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자의 솔직한 고백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바라보는 천장이 다르다.
지난 2년 2개월의 시간이 꿈만 같다.
회사에서 휴가를 받아 3일만 다른 곳에 다녀와도 꿈을 꾼 듯한 기분인데, 784일이란 시간도 기간의 차이일 뿐, 돌아와서도 여전히 꿈을 꾸는 것만 같은 기분은 3일 차 휴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파도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게끔 열어둔 베란다 창이 아니라,
미세먼지와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은 추위로 꼭 잠가져 버린 7층 방 창문 밖을 바라보는 내가 꼭 감옥에 있는 것만 같다.
'감옥이라니...?!'
아무리 날 것 그대로 쓰고자 했지만, 감옥이란 표현은 너무 한 게 아닐까 하면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내는 그러했나 보다.
***
나는 여행자이다.
작년 2018년 11월 1일 귀국하고 나서, 지금은 서울 여행을 하고 있다.
어쩜 이 "여행자"라는 타이틀에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여행하고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서울에서 여행 기분을 내기란 여간 쉽지만은 않다.
왜 그러한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들 너무나 바쁘다. 나만 빼고...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바쁜 사람들'로 돌아가고 있다.
귀국한 다음날, 지하철을 타러 갔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내가 2년 2개월이나 여행을 하고 돌아왔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더 이상 내 몸 만한 배낭을 메고 있지도 않았다.
여기서 왜,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내게, 당신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아는 사람도 아닌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느끼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여행 중에 대중교통을 타면, 모두들 노랑머리 동양인 아가씨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러다 얼굴에 구멍이 나겠다 싶을 만큼 대놓고 시선을 주기도 하고, 안 그런 척 다른 데를 보고 있다가도, 내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말을 걸면, 그걸 왜 망설이다가 이제 물어보냐는 식으로 대답해주는 게 일상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따뜻한 미소와 함께 말이다. 그곳이 지난 시간, 내가 있었던 '바쁘지 않은', '관심받던' 세상이었다.
그 날, 2년 만에 지하철을 탔을 때, 지하철 모두의 시선은 핸드폰을 향해 있었다. 어쩌다 나와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웃어주려고 하면 그전에 다들 먼저 시선을 피해버렸다. 한국에는 이런 문화가 없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갑자기 너무... 너무, 외로워졌다.
서울 생활은 삭막하게 다가왔다. 여행기를 정리한다며 글 쓰는 백수= 나 말고는, 다들 일분일초를 쪼개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지내는 내가 쓸모없는 잉여인간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이렇게 지낸다는 뜻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밥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경제활동을 위해 딱히 노동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팔자 좋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팔자가 좋은지 아닌지는 그 상황이 되어봐야 아는 건데, 나는 단연코 지금 팔자 좋은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
외롭다. 고독하고, 쓸쓸하다.
나 역시 한 때는 당신처럼 어떻게 하면 연봉을 올릴까 고민하던 회사원이었고, 취업 걱정으로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도서관에 다니던 대학생이었으며,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눈밑에 파스를 바르고 공부하던 고3 수험생이었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바쁘게 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 긴 여행을 다녀온 것뿐이다.
***
"진짜 멋있다!"
"나도 언젠가는 너처럼 세계 일주 떠나고 싶어!"
"우와. 나라면 절대, 도저히 못할 것 같아!!!"
"너무 부럽다~"
"내 인생에는 꿈도 못 꿀 일이지... "
"또 언제 나가?"
...
"그래서 이제 뭐 할 거야?"
지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부럽다는 사람, 나처럼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 그냥 대리 만족만 하겠다는 사람,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후자의 그들 중에는 정말 내가 '어떻게' 살지가 궁금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렇게 남들이 쉬이 용기 내서 가지 못하는 여행(놀고먹는 행위)을 2년이나 했으니, 본인들이 못한 걸 배 아파서, '현실 부적응자'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내가 방황하길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돌아와서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그들이' 그렇게 바라지 않아도, 실제로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사회에 돌아가지 못했으며, 떳떳한 직업을 찾지도 않은 채, 여전히 외로워하고, 글 쓰는 백수로 살고 있다.
영화처럼 큰 반전은 없었다. 그저 그 순간 충실하게, 게으르게 여행을 즐겼을 뿐이니 말이다.
***
이쯤 되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그래서 당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묻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게,
긴 여행을 떠났던 걸 후회하냐고 묻는 다면 "노!".
다녀와서 외롭고,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고, 잉여인간처럼 느껴지는 지금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은 "예쓰!".
그렇다.
"나는 행복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몽골의 지평선, 어느 유목민의 게르 앞에서 한 밤중에 쏟아지는 별에 덮여 질식할 것 같은 반구에 시리게 누워있었고,
마다가스카르 작은 어촌 마을에서 영원히 바닷속으로 잠겨버릴 것 만 같은 일몰을 보았다.
지구에서 가장 건조하고, 그 표면이 달과 같다고 하여 '달을 계곡'이란 이름이 붙은 아타카마 사막에서 따가운 모래바람에 전장의 병사처럼 맞서도 보았고,
다나킬에서는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수만 가지 색깔의 용암을 보고 유황가스에 질식할 듯 괴로워하면서 지구별 공기를 그리워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딛어도 나라는 존재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녹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빨갛고 뜨거운 용암 앞에도 섰고,
파타고니아에서는 '빙하기'에 나오는 그 빙하 얼음벽이 파열되는 순간을, 상상하지도 못할 굉음과 함께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정말 하늘에 영혼이 있다고 믿을 만큼, 일분일초 형형한 빛을 내며 밤새도록 춤추는 오로라의 향연에 저절로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끊임없이 얼어붙었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 오리발을 물고 놓지 않는 바다사자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겼던 순간, 그곳 갈라파고스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콜롬비아에서는 말로만 듣던 오리지널 아라비카 커피 한잔의 여유를 배웠고,
헤밍웨이가 즐겨마셨던 모히또를 들이켜고는 올드카에 몸을 싣고 쿠바 말레꼰 석양 드라이브를 즐겼다.
물을 찾아 이동하는 수만 마리의 누떼들로 땅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눈물을 훔쳤던 세렝게티 초원,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는 볼리비아 우유니에서는 하늘과 맞닿은 또 다른 하늘을 보았다.
캐리비안 해적들이 있었던 아름다운 섬 산안드레스에서 보석 같은 에메랄드 빛 카리브 해로 뛰어들었고
가장 정을 많이 느꼈던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는 나를 '딸'이라 불러주는 가족도 생겼다.
그러니 당연히 이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이 인생의 정답이자,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인 줄 알고, 입술을 깨물며 공부했던 십 대의 나에게, '타임머신 있어서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고 해도, 상상도 못 할 일들을 네가 겪게 된다'라고, 대학교 학비를 내기 위해 알바를 두 개를 하느라, 삼각김밥을 한입에 물고 이동하며 다녔던 이십 대의 나에게, '해가 지는 것만 봐도 눈물 나게 행복하고, 꿈만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라고, 일요일까지 잔업에, 야근에 차라리 당장 죽어서라도 잠을 실컷 자고 싶었던 삼십 대의 나에게, '세상엔 아직 죽지 말고, 경험해야 하는 천국들이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
지금 외로운 것은 너무 꿈만 같은 경험을 하고 와서 아직도 돌아왔음을 실감하지 못해서 오는, 잠시의 상실감일지니라. 하지만 언제 그랬나 싶을 만큼, 시간이 지나면 씩씩하게 잘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눈곱을 떼고 있는 옆자리에 앉은 당신의 아는 언니, 동생, 또는 딸처럼 일상으로, 평범하지만 소소하게, 행복하게 말이다.
하지만 여행했던 순간이 길었던 만큼, 조금 더 이런 '잉여로운 사치'를 즐기는 걸, 허락해주려 한다(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아끼는 이들은 '사랑' 이란 이름으로 뼈를 때리는 조언들을 하지만). 때가 되면 지금의 자리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