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선택하는 미용실
지난주, 미용실에 갔다. 올해 찾은 5번째 미용실이다. 줄곧 찾던 내 담당 디자이너가 지방으로 떠나는 바람에 나는 요즘 '미용실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종로, 지난달에는 신사동 가로수길, 몇 달 전에는 동네 미용실을 찾았다. 어떤 곳은 단번에 발길을 끊기도 했고 다른 어떤 곳은 두서너 번 찾았고 또 다른 곳은 앞으로 몇 번 더 가 볼 생각이며 나머지 두 군데는 고민 중이다. 지금 기세라면 서울 부근에 있는 미용실은 한번씩 다 가 볼 기세다.
지금껏 꽤나 미용실을 자주 바꾼 편이다. 남자가 까다롭게 군다 할지 모르지만 요즘은 남자도 꾸미는 시대다. 내가 패션 감각이 뛰어나거나 미남형은 아니나 옷이나 외모에 관심은 많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해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미용실을 알아보곤 했다.
많은 미용실을 오가며 몇 가지 선택의 기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미용실 본연의 역할을 만족시키느냐가 선택의 제 1순위다.
머리 어떻게 해 드릴까요?
미용실에서 늘 듣는 이 말에 이 사진 저사진 들이밀곤 하는데 꼭 닮은 머리가 아니더라도 내게 어울리는 머리를 해 주는 곳이어야 한다. 혹여나 내 생각과 완전 다른 머리 스타일이 완성되는 날에는 시무룩한 기분을 몇 주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미용실은 머리를 잘 못 자른다고 인식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미용실보다 미용사의 몫이다. 때문에 미용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면 미용사만 바꾸어 다시 찾기도 한다.
고객마다 두상이나 원하는 스타일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을 만족시키려면 고객 한 명에게 정성을 쏟는 것이 필요하다. 작년까지 약 3년 동안 찾던 미용실은 1:1 시스템이었다. 커트 예약 시에는 1시간, 펌이나 염색 예약 시에는 2시간 이상 다른 손님의 예약을 받지 않고 오직 한 명에게 집중한다. 덕분에 시술 전 충분한 상담도 가능하다. 자연히 무작정 자르기 시작하는 곳 보다 시술 후 만족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도 중요하다. 요즘 남자 커트 가격이 많이 올랐다. 학생 때는 오천 원이면 충분했는데 요즘은 만 원짜리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물가가 오르고 인건비도 올랐다. 그래도 어떨땐 20분 남짓 밖에 안 걸리는 시간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에 대해 나름의 한계점이 있다. 미용사를 디자이너로 칭하며 그 등급을 정해놓고 등급에 따라 비용이 다른 곳도 탐탁지 았다. 내 담당 디자이너의 승진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계산대 앞에서 쓴 미소로 축하의 인사를 건넨 적이 있다. 대체 진급은 회사에서 시켜 놓곤 부담은 왜 고객에게 떠 넘기는 것일까. 어떤 곳은 수석 디자이너의 수가 일반 디자이너들보다 많다. 돈을 벌기 위한 꼼수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직급이 높다고 경험이 많다고 모두 실력이 좋거나 내 머리를 잘 잘라준다는 보장은 없다. 무조건 '비싼 미용사'들을 선호해선 곤란함을 느꼈다.
제품을 강매하려는 미용실은 정말 싫다. 주로 동네 미용실에서 발생하는 일인데 머리 관리를 위해서 좋다며 자신의 미용실에서 판매하는 왁스, 에센스 등을 추천한다. 만만치 않은 가격에 손사래를 쳐도 집에 비슷한 제품이 있다고 말해도 이 제품이 마치 세계 최고인양 극찬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안 사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 미용사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다. 대충의 가위질 몇 번을 더하더니 끝났다고 말한다. 옆머리 조금만 더 잘라달라고 말하면 투덜거린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손님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한참 잘못되어 있다.
대체 내가 찾는 미용실과 미용사는 어디에 있는 걸까. 혹시 괜찮은 곳을 알고 있다면 언제든 '추천 환영'이다. 나는 항상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추신. 남자 머리를 잘하는 곳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