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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Jan 21. 2017

몰아치는 겨울 동해 바다 여행

포항, 영덕, 울진... 덤으로  대전까지!

 3박 4일은 꽤 길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다. 이렇게 4일 동안 길게 가족 여행을 한 것이... 제주도 여행도 2박 3일이면 끝났었는데. 3박 4일을 새벽부터 밤까지 꽉 채워서 온 가족 5명이 바글거리며 한 공간에서 같이 먹고 같이 보고 같이 자고 왔다.

꼭 떠나야만 했다.

 갑작스레 떠난 여행이었다. 원래는 바다 건너 먼 곳으로의 가족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새로운 근무지로 남편이 발령이 나는 바람에 취소되고 남편 없이 우리 여자들끼리 가기로 한 여행마저 무산되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방학을 맞이했었다.


억지로라도 일상을 지키는 것이 나의  행복 유지 방법

 그런데 갑작스러운 아버님의 입원과 수술로, 방학 첫날부터 병원  출입을 하게 되었다. 설날을 며칠 앞두고 수술일이 잡히면서 그동안 수술 준비를 위한 각종 검사로 일주일에 두세 번 꼴로 병원을 모시고 가게 되었다. 심각한 수술은 아니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다녔지만, 이렇게 방학을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각각 풀어진 가족을 묶는 방법

 사실 지난해는 가족여행을 다니지 못했다. 가까운 곳이라도 일 년에 두세 차례는 꼭 가족끼리 여행을 다니는 편인데, 작년에는 둘째가 고3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다른 이유로 여름휴가조차 가지 못 했었다. 삶의 더께가 쌓여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터져버리기 전에 부랴부랴 여행 계획을 짜고, 아이들 일정까지 조절해 가며 토요일 아침 떠나기로 했다.    

 우리 넷은 인천에서, 남편은 부여에서 출발해 대전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습게도 우등고속버스를 처음 타 보았다. 두 시간 뒤 남편과 만나 우리는 대전에서 포항으로 출발했다.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포항에 도착해 처음 맞이한 바다 ‘ 영일대’는 감동 그 자체였다. 앞으로 3일 내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바다를 보게 되었지만, 처음 내 눈앞에 모처럼 펼쳐진 포항바다에서 겨울 햇살을 등지고 푸른 바다와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해변을 따라 해상 전망대까지 걷는 길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해변에서 다양한 포즈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내며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어댔다.

한창 대게철인 죽도 어시장

인천에 사는 우리들에게 어시장은 연안부두나 소래 포구처럼 낯익은 곳이지만, 곳곳에 대게들로 꽉 찬 죽도시장은 정말 살아 움직이는 장관이었다. 알맞은 흥정으로 대게와 포항 물회를 배불리 먹었다. 이곳에서 더 먹었어야 했다. 나중에 간 영덕 강구항이나 울진 후포항보다 이곳 죽도시장이 훨씬 더 저렴하고 푸짐했다. 대게는 정말 수고로운 먹거리 중 하나이다. 잘라내고 뽑아내고 훑어내는 거에 비해 정말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많지 않다. 다행히 아이들이 이제는 자기 먹거리는 자기가 챙길 줄 아는 나이가 되어서 이제 나도 오롯이 내 입을 위해서 대게를 잘라내고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통통한 다리살이 나오면 네 여자 입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말이다. 나오는 길에 대게빵을 사 들고 다음 코스 포항 운하관으로 향했다. (사진 찍을 새도 없이 다리는 이미 입속으로 사라졌다. ㅎㅎ)

포항 운하 크루즈

 포항 운하를 출발해서 포스코가 보이는 바다를 돌아오는 30분 남짓의 유람인데, 크루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심심한 유람선이다. 다만 겨울이라 우리는 포장 친 배를 탔는데, 그 위에 날아드는 갈매기의 발자국이 정말 노란 은행잎 같아 신기했고, 옆에 큰 배가 지나갈 때 덩달아 요동치는 맛이 재미있었다. 낮보다 밤에 타면 야경이 볼만할 것 같다.

  포항 호미곶 일출

 포항 호미곶의 일출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두를 계획이었으나, 도착하기 전 떠오르는 태양을 아쉽게도 도로에서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그 장대한 일출의 광경은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 바다를 무릅쓰고도 충분히 볼 만했다. 유명한 상생의 손에 얹혀 있는 태양을 찍기 위해 이미 많은 사진작가들이 각도를 찾아 몰려 있었다. 바람이 얼마나 차가운지 숨쉬기조차 힘들었지만 우린 계속 떠오르는 태양을 눈에 담기 위해 애를 썼다.

 호미곶의 새천년 기념관이나. 등대 박물관, 구룡포의 근대 역사 문화 거리, 과메기 문화관은 너무 일찍 서둘러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때라 모두 둘러볼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 식사를 하는 곳을 구룡포에서는 찾을 수 없어, 아침도 못 먹고 다음 여행지 오어사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려 준 물고기 오어사(吾魚寺)

언젠가 단풍이 한창일 때 찾은 적 있는 오어사는 겨울에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사 관계로 10여분을 가파른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해서 춥고 힘들었지만, 저수지를 끼고 자리 잡은 오어사의 모습은 역시 고즈넉하게 아름다웠고, 둘레길은 훌륭한 산책길이었다.

오어사 아래 뜻밖의 맛집 '소반'과
바람만 불던 장기읍성

오어사에서 가족의 명훈가피력을 빌고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맛집을 발견했다. 아침도 못 먹은 우리는 정말 맛난 가정식으로 호사를 하고 장기읍성으로 향했으나 아직 관광개발이 덜 된 모습의 성곽만 확인하고 영덕으로 향했다.

 영덕 강구항 해맞이 공원
블루로드  B코스
풍력 발전소와 축산항

영덕 강구항의 해맞이 공원도 역시나 겨울 바다의 장관을 보여주었다. 탄탄한 방파제가 꾸밈이 되어 겨울 바다를 안정적으로 보여 주었다. 영덕 블루 로드 B코스를 찾아가다가 멈춘 곳은 소나무 숲길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그곳 또 바다였다.

저 멀리서부터 밀려와 발밑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하루 종일 봐도 지루한 줄 모르고, 거대한 바다는 엄살 부리는 나에게 까불지 말라고 단숨에 엄포를 놓는 것 같았다. 감히 투정 부릴 수 없을 것 같이 압도적이고 넓고 넓은 바다의 모습이었다. 도로 건너 올라간 풍력발전소도 거대하게 돌아가는 풍력발전 날개들이 역시나 좁디좁은 내 소견을 넘어서는 위대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왠지 더 넓고 더 깊은 마음으로 자잘한 마음을 몰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블루로드 끝이 축산항이라고 해서 흥성거리는 어시장을 기대하고 갔으나, 어디서도 먹을거리를 찾을 수 없는 항구였다. 날마저 저물어 주위는 더 한산했고, 아직 불을 켜지 않은 마을처럼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백암 온천
울진 후포항 도착

 날이 저문 후에 울진 후포항에 도착했다.

 주변 거리는 볼 수 없는 시간이어서, 어시장에서 횟감을 사서 숙소가 있는 백암온천으로 향했다.

 셋째 날은 좀 여유롭게 시작했다. 평상시에 별로 온천을 즐기지는 않았으나, 추운 날씨 덕분인지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몸이 풀어지며 한 없이 좋았다. 어제 늦은 도착으로 둘러보지 못한 후포항으로 여유롭게 다시 향했다.

팽나무와 후포 등기산 공원

 후포항 등기산 공원은 유명한 팽나무와 함께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최고 절정의 모습이었다. 바다를 보며 내려오는 길에 하얀 등대도 있고, 망사정도 있으며,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오다 새로 오르면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신경림의 시비가 있는 갓바위 전망대에 오르게 된다.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신경림의 시 ‘동해 바다-후포에서’를 음미해 본다. 아! 가슴이 탁 트이며 바다처럼 남에게 관대하게 살고자 했던 시인의 삶의 모습을 배워 보려 애써 본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우리 모두 노력해야겠지만, 특히 리더에게는 반드시 요구해야 할  삶의 자세인 것 같다.

 후포항 갓바위 섬 옆에 자리한 소박한 식당 (동심 식당)은 우리에게 뜻밖의 전복죽 별미를 맛 보이며 추운 마음을 녹여주었다. 전복이 그냥 덩어리째로 뚝뚝 들어간 들깨 전복죽이었다.

 후포리 남서방 집 벽화와
추억의 드라마 촬영지

어제 갔던 후포 어시장을 기웃거리다 요즘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백년손님’ 촬영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아름다운 벽화로 꾸며진 후포리 남서방 처가댁은 충분히 정겨웠고, 추억 속의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남편과 나는 잠깐이지만 아이들은 모르는 추억에 젖을 수 있었다.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 밤을 울진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다음날 출근 때문에 먼저 떠나기로 했던 남편은 계획을 바꿔 아침 일찍 우리와 대전으로 함께 떠나기로 했다. 울진에서 남편 없이 우리끼리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유 여행을 하거나. 인천으로 돌아오기는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3일간의 포항, 영덕, 울진 여행을 마무리하고 대전에 돌아오니 12시쯤 되었다. 남편은 다시 부여로 떠나고, 버스 터미널에 남겨진 우리 넷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전 관광 지도를 들고 잠시 대전을 둘러보고 인천행 버스에 오르기로 했다.

대전 성심당과 이응로 미술관,
한밭수목원

 그래서 선택된 대구 여행지가 성심당 빵집과 '으느정이'문화의 거리, 그리고 한밭 수목원과 이응로 미술관이었다. 성심당 빵집은 명성에 걸맞게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부추빵과 튀긴 소보루 빵을 맛볼 수 있었고, '으느정이' 거리에서는 대전의 깨끗함과 친절함을 맛보았다. 겨울이지만 아기자기한 정원을 자랑하는 한밭 수목원은 언제 한 번 다시 오고 싶은 공원이었고, 이응로 미술관은 작지만 의미 있는 전시회로 가슴이 가득 차올랐다.

 처음 방문하는 도시 대전이었지만, 전화 연락이 된 대전 지인의 친절하고 정성스러운 안내로 짧지만 알찬 한나절 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마음이 더 가득 차고 춥지 않았다.

여행의 마무리

 2시간여의 버스를 타고 인천에 도착했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와 내일의 학원 수강이나 약속들을 챙기고 있었지만, 얼굴들은 한없이 웃음 짓는 보기 좋은 얼굴들이었다.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에 어느새 피부는 거칠어지고 행색은 너저분해졌지만 너른 바다를 보며 되새겼던 다짐들은 단정하게 가슴속에 품었을 것이다. 무사히 겨울 여행을 마친 것에 또한 감사함을 표현하며, 내일 다시 힘들고 귀찮은 일들을 마주하더라도 지혜롭게, 인간답게 대면할 내공을 키웠음을 보여줄 것이다.

 아직도 어지럽고 힘든 연초이지만 가족여행을 떠날 수 있었음을 깊이 감사하며 다음 여행을 또 기약해 본다.    

 몰아치는 파도와 바닷바람으로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라고 매섭게 알려준 포항, 영덕, 울진 겨울 동해 바다에게 깊은 감사와 애정을 보낸다.

아름답고도 까칠했던 동해바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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