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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r 05. 2017

9. 운전과 96년생 아반떼

운전과 차 이야기

운전면허 시험 합격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둘째가 지난 12월부터 운전면허를 딴다고 학원 등록을 하더니, 오늘 덜컥 붙어 버렸다. 신문에서 운전면허 시험 필기나 기능, 주행 시험이 한껏 어려워졌다 하고, 운전 학원에서 연습을 하는 내내 아이가 어려움을 자주 이야기했기에, 별 기대를 안 했는데 합격했다 하니 ‘덜컥 붙어 버렸다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 전화로 들려오는 아이의 운전면허 합격 소식은 기대 이상으로 기쁘고 반갑게 들렸다.      

 운전면허 학원

 딸아이를 통해 전해 들은 운전 교습 현장은 아직도 거칠고 많이 불편한 모양이다. 강사의 친절한 말투는 찾기 어려워 보였고, 윽박지르고 타박에 가까운 지도로 눈물까지 흐르게 하는 모양이었다. 함께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한 첫째는 강사 말에 어찌나 주눅이 들었던지 도로주행까지 다 마치고도 자신감을 잃어 시험일을 미룰 정도였다.                   

 수십 년 전 내가 운전면허를 취득하고자 할 때도 그랬다. 어찌나 난폭하던지 심지어 무례하기까지 한 그 강사로 인해 운전학원 가는 길이 정말 고역이었다. 교습비에 응하는 정당한 교육을 못 받고 스트레스 속에서 운전면허 따기 연습을 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만삭의 몸으로 운전면허 따기           

 나는 계속 주행 시험에서 떨어졌다. 한 번에 통과한 필기와 코스 시험과는 달리 주행 시험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연속되는 불합격의 아쉬움 속에서 빨리 붙고 싶다는 열망과는 달리, 손에 든 원서에는 불합격의 상징인 인지들이 덕지덕지 늘어날 뿐이었다. 주행 시험 중 '돌발'에 걸려 계속 떨어졌다. 나는 정말 마음이 급했으나, 결국 만삭의 몸으로 임신 8개월이 되어서야 겨우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내 생애 첫 차      

 1994년 우리의 첫차는 끝 번호가 5932로 끝나는 중고 프라이드였다. 차를 받으러 간 날 얼마나 기쁘던지 그때의 기쁨만큼이나 차에 대한 기쁨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감격이었다. 당시 다세대 주택이 밀집된 꼭대기 빌라가 우리의 신혼집이었는데, 꼬불꼬불 좁고 가파른 길에서 두 대의 차가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초보 운전자인 나는 정말 꼼짝없이 얼음이 되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차에서 내려 내 차를 빼내 주고, 다시 갈 길을 가는 인정 어린 남성 운전자가 많았었다. 당연히 ‘김여사’니 뭐니 하는 혐오 유행어도 없던 시절이라 다행히 초보운전 시작을 무사히 잘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 프라이드는 카키색이었다
초보 운전  

 초보 운전 시절, 퇴근 시간만 되면 ‘저것을 또 어찌 끌고 집으로 가나’하고 큰 숨 내쉬기 바빴고, 우회전을 위한 차선 변경을 끝내 못 해 직장을 지나쳐 몇 Km를 더 달려간 적도 있었다. 신호 위반으로 경찰이 내 차를 세웠을 때는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며 ‘아 내가 죄를 지은 거구나’하는 과대 생각까지 했었다. 예비 타이어가 언제부터 내 차 트렁크에 있었는지도 몰랐고, 기름을 넣거나 세차를 하러 가도 어리바리한 초보운전자였다.

 그렇게 25년의 운전시간이 흘렀지만 운전은 아직도 어렵고 때론 무섭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 인천 시내 전용 운전자로 남아 있다.       

인생 차, 96년생 아반떼    

  나의 인생 두 번째 차는 96년생 아반떼이다. 그때만 해도 차 색깔을 고르는 나에게 “흰색은 너무 튀는 거 아냐?”라는 반응이 일반적일 정도로 짙은 색 위주의 차량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만난 차가 오늘도 나를 태워 22년째 출근을 시켜주고 있는 나의 기특한 ‘반떼’, ‘96년생 아반떼’이다. 내 차는 20여 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카세트테이프 꽂이가 있고, 절대로 자동으로 꺼지지 않는 실내등이 있으며, 후방을 비추는 그림은 당연히 없다. 시트를 따뜻하게 데워준다거나 차 뚜껑이 물론 열리지도 않는다.         

 이 차를 끌고 아이 셋을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마트로, 아이 학교로, 학원으로, 직장으로……. 많은 곳을 잘도 다녔다. 한창 육아에 정신이 없을 때 차 위에다 아이 신발을 올려놓고 그대로 문을 닫고 어린이집으로 향한 적도 있었는데, 그 생각이 가끔 난다. 이 차로 5년씩 5개 학교를 다니고, 이 차로 3번씩 새로운 집의 주차장을 드나들었다. 잔 고장 없이 잘 버텨주는 나의 ‘반떼’를 좀 더 오랜 연식으로 만들고 싶은 이상한 오기는 무슨 이유일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 차를 생각하면 뿌듯하고 대견하다. 물론 아침 출퇴근할 때마다 대화도 한다.       

무조건 보행자 우선
양보가 생활화된 나라

 지인 중 한 분이 명퇴를 하고 지난해 한 달 이상 배낭여행으로 독일에 머물다 왔는데, ‘운전’에 관한 그 선배 말씀이 자주 떠오른다. 독일에서는 무조건 보행하는 사람 위주이고, 운전을 할 때 어찌나 양보가 생활해 되어 있던지 바로 평행으로 차선을 변경해도 무조건 뒤차가 서 준다는 것이다. 질서와 배려와 양보가 생활화된 모습이 많이 부러웠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운전할 실력이면 세계 어디서든지 운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씁쓸하게 들렸다.         

촘촘한 일렬 주차의 비밀

인터넷 기사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나란히 일렬 주차된 어느 도시의 사진이 올라왔었는데, 그러한 주차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범퍼’에 있었다. 쿠션을 위해 만들어진 범퍼의 기능대로 서로 조금씩 튕기듯이 부딪히면서 주차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알고 있는 ‘범퍼의 역할’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기사일 것이다. 완충장치 역할의 범퍼를 다시 또 보호하겠다고 거대한 보조 장치까지 장착한 차들도 있으니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이 기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운전을 잘못 배운 사람들  

 시내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비싼 외체차를 폼 나게 몰며 운전하다가 유리창을 부드럽게 내리고는 담배꽁초라도 버리는 것을 보면 정말 불쾌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비싼 차라 해도 격이 값싸게 떨어지는 순간이다. 주행 흐름과 상관없이 세월아 네월아 자기 속도대로 가고 있는 차들은 대부분 운전 부주의 중(전화 통화, 거울보기 등)이다. 주차를 할 때 꼭 선을 걸쳐서 하는 사람들도 참 나쁜 운전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절대 운전하면 안 되는 사람들

 음주운전이나 보복운전 등 타인의 생명과도 관련된 엄청난 더 큰 잘못을 하는 운전자들의 불행한 소식이 들리면 언제쯤 우리도 배려와 양보와 정의가 일상화된 그런 선진국의 시민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집집마다 교통사고로 인한 아픔과 고통들이 드물지 않은 시대에, 뉴스마다 대형 교통사고로 전해지는  끔찍함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키고 믿을 것은 오로지 나와 남의 안전을 제일로 생각하는, 양보와 원칙이 배어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일 것이다.

딸아!
양보하는 안전 운전자가 되어라!

이제 어엿한 운전면허증 소지자인 20살 둘째에게 5분 정도 주차장에서 운전을 하게 했다. 떨리는 마음이라며 둘째는 안전벨트를 매고,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또는 중립 기어를 안전하게 밟으며 이론에 충실하게 운전을 했다. 코너를 돌 때는 그냥 가도 된다는 내 말에 “ 아니야!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 된다고 했어요.” 라며 보행자의 안전을 더 염두하는 말을 했다. 이 마음, 이 자세 그대로 질서 속에서 배려하는 안전한 운전자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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