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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y 26. 2017

소풍 이야기

바람 쐬고 와서 시원하다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이나 ‘진로체험학습’ 등으로 명칭이 바뀐 지 오래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逍風)'이란 말 쓰기를 좋아한다.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 중에 우리 토박이 말만큼이나 예쁜 단어들이 나에게 몇 있는데 ‘소풍’이란 단어도 그중 하나이다.

 5월 어느 날 우리는 소풍(逍風)을 갔다. 2학년 8개 반이 각자 다른 곳으로 체험 장소를 정해 다녀오기로 했다.

인천대공원에서 풋살 경기와 둘레길을 걸으며 자연과 함께 하는 하루를 보내는 반도 있고,
부천 만화박물관으로 견학을 가는 반도 있고, 홍대 주변으로 학교 탐방과 뮤지컬 관람을 계획한 반도 있었다.

 작년에는 더 다양한 체험활동들이 있었다.

인천 배다리 역사 탐방과 달동네 박물관, 화평동 음식거리까지 들러 오기도 하고,
인천공항 자기 부상 열차체험과 공항 투어로 외국인과 대화하기도 있었고,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트래킹과 수상택시 체험 후 인천대, 연세대 대학 탐방을 한 반도 있었다.

 올해 우리 3반은 학교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두어 정거장 더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구월동 일대에서 지역사회 탐방활동을 하기로 했다. 예술회관역 지하에 자리 잡은 청소년 문화센터 ‘다락’에서 아침 9시 30분에 만났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제시간에 도착한 기특한 우리 반 아이들과 ‘다락’ 청소년 지도사 선생님을 만났다. ‘다락’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청소년이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시설이다.

청소년 기본법의 지칭 범위 나이가 9살부터 24살까지라는 것도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지도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은 후 아이들은 각각 모둠을 정해 노래방, 오락실 방, 보드게임방, 난타 방, 파티룸, wii게임방 등을 돌며 웃음을 쏟아내며 놀았다.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역시 예쁘다.

 노래방에서는 오늘도 영락없이 버즈의 ‘가시’가 열창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10대든 50대든 아무튼 남자들은 참 ‘가시’를 좋아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여기서도 확인한다. 두 시간 동안 각 방에서 30~40분을 머물다 다른 방으로 옮겨 골고루 체험한 후 그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원래는 이동하는 길에 ‘종합 문화예술회관’에서 때마침 열리고 있는 전시회를 관람하기로 계획하였지만 예상대로 아이들이 관심도가 낮아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떡볶이 무한 리필 식당인 ‘두끼’이다. 뷔페식으로 준비된 다양한 떡볶이 재료와 소스로 요리를 하며 식사 겸 단합대회를 기획한 장소이다.

남자아이들 30여 명과 입장하니 완전 시선 집중이다. 남기면 벌금 2,000원이라는 문구에 긴장하는 순진한 아이들을 데리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떡볶이를 한 번도 만들어 보지 못했다며 아이들은 수시로 나에게 레시피를 문의했고, 잔뜩 탄산음료만 들이키는 아이들을 막으며 각 테이블을 도니, 영락없이 어린 아들 30명을 데리고 외식하러 온 엄마의 모습이다. 에어컨이 켜졌건만 나만 열기로 얼굴까지 화끈거리며 더워졌다.

 이맘때 남자아이들은 여자 아이들에 비해 참 못 먹는다. 다른 테이블 또래 여자 아이들 손님은 조금씩, 다양하게, 끝까지 잘도 많이 먹는데, 우리 아이들은 이미 지쳤다. 볶음밥은 만들어 먹지도 못 하고 게임 삼매경에  빠져 휴식을 취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그래도 맛있다며 높은 만족도를 드러내니 다행이다. 소스 종류도 여러 가지 이건만 아이들은 오로지 빨간 고추장 소스만으로 만들어 먹고는 참 맛있단다.

 영화 관람 시작은 2시 30분이라 1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어떤 활동을 할까 생각하다가 친구들끼리 ‘로데오’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자유시간을 주었다. 토/일요일이면 청소년으로 붐비는 로데오 광장과 그 주변을 좀 둘러보라 했더니 나름 여기저기 다니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 물론 PC방을 빼놓지 않고 다녀왔겠지만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다. 인형 뽑기 방에서 인형을 뽑아 웃으며 자랑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무튼 무사히 자유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은 약속 장소에 10분 전부터 나타나서 다음 영화 관람을 위해 질서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무섭다는 ‘중2병’은 찾아볼 수 없는 중2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선택한 영화는 ‘석조 저택 살인사건’다. 우리 반의 단체 관람을 위해서 ‘롯데 시네마’는 시간까지 조정해 주었는데 아이들 반응은 그저 그랬다. 고수, 김주혁, 문성근 등이 출연하는 살인사건을 둘러싼 스릴러물인데, 그 시대의 의상과 시대적 배경이 인상적이었다. 다소 강한 폭력 장면이 나올 때 아이들은 무서워하며 얼굴을 감싸기도 했다.

 오늘의 소풍 모든 일정이 끝났다. 월요일이면 학교로 돌아가 체험학습보고서를 써내야 할 일이 남아 있지만, 교실을 떠난 아이들의 기분은 최상이다. 안전하게 하루 활동을 잘 수행한 아이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이 소풍을 다녀온 지 열흘쯤 되는 오늘, 우리는 다시 학교를 떠났다. 1학년 2학기 때 시행되는 자유학기제를 우리 학교는 연계해서 2학년 1학기까지 진행한다.

 오늘은 학년 전체가 단체로 동인천역에 자리 잡은 학생 교육문화회관으로 소풍을 또 가는 날이다. 오늘의 일정은 오전에 뮤지컬을 감상하고,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 다양한 체험학습을 하는 것인데, 오후의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우리 반은 당구와 탁구를 하게 되었다.

 단체로 관람할 ‘두 남자의 이야기’는 ‘레미제라블’을 새롭게 창작한 뮤지컬이다. 장발장과 자베르, 판틴. 코제트 등 주요 인물은 그대로 나오지만, 음악과 노래와 무대는 새롭게 창작된 작품이다.

아름다운 음색과 청아한 목소리들을 두 시간 가까이 들으니 마음속에서 그 울림이 오랫동안 살아 지속되었다. 문화의 향기가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스며들었을까? 환호하며 갈채를 보내는 박수 속에서 아이들의 문화를 누리는 경험도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다.

 점심시간이다. 부장 선생님께서 손수 준비한 김밥과 과일 등으로 맛난 식사를 했다. 아침 출근 준비도 바빴을 텐데 센스 있는 동료 교사들의 먹거리 준비로 시간은 부족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시작한 당구와 탁구 운동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높아져만 갔다. 포켓볼을 칠 때마다 아이들의 환호와 탄성이 가득 울려 퍼졌다. 나도 오랜만에 당구채와 라켓을 잡아 보았으나 마음만 급할 뿐 아이들에게 무참히 패했다. 아이들은 또 좋아라 낄낄대며 으스댔다. 나를 이긴 것이 그리 통쾌할까? 야속한 녀석들!

 이곳에는 골프장, 게임방, 농구장, 난타방, 책방, 댄스장 비디오방 등등 다양한 공간이 있어서 다른 반 아이들의 체험도 흥미로웠다.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모이니 여전히 즐거운 표정이다. 이렇게 오늘 소풍도 끝~~

아이들과 함께 하는 소풍은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하루 종일 볼 수 있어서 나도 행복하고 즐겁다. 안전사고 예방 등 어깨가 무거운 인솔 담임 지도교사이지만 나에게 맞는 이만한 행복한 직업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진다.

 오늘 모두 다치지 않고 무사히 체험활동을 마친 것을 또 감사드리며 다음 주를 기약한다. 다음 주 금요일에는 모두 ‘웅진 플레이’라는 수영장을 다. 물놀이 공간이라 아이들 살피는데 더 주의가 필요하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처럼 즐겁고 행복하기를 빌어 본다.

오늘의 소풍 이야기, 끝!


  우리 반 아이가 소풍날 찍어 학급 방에 올린 사진이다. 난 괜히 기분이 좋다. 우리 교사는 어쩔 수 없다.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건 교사나 학생이나 완전 똑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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