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지만 교실은 변하고 있다.
대문사진 - 이혁규 저서 /교육공동체 벗 - 이미지
지난 일요일 SBS에서 방영한 스페셜 프로그램 < 大 2병, 학교를 묻다 >는 교사인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大 2병을 아시나요?]
[수능 만점자, 서울대에서 분노를 외치다.]
[인생을 고민하는 쉼표의 시간, 덴마크 휘게 교육]
[질문이 시작된 교실, 우리 사회는 변할 수 있을까]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특히 [듣고, 적고, 시험보고-듣고, 적고, 시험보고] 만을 되풀이하는 학생들의 모습,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듣고, 적고, 시험보고] 만을 되풀이 하다, 사회에 나간 기자들도 역시나 질문 없이 [듣고, 적고, 기사내고]로, 부모가 그토록 선망하는 출세자들도 당연히 서울대를 나와 여전히 [듣고, 적고, 그러다 구속]을 되풀이 한다는 장면에서 마냥 편하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어느 누구도 왜 공부를 하는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며, 학교를 원망하고, 교실을 비판하는 진행자의 나레이션에 마냥 자유로울 수 없었다. 덴마크의 인생학교를 방문해 그 곳에서 '휘게'의 중요함을 깨달으며, 진정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행복한 사람으로 살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덴마크 청소년들이 마냥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등장하는 대학생들이 뿜어낸 분노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역시나 '학교'와 '교육'이었다. 학교는 죽어 있었고, 교사와 학생은 암기에 매달려 있었고, 왜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지, 행복으로 향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질문하고 고민하고 궁리하는 일은 배부른, 눈치 없는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 공간으로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도 변하고 있다. 서서히, 느린 걸음이지만 변하고 있다.
죽어있는 교실, 하품하는 교실, 질문 없는 교실은 교사들 스스로에게도 엄청난 문제의 숙제이다.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던
‘거꾸로 수업’ 뿐만 아니라
‘배움의 공동체 수업’,
‘배움 중심 수업’,
‘하브루타 수업’,
‘퍼실리테이트 수업방식’ 등 학교에도 새바람이 불고 있다.
생활지도 면에서도
‘회복적 생활교육’,
‘PDC 학급긍정훈육법’등 학교수업과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
일본 사토 마나부 교수 – 손우정 교수 –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 모든 아이들의 배움은 중요하다. - 혁신학교 – 수업 디자인 – 모둠 4명 – 질문 수업 /교과서 기초/점프 – 교사가 아닌 학생이 중심이다.
‘하브루타 수업’
유대인 – 탈무드 – 시끄러워야 진짜 공부 – 짝지어 공부하는 파트너 – 끊임없는 질문, 대답 – 논쟁 – 소통 – 두 사람이 모이면 세 가지 의견이 나온다. -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면 모르는 것이다. - 학습 효율성 피라미드
‘거꾸로 수업’
Flipped Class – 디베이트 수업 – 뒤집힌 교실 – 스마트 교실 – 동영상 미리 보고 – 토의와 질문 –문제해결 – 수업의 주체는 학생 – 자기주도적 수업
‘퍼실리테이터로서의 교사’
촉진자 – 조력자 – 토론의 리더 – Process Checker – 회의설계자 –문제 해결 능력 – 브레인 스토밍 – 랜덤 워드 – 친화도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으로 창조적인 성과를 끌어낸다.
‘회복적 생활교육’
비폭력 대화 – 간디학교 –교실의 평화적 하부구조 – 책임감 – 상호존중 – 공동체 회복 – 응보적 정의가 아닌 회복적 정의 – 처벌이 아닌 회복 – 피해자 상처 치유 – 갈등 당사자의 자발적 책임 – 연결과 공감 – 이해와 존중 – 신뢰와 존중 – 써클회의
‘긍정적 훈육 PDC’
친절한 교사 – 단호한 교사 – 보상과 처벌이 아닌 상호 존중과 배려 – 격려 – 행복하고 민주적인 교실 – 공동체 문제해결 – 긍정적 타임 아웃
21세기를 바라보려면
과거 한 때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 라는 말로 '학교'와 '교사'와 '교육'을 한참 동안 비웃은 적이 있었다.
21세기 아이들은 맞다. 올 해 중 1 학생들이 2004년 생들이니 내년에는 중/고등학생 모두가 21세기 생들이 된다. 19세기 교실의 물리적 환경은 강당과 식당, 교실 리모델링으로 많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먼지는 들끓고, 겨울엔 혹독하게 춥고 (=교무실에서 손이 꼽아 볼펜 필기를 못 한 적이 있다, 불과 2년 전에) 여름에는 미치도록 덥다.
20세기 교사들은 이제 발걸음을 떼고 21세기에 어울리려 노력한다. 강의식 수업이 가장 편하고 수월하지만 교사 중심이 문제라는 것을 알기에, 학생에게 배움이 얼마나 일어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에, 이제 더 이상은 이대로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에, 일단 수업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것이 얼마나 견딜 수 없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기에, 교사들은 이제 시작하려고 한다.
빠르지 않지만, 이미 늦게 시작했지만 앞서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는 교사들을 존경하며 따르려 무겁지만 발걸음을 떼었다.
모두 다 '배움 중심 수업'이 필요하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학교 현실을 고려할 때, 배움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인내심을 요구하는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동료 교사와의 뜻 맞추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더디게 움직이는 사회 변화가 못 따라줘 얼마나 안타까운지 알기에 머뭇거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움직이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수업 변화에 목마른 교사들의 자발적 참여가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그래서 더디지만 결과는 성공하리라 믿는다.(요즘엔 교육청에 혁신과가 신설되면서 교육청 주도로 바뀌는 경향이 있어 승진 점수를 염두하고 참여하는 교사도 사실 있다) 각 교육 방송에 소개되고 난 후 사라지는 일회성 성공담이 아니라, 점진적 변화가 '교사-수업-학교-사회'를 바꾸리라 기대해 본다.
나는 여전히 여기저기 서성인다. 위에 소개된 각종 연수를 기웃거리다 연수 끝에 하나 느끼고 오면 수업에 반영하여 실행하다가 그러다 또 감각이 떨어지면 강의식/주입식 수업으로 돌아가 제자리에서 또 고민하고 궁리한다.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그 방면 수업에 매진하는 교사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을 응원하며 칭찬한다.
오늘도 부끄럼 투성이 수업이지만 그래도 각종 연수에서 깨달은 ‘학생-배움 중심’을 염두해 두고, 아이들을 존중하는 철학적 교육관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꼭 붙들어 매며, 20년 나름대로의 수업 방식들을 섞어섞어 노력하려한다.
보통 교사는 강단에 서서 말을 한다.
좋은 교사는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가르친다.
훌륭한 교사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실천해 보인다.
위대한 교사는 무엇을 가르치지 않아도 듣는 사람 가슴에 불을 붙인다.
- 알프레드 화이트 헤드 -
'위대한 교사'라는 말이 버겁지만 마지막 교사의 모습이 우리가 추구하는 모습일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배움이 일어나 궁극에는 자신들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힘을 기르는 토양을 길러주는 것이 우리 교사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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