로 끝날 것 같다.
시대가 바뀌었다. 남자들도 외모에 신경을 쓰는 요즘이다.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 테지만 스스로도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중 메이크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남자의 메이크업이라고 하면 BB크림을 바른 게 전부였다. 이제는 좀 더 나아가 파운데이션에 관심이 생겼다
열심히 검색해서 남자들도 쉽게 바를 수 있는 파운데이션을 검색했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블로그만 보고 무작정 살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내 피부에 맞는 색상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매장에 직접 가야 한다... 뭔 놈의 색상이 그리 많은지... 15가지나 된다. 기왕 구매한 거 잘못된 색상을 샀다가 쓰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용기 내어 백화점 매장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매장 직원도 놀라지 않는 눈치로 자연스럽게 파운데이션 색상을 추천해 주었다. 2가지 색상 중에 턱 밑에 조금 발라준 걸 보고 자연스럽게 매칭 되는 색으로 골라 사겠다고 했다. 그런데 잠깐 앉아보라고 하면서 얼굴 전체에 메이크업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당황스러웠지만 늘 받아왔다는 듯이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메이크업 중에 이것저것 설명해 주는데 여전히 어색하다. 피부결을 매끄럽게 해줘 메이크업을 더 잘되게 만들어 준다는 프라이머를 콧 등에 바르고 브러시로 얼굴 전체에 파운데이션을 발라주었고 눈썹을 칼로 정리해주고 그려주기까지 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누가 볼까 두려워 곤욕으로 느껴져 목석과 같이 가만히 있었다. 모든 메이크업이 끝나고 허둥지둥 결재를 하고 그곳을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제대로 메이크업 결과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결과는 다행히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하고 다녀도 될 것 같은 느낌,
과하게 말하면 나도 아이돌이 된 것 같은 심한 착각
남자의 피부 관리도 익숙지 않은데 메이크업은 더더욱 그렇다. 남자가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남자의 관리가 흉은 아니지만 여전히 관리하는 남자가 더 적은 시대는 맞지 않다. 어쩌면 30대의 내가 가진 편견일지 모른다. 요즘 20대는 다를지도 모를 거란 기대도 해본다. 내가 가진 생각은 젊은 생각이라고... 스스로 최면이라도 걸어봐야 할까. 그래도 일단 변해야겠다. 어찌 됐든 멋있는 남자가 더 인기 있는 건 변함없는 일일 테고 멋있어지기만 하면 그만 아닌가. 누군가 부러워하는 그런 모습이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본다.
물론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힘들다는 건 알지만...
ps. 그나저나 이제는 얼굴에 있던 여드름 자국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돈 나갈 때 투성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