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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r 08. 2017

3. 꿈을 이루다 -교사 되기

다시 시작하는 3월의 교실

 3월의 학교

 3월은 새로움으로 시작한다. 특히 학교는 잠시 멈춰 있는 듯한 2월을 보내고 새 학년, 새 담임, 새로운 교사, 신입생으로 다시 살아난다. 구김 없는 새 교과서에 새로운 마음을 다짐하듯 어제의 느슨함과 나른함을 버리고 다시 살아난다.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3월 첫째 날은 늘 설렌다. “반 배정과 담임선생님이 누굴까?” 하루 전부터 두근거리는 아이들 마음과 다르지 않다. 교사들도 “우리 반 아이들이 누굴까? 어떤 아이들을 맡게 될까?” 궁금해하고 기대에 차 있다.    

 3월 2일 1교시는 담임 시간이다. 교실 들어가기 전 교무실에 모여 있는 선생님들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쑥스러워하기도 하고, 궁금해하기도 하고, 심지어 불안해하기도 하면서 각자의 첫 대면을 준비한다.

아이들을 이야기하는 교사의 얼굴들에 꽃이 피어난다. 가끔 저녁 모임에서 우리 이제부터 직장 이야기 (학교와 아이들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합시다. 라며 선을 그어도 몇 분 안에 다시 아이들 이야기로 모아진다. 아이들 이야기할 때 교사의 얼굴은 가장 살아있고 가장 빛이 난다.    
다시 첫인사

 문을 열고 들어가니 30여 명의 눈동자가 내게로 쏠린다. 진지함이 역력하다. 나는 한 살 더 나이를 먹었으나, 내게 온 아이들은  여전히 15세 빛나는 소년들이다. 정중히 인사를 하고 1년 동안의 담임선생님임을 밝힌다. 우리는 앞으로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한 마음, 한 팀으로 열심히 생활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담임선생님으로서 우리 반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한다. 즐거운 관계가 되려면 서로 노력해야 함을 띠, 띠, 띠 동갑인 아이들에게 역설한다.    

 이제는 국어 교사로서 다른 반 국어 첫째 시간을 두드린다. 여전히 설레는 마음이다. 초롱한 눈들이 한꺼번에 몰린다.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이라도 체육만 하고 싶어 하는 중 2 남자아이들에게 국어 시간이 무려 5시간이나 들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아이들은 탄식한다.

‘국어 수업이 매일 들었다니…….’ 탄식하는 아이들 위로 1년의 국어 수업 계획을 쏟아붓는다. 오늘의 시, 오늘의 상식, 스피드 퀴즈 게임, 5분 글쓰기 등등 …….    
 ‘아냐~ 재미있을 거야! 우리 즐겁게 국어 공부해 보자. 시 읊고, 소설 읽으며 주제 파악하고, 생각 나누는 일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인데……. 고민하고 생각하고 궁리해 보자,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봄을 맞아 물기 머금은 나무처럼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설사 조금 있다가 지쳐버린다 해도, 서로 상처 입고 의기소침해진다 할지라도 일단은 생전 처음 맞이하는 봄처럼 그렇게 싱그럽고 그렇게 활기차게 시작해 본다.         

교사가 꿈이었던 교사

 조금 과장해서 내가 언제부터 교사가 되고 싶어 했나?라는 질문에 난 늘 ‘만 4세 때부터’라고 말한다. 소꿉놀이를 해도 엄마, 아빠 놀이 말고 꼭 ‘선생님 놀이’를 했다는 우리 엄마 말씀을 빌려 와서 얼마나 내가 교사가 되고 싶어 했는지, 그 간절한 꿈을 이뤄 얼마나 행복한 교사인지를 강조해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운 좋게도 나는 중 고등학교 내내 국어 선생님을 잘 만났다. 국어 사랑과 자부심을 잔뜩 심어 주시고, 생각의 힘, 논리의 힘을 키워주셨다. 그대로 국어 교사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을 교실에서 느끼고 싶었으나 사립 사대 국교과 학생인 나에게 교사가 되는 문은 현실적으로 매우 멀리 있었다. ‘아니 아예 기회가 없었다.’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당시 교사 채용 방식에 따르면 국립사대 졸업생들에게 우선권이 있었다. 채용 후 혹시라도 남은 자리가 있으면 그때서야 순위 고사를 실시하던 때라 사실상 나와 같은 사립사대 졸업생들에게는 사립 중 고등학교 채용 이외에는 달리 교사로 임용될 방법이 없던 때였다.  
 교사 채용 공개 전형-임용고시 실시  

 그런데 1990년 10월에 < 국립사범대 졸업자 우선 채용 >이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이다. 교사 채용이 공개 전형으로 전환된 역사적 사건을 대학교 4학년 때 맞이한 것이다. 국립사범대와 사립 사범대 학생 간의 희비가 엇갈린 가운데 반대 시위와 지지 환영이 연일 이어졌지만 한시적으로 3년간은 국립 대 사립의 비율을 70:30으로 하는 교사 채용 공개 전형이, 일명 임용 고시가 이때부터 실시되었다.    

 졸업예정자로서 본 첫 번째 시험은 당연히 낙방이요, 그다음 해 서울에서 본시험은 3차에서 낙방이요. 그리고 그다음 시험에서야 놀랍게도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400명 중의 10명이라……. 내 뒤로 10개 반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이 모두 떨어지고 나서야, 그러고도 내가 속한 반에서 지금 내가 앉은 줄 빼고 모두 떨어져야만 내가 붙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 소름이 쫙 돋았었다. 그런데 그 엄청난 행운이 놀랍게도 내게 와 주었다.     

 모든 시험은 간절함의 결과인 듯하다. 얼마나 간절히 그것을 원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고생하시며 딸내미 대학까지 보내주셨는데, 엄마에게 꼭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을 언제나 한 가득했다.    

 대학 졸업 후 1년 가까이는 초등생을 상대로 방문 학습지 교사를 했다. 그다음 해는 중학교에서 임시 교사를 했다. 힘들고 불안정한 시간들 속에서 교사에 대한 열망은 더 강해지고 열렬해졌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 기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학교생활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그림으로 다가와 늘 즐거웠다는 것이다.

어느새 벌써

 그리고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만난 띠 동갑 첫 제자는 올해 39살이 되었다. 5번째 학교에서 올 해는 띠, 띠, 띠 동갑인 아이들을 만나 이렇게 또 한 해를 시작하려 한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 투성이다. 이 세상 모든 교육 문제를 해결할 듯 넘치는 의욕으로 나대던 신규 때 모습, 아이들을 누르는 일만이 나의 능력이라고 믿던 어리석은 한 때의 모습, 아닌 척했지만 결국은 아이를 사랑하지 못했던 위선 가득했던 때의 모습, 끝내는 소통을 포기하고 체념해 버린 모습, 어느덧 ‘처음처럼’ 초심을 잃어버리고 지루해하고 심란해하던 위기의 모습들……. 무엇보다 아픈 내 말에 상처 받았을 많은 아이들에게 제일 부끄럽고 미안하다.    
아름다운 마무리 준비

 이제 아마 두 개 학교를 더 옮기면 나의 교사 생활도 마무리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교사의 관심이 아이들에게서 멀어지는 순간부터 교사는 추해진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영광의 신규 교사로 발령을 받아 학교에 오지만, 어느 누구도 친절히 가르쳐 주지 않는다.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수업 능력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이론 앞에 교사에게 요구되는 온갖 행정업무와 사무 능력으로 우리는 좌절한다. 사무처리 능력이 곧 교사의 능력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교실 밖, 여러 가지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교사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승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나처럼 전혀 승진에 대한 생각이 없는 일반 평교사들이 더 많지만, 승진을 마음먹은 후에 그들끼리 벌이는 경쟁의 강도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다. 중요한 것은 승진을 계획하든, 아니든 교사의 변하지 않은 최종 관심대상은 언제나 수업과 학생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승진을 위한 도구로 학생을 바라보는 순간 역시 추해진다. 자랑스러운 평교사로 남기 위한 마지막 보루도 당연히 학생이 어야만 한다. 교사의 존재 이유가 학생, 바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선생 똥을 개가 먹지 않는 이유

 교사로서 학교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빠른 퇴근과 방학, 안정적인 공무원 신분이라는 것이 일반 회사원들의 생활과 비교되어 매력적이라고 말하지만, 심지어 화를 내며 질투의 마음을 담아 교사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 교사의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순수한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춘기 최고 절정기에 달한 중학생 아이들은 ‘나 삐뚤어지고 말테야’라고 작정한 듯 작심하고 교사에게 달려들기도 한다. 교사를 상식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학부모님들도 의외로 많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비민주적인 교직사회도 견디기 힘든 구조로 압박해 올 때도  많다

 나는 종종 아이들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어느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할 때는 그 직업의 장점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다. 단점을 자세하게 파악해라. 단점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직업이 좋으면 진짜 너희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식실 가는 길,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든다. 그 많은 아이들 중 어느 한 아이가

“ 우리 국어 선생님이다.”

고 무심히 말하고 다시 저희들끼리 떠든다. 이제 겨우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우리 국어 선생님이란다.”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아니고,  칭찬한 소리도 아니고, 그저 아는 척했을 뿐인데도 기분이 좋다. 그 소리가 정겹고 되새길수록 웃음이 나온다. 함께 가던 선생님들도 “에고 귀여워라. 선생님 보면서 인사하는 것 좀 봐” 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사랑에 '심쿵' 허물어지는 천생 교사들인가 보다.

난 그래서 교사가 좋다.
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좋다.
난 오늘도 행복한 교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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