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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스토리 Feb 16. 2019

떠나야만 했다.

감히 숙명이란 이름을 카드를 뽑았다.


숙명.宿命.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그러했다. 나에게 여행이란, 어쩜 숙명 같은 거였다. 




1.

"왜" 냐고, 왜 떠나게 되었냐고 물어 들 봤다. 

생각해보니 그냥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나는 본디 떠나야 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컸다. 세상에 나가야 되는 사람이고, 할 수 있으면, 아니, 할 수 있지 않아도 그래야만 한다고, 어디서 부터, 언제부터 이러한 신념이 내 안에 새겨진지는 모르겠지만, 믿어온 대로 말하는 대로 정말 나는 떠나게 되었다. 



2.

그러면 또  "30대에 다 두고 떠나기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물어왔다.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이룬 것을 모두 제자리에 두고 떠나는 것이 요즘 말로 1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과 자신감,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물론 키우던 고양이를 직원들에게 맡기고 떠날 때는 피눈물이 났지만.) 


여행 중에 만난 이들 중에는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 같아서 나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과 나는 방향이 달랐다. 나는 더 잘 살기 위해서 떠났다. 



3.

그러하다면, "정말 두려움이 하나도 없었나요?"라는 질문은 어떤가?

여행 중에 어떤 일을 (주로 부정적인 사건) 만날지 두렵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떠나고 나서 생길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떠나기 전에 잘할 수 있을까라던가, 돌아와서 잘할 수 있을까 란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잘해야 하는 거지. 그냥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왜 그렇게 잘 살아야 하는 거지. 그냥 살면 안 되는 것인가.

그래서 대답은 "없었어요."라고 했다. 



4.

그래. 그렇다면 "여행을 다녀와서 어떻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인에게도 많이 들었다. 떠나기 전 나는 하는 일이 있었고, 본디 1년이란 계획이었으므로, 여행 후에도 다시 본업에 복귀할 생각이었다. 능력이 있고, 자신감이 있으니, 혹여 본업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밥 굶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경력이 중단되는 것을 걱정해봤자, 남들과 나의 인생은 다르니, 비교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단순해졌다. 특히 여행이란 특성상 시험이나 승진처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니 정답은 없는 게 당연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1년 뒤, 2년 뒤의 일을 지금 걱정해봤자 길 위에서 내가 누굴 만나고 어떤 걸 보며, 느끼고, 생각하고, 변하게 될지는 그건 하나님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용기는 필요하다. 나는 30대에 떠났지만, 내가 20대였다면 쉽게 떠날 수 있었을까. 아니. 만약 내가 40대였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긴 여행을 떠나는 게 누구에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만의 상황에서 많은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결단을 내리는 것은 단연코 여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대가 얼마나 용기를 내고 싶어 하는지 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숙명이라 믿고 다녀온 내가, 내 멋대로 감히 손꼽는 이유와 '여행'에 대해 내린 나만의 정의가 여기에 있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

죽을 때까지 그리워 추억들.

남은 일생의 원동력.



이것이 여행이었다. 이왕이면 긴 여행, 세계 일주 말이다. 






사람들, 참 숫자를 좋아한다. 

나 역시 그랬다.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숫자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여행을 떠난 것은 서른넷이 이었고, 돌아와 보니 서른여섯의 겨울, 그리고 금방 해가 바뀌어 서른일곱이 되었다. 평소 나이를 잘 생각하고 살지는 않지만, 한국에 돌아오니, 어쩔 수 없이 숫자에 민감하게 되어버렸다. 일부러 그렇고 되려고 한 게 아니라, 새로 만나는 이들마다 그렇게 나이를 물어봐서 나도 내 나이를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그러나 길에서 숫자가 가지는 의미는 퇴색한다. 이미 그러한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당신의 나이도, 당신이 얼마를 벌었고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했는지, 당신이 몇 등이나 했는지 말이다. 길 위를 걷는 모두가 평등했다. 서로를 재고, 재단당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나였다. 오롯이 나 자신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길 위에서 당신은 가장 솔직하게 당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런 면이 있었나 라고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감히 떠나라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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