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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r 11. 2017

세 아이 기르기

4. 임신, 출산, 육아

대문 사진 출처 = 다음이미지

 영화 '해피이벤트'와 '세계여성의 날'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사실성이 현실로 다가와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든, 한국에서든 임신과 출산, 육아의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나 보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본 3월 8일이 ‘세계여성의 날’, ‘국제 여성의 날’이란다.    

 영화의 제목은 <해피 이벤트 >프랑스 레미 베잔송 감독의 2011년 작품이다.     

영화는 만남, 사랑, 결혼, 임신, 기쁨, 출산을 넘어 육아, 경력단절, 외모변화, 우울증, 부부관계, 불통, 그리고 이혼 위기로 이어진다.

 보통 남녀의 사랑을 담은 영화들이 결혼을 사랑의 완성으로 마무리하고 엔딩자막을 올리는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결혼이 본격 시작이다. 사랑의 기쁨만으로 충만할 것 같은 결혼의 상상을 야멸차게 깨버린다.    

 아이를 품고 있는 10달 동안을 생명 탄생의 신비감으로 아름답게만 그리지 않는다. 몸과 마음의 변화와 출산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 내 안에 외계인이 사는 것처럼 나를 조정하고, 내가 채식주의자인 것도 잊게 하고, 이유 없이 울고 웃게 하였다."
육아에 지친, 헝크러진 여자에게 남자는 말한다.
 “ 티셔츠가 그거 하나뿐이야?”     
출산을 하면서 우리는 분리를 경험한다.
타인의  희생과 책임에서의 분리,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고 생각의 틀도 벗어나게 된다.    
"종일 집에 갇혀 지내는 거 너무 외롭고 힘들어, 감옥살이 같아."
여자는
실패에 그친 미완성 논문을 삭제하고, 해피이벤트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내 삶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냥 텅 빈 아무것도 아닌... 그 때부터 난 그냥 엄마였다. "   

그리고 마지막 자막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라는 글이 띄워진다.  

  기댈 수 있는 건 오직 외할머니의 '희생'뿐

 나의 임신과 출산, 육아는 이 영화 내용과 많이 비껴있다. 이유는 단 하나! 엄마의 전폭적인 희생뿐, 다른 것은 없었다. 직장 일로 고생하는 딸을 위해, 자신의 노년의 삶을 송두리째 외손녀 키우기에 바친 헌신 이외에 이유는 없었다.

 과연 타인의 희생으로 얻어낸 평안과 행복이 진정 축복이 될 수 있었을까?
 나라가 못 하는 일을 친정 엄마는 해결한다. 늘 더 많이 사랑하는 친정 엄마이기 때문이다.
 세 자매는 '월드컵 베이비' ㅎㅎ

 엄마의 10여년의 육아지원 덕분에 난 다둥이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남매로 자란 나는 당시의 여느 집과 달리 형제가 적어 눈에 띄었고, 대조적으로 세 자매로 자란 내 딸들은 외동이 아니어서 눈에 띄었다. 형제가 없어 외롭기도 했지만, 딸을 둘째까지 낳고 보니 아들도 하나 갖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우리 딸들은 일명 ‘월드컵 베이비’들이다.
94년생 첫째는 미국 월드컵 때,
98년생 둘째는 프랑스 월드컵 때,
대망의 마지막 셋째는 우리의 국운이 하늘을 찌르던 2002년 서울 월드컵 때 태어났다.

 셋째가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고 딸이라는 사실에 아주 잠깐 실망도 했었지만, 우리는 붉은 악마가 되어 이렇게 좋은 때, 좋은 기운이 천지에 가득할 때 우리에게 온 막내를 기꺼이 품어 안았다.

 우리를 아는 지인들은 농담 삼아 2006 독일 월드컵 때 가족계획 안부를 물어 넷째를 기대한다며 애국자라고 치켜세웠다. 5년마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재직 기념하듯이 출산을 하였으니 당사자인 나도 웃음이 한참 나온다.

큰 애가 고등학생으로 수능 공부할 때,
둘째는 인수분해를,
셋째는 구구단을 공부했다.

 5살 될 때마다 동생이 태어나니 집에는 항상 아기가 있는 듯 했고, 집안은 언제나 북적이고 살림살이는 그에 걸맞게 늘어만 갔다.

남아선호사회

 세 자매의 케미는 대단하다. 여자 형제가 없는 나는 우리 딸들이 참 부러울 때가 많다. 또한 아쉽게도 이모도, 고모도 없는 우리 딸들에게 서로의 자매를 선물한 일은 무엇보다 잘한 일같다.

 첫딸을 낳았을 때 30년만에 딸이 태어났다고 시댁어른들이 참 많이 좋아하셨다. 아들만 삼형제인 집에서 자란 남편의 소망대로 난 그 후로도 계속 딸만 낳았다. ㅎㅎ

 막내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딸 셋을 안고 걸리고 해서 엘리베이터라도 타면

보통 할머니들이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꼭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 이다음에 크면 딸이 훨씬 좋아. 진짜야!”

 ‘누가 뭐래나 지금도 좋은데’

 요즘 같은 딸 바보의 시대가 올지 모르고 함부로 나를 위로하며 안심시키려했다.  남아선호사상이 새천년을 맞이하고도 변함없이 그 힘을 발휘하고 있을 때였다.

소담, 은별, 도담

 아이들의 이름을 말하면 꼭 따라오는 질문들이 있다.

“ 어머 딸이 셋이나 돼요?”
“ 아이들 이름들이 예쁘네요?순우리말인가요?”
“ 근데 왜 둘째만 이름이 달라요?”

 국어교사라서  작정한 것은 아닌데, 셋 모두 순수한 우리 토막이 말로 이름을 짓게 되었다.

탐스럽고 풍성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은은하게 빛나라는 마음으로!
무탈하게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마음으로!
 “ 소담, 은별, 도담” 이가 되었다.
출산

 영화 <해피 이벤트>에서는 출산의 장면을 주인공이 정말 실감나게 그려낸다. 진짜 다큐를 보는 듯 고통이 밀려올 정도였다.

두 다리를 모두 벌리고도 '수치감'보다 앞서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때가 생각났다.

 첫째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산에 임했으나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를 절감다. 원래 배보다 아픈 곳이 있는데, 표현상 돌려 말하느라 ‘배 아프다’라는 표현을 쓰는 줄 알았다. 진정 아픈 배 때문에 하늘이 노랗게 빙빙 도니 정말 아기가 탄생했다.

 ‘둘째는 첫째보다 훨씬 더 수월하다’라는 말을 진정 믿고 출산에 임했으나 고통은 더 했다. 다른 산모들과는 달리 엉덩이뼈가 아파 몇 개월 병가를 낼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러니 이제는 절대로 자연분만으로 셋째를 낳을 수는 없었다. 작정하고 수술을 요구했다. 의사는 분만 몇 시간 전까지도 자연 분만을 권유했으나, 나는 출산 후 그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위험하게도 제왕절개를 선택해서 셋째를 얻었다. 천만 다행으로 수술 후 경과도 좋아 ‘이렇게 아기를 고통 없이 쉽게 낳을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수술은 언제나 아찔한 것인데 그 때는 그런 위험한 결정을 했었다.

'육아' 그 힘듦
100일까지 밤낮이 바뀐 아기 때문에 새벽 내내 벌서듯 아기를 안고 있다가 결국에 이불장 문을 열고 그 속에 팔을 뻗어 지탱하듯 날밤을 새운 때!
출근 준비 마치고 아기 맡기러 일어나면 꼭 우유 넘겨 옷에 온 냄새 풍기던 때!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발코니에 매달려 '엄마'를 외쳐대는 아이의 울음을 들으며 출근하던 수 많은 아침!
펄펄 열나는 아이를 편하게 병원 데려가지 못 하고 늘 조퇴하며 발 동동 구를 때!
학부모 총회 한 번 참석하려고 몰아 바꾼 수업 교환으로 파김치 되어 허둥거렸을 때!
엉망으로 흐트러진 집으로 다시 제2의 출근을 준비하던 그 많은 퇴근길들!

 엄마가 된 모든 여성들이 겪었을 그 수많은 변화와 힘듦과 갈등을 지나 아이들과 함께 자라왔다.

출산장려정책

 아이 하나 키우는데 4억이 든다든지, 공립어린이집에 등록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든지……. 세상은 점점 아이 낳고 기르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격세지감!)산아제한정책 포스터

 사회 구조의 문제로 취업, 결혼, 출산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니 새삼  일도 아니나, 정부에서 내 놓는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이 아무런 바람도 일으키지 못 하고, 때로는 심각한 콧방귀 대상으로 락하는 이유를 정신 차리고 더 늦기 전에 짚어 내야만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참 기특하게도 정부나 사회에서 맡아야할 일들을 착실하게 가정 안에서 해결하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작년에 세금이 남을 정도로 납세의 의무도 잘 지키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나 참 어렵다.

 북유럽 국가들이 어떤 방법으로 저 출산의 늪에서 헤어 나왔는지 연구 논문은 쏟아져 나오나 우리는 여전히 아이 낳고 살기어렵다.   

  남성도, 여성도, 시부모님도, 친정 부모님도, 사회도, 국가도 바뀌어야만한다.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이 변하고 깨닫고 위기의식을 느껴야만 조금이라도 저출산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싶다.

 친정 엄마의 희생을 행운으로 여기며 아이 셋을 잘 키웠노라 이야기 하기는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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