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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Jul 28. 2017

오늘의 수업 4 - 국어책 표지는 내 맘대로

난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가?

 25년 가까이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매년 3월이면 아이들에게  ‘건강한 바른 민주 시민’으로 키우는 것이 나의 교사로서의 역할이자, 목표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 안다. ‘미래에 건강한 민주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서 현재 ‘공부만 잘하는 괴물’은 절대 만들지 않으리라 역설하지만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민주'를 이야기하며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소통, 대화, 경청, 배려, 존중 등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면서도 어느새 아이들 앞에서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볼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문제적 중학생 남자아이들은?
 늘 움직여야 하는 혈기왕성한 중학생들은
기-승-전-성적[성적] or [성:쩍]인 아이들, 기발한 방법으로 말썽을 일으키고 장난치는 아이들, 친구를 야비하고 비겁하게 괴롭힐 줄 아는 아이들, 생각보다 일단 주먹이 먼저 나가는 아이들, 복도에서 야구공을 날리고 빗자루로 받아치는 아이들, 엄마 말을 무시하다 여성 혐오 언저리까지 간 아이들, 밤새 게임에 빠져 오늘 밤은 잠자는 것이 목표라고 적는 아이들, 욱하는 마음에 대형 TV 화면을 깨 화풀이하는 아이들, 친구의 휴대전화를 훔쳐 중고시장에 넘길 줄 아는 아이들, 급식을 한 후 식판을 던지고 젓가락을 이유 없이 구부려뜨리는 아이들, 왜 자는 사람을 깨우냐며 교사에게 욕설을 하는 아이들, sns로 마음에 안 드는 친구를 집요하게 따돌리고 괴롭히는 아이들, 성적으로, 체격으로, 외모로 친구에게 갑질할 줄 아는 아이들, 저질 성적 은어로 친구 엄마까지 언급하며 패드립하는 아이들, 단체로 친구를 구타하고 돈을 뺏는 아이들, 엘리베이터 안에서 초등생을 상대로 성추행하는 아이들, 절도로 CCTV에 찍혀 경찰을 학교에 오게 하는 아이들, 미친 듯이 떠들며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 일상인 아이들, 변기통에 야구공을 넣고 이유 없이 휴지를 적셔 벽에 온통 붙이는 아이들. 우울하다며 복도 난간에서 죽겠다고 실행하는 아이들, 대참사, 묻지 마 살인 등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까지…….

  비상식적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중학교 아이들이 그런 어른만큼이나 많을 때는 암담해진다. 25년 동안 최고 사춘기 절정기인 불안정한 아이들을 매년 보며 지냈다. 어이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분노가 끓어 올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때도 많았다. (물론 대부분의 중학교 아이들이 건강하고 명랑하고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학교가 좋은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아이들이 좋은 것은 내가 원하고 바라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아이들과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 직업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낱낱이 파악해라. 단점을 잘 알고도 그 일이 좋다면 네가 진정 좋아하며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특히 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참 좋다. 시와 소설에는 모든 세상이 다 들어 있다. 1학기 동안 아이들과 시를 읽으며 추위 속에 떨고 있는 할머니를 위로하고, 그 귤값을 깎으며 좋아하는 이기심을 부끄러워하고, 어린 베트남 아기 엄마들을 다시 한번 따스하게 돌아볼 줄 알게 되고, 진눈깨비 아닌 함박눈으로 세상을 환하게 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완득이를 통해서 작고 여린 사람들과 따스함을 나눌 방법을 이야기하며 국어 수업을 함께 해 왔다.

 시 한 편 읽고, 소설 한 편 읽으면 바른 민주 시민이 되는 길이 가까이 있다고 믿는 국어 교사이다.

나는 무슨 교사? ㅎㅎ

 내면화되어 행동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꾸준히 끊임없이 가르쳐야 하는 것이 교사의 몫이라 생각한다. 이런 기특한 꿈을 꾸며 국어 수업에 임하지만 아이들과 나는 하나가 아닐 때가 많은가 보다. 집에서 또는 쉬는 시간에 그렇게 할 리는 없고, 내가 원대한 꿈을 그릴 때 아이들은 이렇게 다른 그림을 그렸나 보다.

나는 국어 교사가 아니라 미국어, 중국어 교사인가 보다.
아이들은 국어 시간에 배가 고픈가 보다.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신기한 것은 매년 아이들은 이 일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언제나 국어 교사 아닌 [굶어 교사]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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