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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y 26. 2016

할미꽃 이야기

딸들에게  들려주는

일하기가 너무 싫어

농삿일이 너무 고되어

도시로 시집가려고

아버지와 결혼을 했단다.

     

결혼해서 행복을 꿈꾸던

새댁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단다.

     

가난과 술주정과 때로는 폭력이

결혼 생활의 전부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단다.

     

건강한 아들 하나와

야무진 딸 하나를 낳았으나

그것만으로는 웃을 수 없었단다.

     

너무 생활이 퍽퍽해서,

농삿일과는 댈 수 없이 힘들어서,

나날이 마르고

나날이 푸석해지며 나이 들었단다.

     

결국엔

3식구가 되어서

그래도 웃으며 열심히 살았단다.

건강한 아들과

야무진 딸이 있으니

그것이 힘이 되고 때로는

그것 때문에 힘들어도 참으며 살았단다.

     

살다 보니

건강한 아들은 어엿한 청년이 되고

야무진 딸은 반듯한 학생이 되어서

이제는 웃어 보아야지 하고

이겨내며 또 살아냈단다.

     

그러나

건강한 청년은 더 이상 크지 않고

아예 아주 먼 곳으로 가버렸단다.

생떼같은 아들을 잃었다고

누가 내 아들을 데려가라 했냐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도 누구 하나 대답이 없더란다.

     

그래도 참았단다.

교사가 된 딸의 딸을 기르며

그래도 참으며 살았단다.

이제는 울 일은 없겠지

믿으며 웃으며 참아냈단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었단다.

모진 삶은 아직도 퍼렇게 살아서

야멸차게 끝까지 살아서

마지막까지 냉정하게 가져갔단다.

     

머리를 열어 눕게 하고

배를 열어 눕게 하더니

웃음을 빼앗고

걸음을 빼앗고

모든 것을 빼앗아 쓰러뜨려 버렸단다.

     

딸의 딸이 태어나

13살이 될 때까지

언제나 누워 지내야 했단다.

     

손수 기른 딸의 딸들에게 수발들게 하고

보기도 아까운 딸에게 아랫도리 보여주고

어려운 사위에게 부축 받으며

모진 13년을 또 보냈단다.


이제 남은 것이 무어란 말인가?

모든 진은 다 빠져나가 물기란 찾을 수 없고

힘 빠진 손과 다리는 이미 내 맘대로 안 되고

바람에도 날릴 듯한 몸은 천근처럼 느껴지고

이 고통, 이 괴로움을 어떻게 이겨낼까?

     

억울해서, 속상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소리도 지르고, 투정도 부리며

금쪽같은 내 새끼들을 울게도 했단다.

참을 수 없어서, 납득이 안 되어서

     

그마저

기운이 있을 때 이야기란다.

이제

미움도 원망도 아픔마저 다 빠져나가던

그 어느 날

     

마지막

딸의 눈물과 통곡소리 들으며

이제야 온전한 몸이 되어

모든 짐을 벗었단다.

     

울지 마라,

사랑하는 내 새끼들아~

아파하지 마라,

어여쁜 내 새끼들아~

     

이제는 훨훨

자유롭고 아름다운 몸이 되어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아름다운 세상에서 맘껏 살려 한단다.

     

별거아니란다.

진실되게 행복하게 살다가

이다음 이다음에 만나면 된단다.

고맙다.

사랑한다.

내 사랑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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