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바지의 의미
수개월 전부터 회색 바지가 그렇게 사고 싶었다. 최대한 그 흔한 교복 바지와 가까운 색상으로 말이다. 문득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출근길에 눈에 띄었다.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근심, 걱정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 자유로움이었다. 두발 자율화인지 염색도 마음껏 한 모습이 더 그랬다. 물론 그들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비롯한 나름의 고민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이미 겪어본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양 느껴졌나 보다.
좀 더 솔직해 보자. 나는 단지 교복 바지가 갖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젊음을 뺏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그래서 더 슬프다. 나도 이렇게 젊음이 그리울 나이가 된 건가.
한국 나이 31살. 난 아직 젊다고 생각한다. 다만 더 젊어지고 싶을 뿐이다. 이제 와서 젊었을 때 못 했던 것들이 후회가 된다.
해법은 간단하다. 이제와 서라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야 한다. 문제는 막상 닥치면 그게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심보인지 나조차 이해하기 힘들다. 왜 쉬운 방법을 놨두고 안 되는 것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건지.
어른들의 말은 틀린 게 없어!
이 말이 점점 이해가 된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나도 이렇게 늙어가는 것인가.
결국 며칠 전, 회색 바지를 손에 넣었다. 학창 시절 그리도 지겹게 입었던 그것과 몸에 맞는 모양새는 달랐지만 결국은 같은 회색 바지였다. 이것을 입고 비록 다시 젊어지진 못 하겠지만 못 다 핀 젊음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