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라는 안온함을 깨고 얻은 것들
보통 새해가 오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목표를 세운다. 무언가를 바꾸겠다고 다짐하고,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그런 과정이 불필요하다고 믿었다. 굳이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하루는 무사히 흘러갔고,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삶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하루를 성실히 보내는 것에 집중하는 삶.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내일을 맞이하는 반복적인 리듬. 그 안에는 커다란 불만도 없었지만, 무언가를 갈망하는 뜨거운 에너지도 없었다.
학창 시절엔 입시라는 명확한 학사 과정이 있었고, 대학생 땐 취업이라는 지향점이 있었다. 그 속도감에 익숙해진 탓인지 사회인이 된 후에도 한동안은 지켜질지 알 수 없는 식상한 다짐들을 내뱉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다짐들은 나에게 어떤 특별함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목표 없는 평온함'에 길들여져 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새해는 내게 조금 특별하다. 무언가를 새로 결심해서 맞이한 새해라기보다, 이미 지나온 2025년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자연스럽게 다음 페이지가 열린 기분이기 때문이다.
몸의 감각을 깨우며 발견한 의외의 즐거움
2025년은 나를 흔들어 깨운 '실험의 해'였다. 2년 전 바디프로필을 찍었던 관성으로 헬스장은 꾸준히 나갔고, 평생의 숙제인 투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익숙한 것들을 지속하는 일은 안정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자극할 동기부여가 간절해지던 참이었다.
그때 뜻밖의 균열이 생겼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러닝이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대회용 러너'에 불과했다. 대회 직전에만 겨우 두어 번 연습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지난 4월, 달리는 도중 멀쩡하던 스마트워치가 꺼져버린 사소한 사건이 내 러닝 인생을 바꿨다. 홧김에 지른 러닝 전용 워치에 내 발자국이 기록되는 것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5월에 26km를 뛰었던 내가 이제는 매달 70km 이상을 달린다. 14년 동안 단 6번뿐이었던 대회 참여 횟수는 올해에만 9번으로 늘어났다.
러닝이 폭발적인 에너지의 발산이었다면, 필라테스는 그 에너지를 담는 그릇을 정교하게 빚어주었다. 주 1회의 짧은 시간이지만 몇 개월 만에 내 몸의 지도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굽어있던 등과 어깨가 펴지고, 무너졌던 좌우의 균형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 몸을 내가 온전히 컨트롤하고 있다는 감각, 그것은 생각보다 큰 효능감을 주었다.
도구의 확장,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다
몸이 가벼워지자 시선은 자연스럽게 외부로 향했다. 오래전부터 생각만 해왔던 액션캠을 손에 쥐었다. 대단한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야심보다는, ‘내가 이런 걸 기획하고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다. 완벽한 결과물과는 거리가 멀지라도, 스스로 퀄리티를 높여가는 과정 자체가 좋은 경험이었다.
여기에 AI라는 강력한 도구가 더해졌다. "요즘 다들 쓴다더라"는 유행어 뒤에 숨지 않고, 실제 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파트너로 AI를 받아들였다. 검색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지점에서 나는 관망하는 대신 직접 파도를 타기로 했다. 쓰면 쓸수록 이 도구는 나에게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지적 탐구심을 자극했다.
유지를 넘어, 확장의 삶으로
이런 일들이 하나둘 쌓이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는 것보다, 단 한 번이라도 직접 해본 경험이 생각의 기준을 바꾼다는 것. 준비가 완벽해지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지만, 작은 행동 하나는 반드시 다음 선택의 방향을 비춘다.
그동안 나는 신중한 성격 덕분에 단단하게 성장했지만, 동시에 많은 기회를 신중함 속에 묻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2025년을 지나며 나는 '유지'에 익숙했던 삶에서 '실험'을 허용하는 쪽으로 조금 더 이동했다. 이 변화는 겉으로 보기엔 작을지 몰라도 내 안에서는 분명한 지각변동이었다.
그 결과, 참 오랜만에 새해 목표가 생겼다. 억지로 짜낸 다짐이 아니라 이미 해온 것들의 즐거운 연장선이다. 10km 기록 단축과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고, 3년 만에 바디프로필에 재도전하며, 영상 제작의 깊이를 더해보려 한다.
예전 같았으면 굳이 적지 않았을 것들이다. 하지만 이번 새해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새 사람이 되겠다는 거창한 선언 대신, 지금의 나를 조금 더 확장해보고 싶다는 마음. 유지하던 삶 위에 아주 얇은 한 겹의 경험을 더 얹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새해는 부담이 없다.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어제보다 한 발짝 정도만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이번 새해는, 조금 특별하다.
새 사람이 되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한 겹의 색을 더하는 한 해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