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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Jun 16. 2017

오늘의 수업 2 - 희곡 내용 파악하기

 예전에는 희곡이나 시나리오 단원이 나오면 아이들과 공연까지 할 때있었는데, 최근에는 통 연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진도 나가느라 바쁘고, 수행 평가하느라 바쁘고 도저히 짬을 낼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희곡이나 시나리오 단원을 읽기로만 마쳤던 것 같다. 연기 좀 한다는 활발한 아이들에게 배역을 맡겨 리딩 연기를 시켜봐도 별 재미도 없어서, 그냥 성우들이 읽어 주는 교과서 본문 음성 지원으로 그 감정만 익힌 것 같다.

이번 희곡의 제목은 ‘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이다. 주인공 세탁소 주인 강태국을 비롯하여 총 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무식하고 경우 없고 아름답지 않은 ‘안유식’, ‘안경우’, ‘안미숙’ 남매가 세탁소에 쳐들어와서 혹시라도 어머니가 맡겼을지 모를 재산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며 난장판을 만들다가 결국에는 탐욕 때문에 모두 세탁기 안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다행히 세탁기 안에서 돈만 생각하는 더러운 마음을 깨끗이 씻고 모두 새로운 인간이 되긴 하였지만 얼마나 돈에 눈이 멀었으면 어머니의 임종도, 어머니의 이름도 모른 채 오로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점점 인간의 모습을 잃어갔을까? 작가는 안 씨 형제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물신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희곡의 내용은 재미있다. ‘염소팔’같은 등장인물의 이름만 보아도 희극적이다, 그러나 교과서 여러 장에 담긴 꽤 긴 분량의 내용을 파악하는 일은 역시 아이들에게는 지루한 일인가 보다.

연기의 정신을 살려 연기해 보기로 했다.

1. 4명씩 모둠 만들기
2. 4명이 1인 다역으로 해설까지 포함하여 총 10개의 배역 정하기
3. 각각의 배역에 맞게 지시문과 대사 파악하며 리딩 연기하기

 별 기대 없이 시도했는데, 아이들의 반응과 참여도는 뜻밖이었다. 4명 모둠 활동에서의 연기가 다른 친구들과 교사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무기력했던 아이까지 적극적인 태도로 목청을 돋우며 친구들과 대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자기네들끼리 웃고 감탄하고 놀라며 어느새 연기를 하고 있었다. 놀라웠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교실이 살아난 것만 같아 나도 즐거워졌다. 당연히 교실은 시끄러워졌지만 말이다.

 낭독과 연기로 어느 정도 줄거리 파악은 되었지만, 주요 내용 파악이 걱정이었다. 밑줄 쫙 그어가며 중요한 부분을 공유해야 하는데, 또다시 지루한 분위기가 될까 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100칸 빙고 게임과 스피드 퀴즈를 하기로 했다. 줄거리 빙고 게임은 종종 25칸 정도로 형성 평가 때 하긴 했었다. 아이들의 집중도를 끌어내는 데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이 희곡은 분량이 매우 길다. 내가 대충 뽑아낸 주요 단어만 해도 80개 이상이었다. 그래서 일단 스피드 퀴즈에 나올만한 주요한 단어를 100칸 빙고 게임 종이에 채우고, 그것을 질문으로 정리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4. 100칸이 그려진 빙고 학습지 칸을 채운다.
5. 희곡 내용을 세세하게 읽어봐야 채울 수 있는 분량임을 알린다.
6. 4명이 머리를 맞대고 80칸 이상을 채우면 스피드 퀴즈 맞추기 예상 연습을 한다.
7. 앞 친구에게 그 단어가 정답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질문한다.
8. 질문을 만들 때 유의점 2가지를 다시 주지 시킨다.
9. 주의점 1 : 낱말 맞추기가 아님을 강조한다. 반드시 희곡의 내용과 관련지어 질문하도록 한다.
10. 주의점 2 : 가장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질문을 만들도록 한다.

 예를 들어 정답이 간병인일 때 옳은 질문은 “할머니가 쓰러져 병원에 있을 때 옆에 있던 서옥화의 직업은?”이다. 일반적인 뜻인 “아픈 사람을 간호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하나?”라고 하면 질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100칸 채우기가 쉽지 않다. 모둠별로 머리를 맞대고 100칸에 들어갈 주요 단어들을 고른다. 본문 내용을 파악해야만 가능다.

 80개 이상의 주요 단어를 찾아 채웠으면 이제 앞 친구가 맞출 수 있도록, 희곡 내용과 연관 지어 문제를 낸다. 빙고칸에 채워진 단어가 답으로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한다. 또다시 왁자한 수업이 된다. 모둠별 수업은 늘 시끄러워 항상 옆반이 걱정된다. 수시로 소리를 줄여 말할 것을 지도하지만 쉽지 않다. 다른 조의 큰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으니 더 큰소리, 따라서 옆 모둠은 더 큰 소리로 교실은 내내 시끄럽다.

11. 조별 스피드 퀴즈가 끝나면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피드 퀴즈를 한다.

 분단별로 1명이 나와 분단 아이들의 질문 설명을 들으며 단어를 맞추는 것이다. 시간은 보통 각 모둠별 2분, 잘하는 모둠은 20개 가까이 맞춘다. 이 활동을 하다 보면 정말 기본적인 내용인데도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나는 분명 수업을 했으나, 아이들에게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 슬픈 대목이다. 이럴 때는 황당한 표정과 웃음으로 아이들과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많은 아이들이 수업 중 ‘정신 외출’ 중이라는 사실에 다시 좌절을 맛본다. 평소에‘꿀잠 자기’ 대회라도 나가려는 등 늘 잠에 취해 있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 모두 적극적으로 설명하기에 나선 분단은 칭찬과 때로는 사탕을 주기도 한다. 스피드 퀴즈할 때는 최소한 잠시 외출 중이었거나 수면 모드일 뻔한 정신을 적극적으로 깨어나게 하거나, 웃으며 다른 친구들의 활동을 지켜보며 내용 파악을 하기도 하니 아무튼 시끄러운 것이 더 낫다고 위로해 본다.

기발한 재치로 질문을 유도하거나, 반대로 엄청난 실수를 한 친구 이야기는 며칠간 아이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한다.

12. 질문을 못 하여 패스한 단어이거나, 잘못 질문했는데도 희한하게 정답을 이야기한 경우 등 따로 설명이 필요한 단어들을 모아 정리해 준다.

 이제 더 이상 등장인물의 관계를 망가뜨린다든지 하는 중대한 헛소리는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안경우, 안미숙 남매를 순간 부부로 만들어 버리거나 ‘강태국’의 딸 ‘강대영’을 아들로 만들어 버리는 황당한 일은 생기지 않는다.

강태국이 이 험한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물질만능적인 사회에서 탐욕을 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작가가 강태국을 통해 비판하려는 사회 모습은 무엇인지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나 고민하게 한다. 이것이 다음 수행 평가 주제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수업 영상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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