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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Oct 27. 2016

오늘의 수업 3 -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되었다.

문학의 힘을 믿는다.

 시, 소설, 수필, 희곡 등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바르게, 아름답게 살 수 있는지 고민하고, 성찰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문학을 사랑한다. 게다가 이런 문학을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니 더더욱 행복하다. 국어 시간에 다양한 영역의 공부를 하지만, 나는 문학으로의 체험 공부를 중시한다. 시, 소설을 읽고 국어 배경 지식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심 생각을 경험으로 체험하고,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詩

학습지를 받아 든 아이들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일단 국어 시간을 앞두고 있는 쉬는 시간부터 우리는 매일 ‘오늘의 詩’를 낭독한다. 중학교 아이들 수준에 맞는 아름답고 진솔한 시를 골라 아이들에게 선보이고,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낭독을 한다. 복도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시 읽는 소리는 세상 무엇보다도 기특하고 어여쁘다. 물론 악을 쓰는 녀석에, 후다닥 읽으며 혼자 엇박자를 타는 녀석에, 지루한 표정으로 눈으로만 응시하는 녀석에, 여러 번 나눠 준 시 종이를 또 잃어버려 오늘도 딴짓을 하는 녀석에……. 다양한 모습들 속에서도 어쨌든 시 읊는 소리는 매일 울려 퍼진다.

 시 짓는 아이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시를 잘 짓는다. 아파트촌이 아닌, 주택가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 학교아이들은 참 순수하고, 순박하고, 아이답게 귀엽다. 들어보면 짠한 가정사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특하게 잘 웃는 아이들이 많다.

 나는 아이들에게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지 시인이 될 수 있다고 자주 말한다. 중학생의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심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분명히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지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을 향해서, 부모님께, 친구에게, 동생에게, 선생님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을 써 보라고 한다. 운율, 비유, 심상, 함축 등, 다듬는 일은 그다음 일이다.

아무튼 교실 밖으로 나온 아이들 표정은 환하다.


 시 짓기 ~~ 시작

 시 잘 짓는 우리 아이들의 능력 발휘는 축제 때 절정을 드러낸다. 매년 11월쯤이면, 아름다운 하늘을 닮은 가을이 찾아오면 ‘풀무골제’라는 축제를 연다. 이때에 맞춰 국어과에서는 시화전을 준비한다.

 

 국어책에서 남이 쓴 시만을 보아오던 아이들이 드디어 자기 이름으로 시를 발표할 때가 온 것이다. 사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하다. 선생님이 수행평가까지 이야기하면서 시를 쓰라고는 하는데 어찌 써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주제와 소재

 시에 대한 전반적인 특징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작년 풀무골제에서 전시된 우수작품들을 소개하며, 이 시가 왜 우리 마음을 울리는지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한다.

 글을 지을 때 아이들은 주제와 소재의 뜻도 잘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중심 생각이 바로 주제라는 시험 문제에는 답을 척척 맞히면서도, 주제란에 떡하니 ‘잠자리’라고 적어 놓는다.

“ 잠자리는 주제가 되지 못해. 글의 재료, 소재가 아닐까?”
 “ 왜요?”
  “ 네가 나타내고자 하는 게 무엇이니? 잠자리의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데? 잠자리의  뭐지?”
  “ 가을에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우린 그냥 심심풀이로 잡아서 날개를 한참 잡고 있잖아요? 그리고 싫증 나면 다시 날려 보내고요. 근데 잠자리는 날지 못하고 죽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가을이 무서운 잠자리 마음을 말하고 싶었어요.”
 “ 그래, 바로 그거야! 네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 이 시를 쓰는 이유, 그것을 주제라고 해야지! '잠자리'는 제목을 정하는데 잘 활용하도록 해 봐!”

  이 번 시간에는 시의 제목보다 주제 정하기에 초점을 맞춘다. 아이들은 제각기 생각에 빠져 무엇을 시로 드러내야 할까? 간만에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한다. 그 모습이 또한 기특하고 뭉클하다. 저마다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소중한 경험을 아이들은 모처럼 하게 된다.


 얼마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진 준이는 바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준이는 이미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빠르게 시를 지을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곧 주제를 찾을 수 있으면 쉽게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을 준이가 보여 주었다.

 물론 준이 시의 주제는 ‘이별의 아픔’이다. 그래서 시 제목도 ‘ 그녀의  한마디’이다. 시인 준이의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


 잔디밭에서 시 짓기

 이번 시간에는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어제 무엇을 쓸 것인가? 주제에 대한 구상이 이루어졌으니 이제 시를 지어야 할 차례이다. 이왕이면 나무와 풀과, 신선한 바람이 부는 장소가 나으리라 여겨, 아이들에게 다짐을 받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과 가까운 곳이라 혹시 수업에 집중을 못 할까 봐 걱정는데 나의 기우였다.

모습이 참 예쁘다.
 고치면 고칠수록

 나무와 풀로 둘러진 자그마한 벤치와 돌에 옹기종이 모여, 불편한 자세를 감수하면서도 뭔가를 쓰려고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 고치면 고칠수록 망가지는 것은 OMR 카드라면,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칠수록 성공하는 것이 시 짓기 일거야. "

 아이들은 계속 자신이 쓴 시를 가지고 와서는 이런 완벽한 작품은 없을 거라고, 선생님은 위대한 걸작품을 보고 계시다고 너스레를 떨며 고쳐쓰기를 반복했다.

 평소에 말이 없거나, 수줍음이 많거나, 조금은 의기소침해 있는 아이들이 시를 지어 보이면 더 반갑고 기특하다. 아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나와 있는 시를 보면 감동적이다.

서서히 시상에 빠져든다. 말하고 싶다.
 걸작품들

 윤이는 몸도 또래보다 왜소하고, 평소 수업시간에 눈에 띄지 않는 아이이다. 발표할 차례가 와도 조그만 소리로 입안에서 맴도는 일이 잦은 아이이다. 윤이가 쓴 시의 제목은 ‘은행나무’이다.

 

 은행나무는 여러 가지 예쁜 모습으로 자라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가을에는 열매를 맺느라 구린내를 풍겨 사람들이 싫어하기도 한다. 나도 은행나무처럼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고, 구린내가 난다고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소에 친구들에게 치이면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윤이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마음이 아리면서도, 시로 그렇게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윤이가 안심되었다. 윤이의 마음이 시로 어찌 표현될까 기대된다.

 

 한껏 바깥공기를 쐰 아이들은 싱그럽다.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친구의 시를 들여다보고, 한 마디씩 평가도 해 주면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해 간다.

운동장에서 축구로 가까이하던 친구들 어깨가 벤치에 앉아 시를 짓는다고 모였다.
 자신의 일상을 ‘고장 난 줄자’에 비유한 시도 있고, 힘든 일상을 잔디에 빗대면서도 밟히고 밟힐수록 더욱 자라난다로 시를 마무리하는 아이도 있고, 친구를 ‘감자’로, 그 친구는 ‘문어’로 친구를 표현하면서 친구의 닮은 점을 찾아내느라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깔깔 웃는 아이도 있다.
 일상적 경험을 시로 표현

 일상적 경험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수업의 학습 목표를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다. 나도 곁들여 Brunch의 시들을 언급하면서, 선생님도 어떻게 일상적 경험을 시로 표현했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해 준다. 나의 열혈 구독자 (단 3명뿐이지만) 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게 아는 척을 하며 함께 호응을 해 준다.

시의 제목에 농구공이 들어간다. 농구공을 보며 한창 작업 중이다.
 아름답게 꾸미기

 이제는 꾸미기 시간이다. 지어낸 시들 중에 우수작품들은 시화전에 출품되어 축제 당일에 전교생이 볼 수 있도록 당연히 전시된다. 그런데 우리 학교 국어 선생님들은 내가 이 학교로 전근오기 전부터 훌륭한 전시회를 마련하고 있었다. 바로 전 학생의 작품을 교실 유리창 앞에 전시하는 것이다. A4 용지를 반으로 잘라 그곳에 자신의 시를 쓰고, 색연필, 파스텔 등을 이용하여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다. 잘 쓰나, 못 쓰나 금쪽같이 귀한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개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제에 이어 또 신명이 났다. 여드름 투성이 사춘기 중2 남학생들이 시를 짓고, 그것을 예쁘게 꾸미느라 고개를 책상에 박고 서툰 솜씨나마 발휘하는 모습은 또 그것 그대로 진지하다. 각자의 시를 돋보일 만한 그림을 선택하고, 아름답게 색감을 드러내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예쁘게 꾸미는 중학교 2학년 소년들
 우리 모두 시인이 되다

 

이제 우리 모두는 시인이 되었다. 아이들은 각자 아름다운 자신의 시 한 편씩을 가슴에 품으리라 믿는다. 국어 교과서에 정호승 시인이 나온다. 자신이 중학교 2학년 때, 진심으로 칭찬하는 국어 선생님 덕분에 열심히 노력하여 시인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함께 배웠다. 우리 아이들 속에서도 분명 보석 같은 시인이 지금 빛나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시를 가까이하며 삶의 고단함을 잊을 수도 있고, 아름다운 시를 노래하며 아름다운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으리라.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곱고 아름다운 시 덕분에 내 마음도 감성 충만한 가을이 되었다. 하늘은 높고, 가을은 아름답고, 아이들은 볼수록 대단하다.

 

걸작품들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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