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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Aug 06. 2017

 '부여'라고 쓰고 '백제'라고 읽는다.

[밤 궁남지-부소산성-낙화암-정림사지석탑-부여국립박물관-신동엽문학관-낮 궁남지]

    마음이 쓰이다, 마음을 쓰다

 폭염 주의보 속 팔월 첫째 날 부여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와글와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 여행이 아닌 다른 목적의 출발이었다. 부여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을 위한 일종의 깜빡 방문 이벤트 수행이라고 해야 할까?

서울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부여 본사로 내려가 직장 생활을 하게 된 지도 벌써 6개월이 넘어간다. 그 동안 부여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서울로, 다시 서울에서 부여로 고단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이 마음에 쓰여 생각한 출발이었다.

 혼자 출발은 처음이었다. 함께 하기로 한 아이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빠지고 혼자 버스에 올랐다. 색다른 가벼움과 조용함을 느끼며, 깜짝 방문에 놀랄 일까지 생각하니 설렘이 가는 내내 나를 들뜨게 했다. 인천에서 예산, 청양을 경유하는 시외버스는 소란함 없이 차분하고 조용하게 나를 부여에 내려놓았다. 부여 시외버스 터미널은 내리 쬐는 햇볕 아래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 라고 쓰고 싶었으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배가 고파서인지 바로 ‘가나다 식당’이 눈에 들어 왔다. 깔끔한 분위기의 소박한 식당으로 동네 어르신들과 기사 여러분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식당 아주머니들의 몸놀림이 정갈하게 느껴졌다. 한 가지 메뉴의 밥집이었는데, 집 밥과 같은 느낌의 반찬 몇 가지와 된장국이 속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만원을 내니 육천 원을 거슬러 주었다. 4,000원의 백반집이라니……. 부여의 첫 인상이 매우 푸근했다.

 노랗게 핀 서양란 화분을 안고 부여 은산면 산업 단지에 있는 남편 회사로 향했다. 깜짝 방문을 위해 꽃집 사장님이 동행해 주었다.

꽃집 사장님이 꽃 리본에 쓸 문구를 알려달라는데 잠시 머뭇거렸다. 뭐라고 써야할까? 사실 마음 속으로는 '그 때 그 마음으로 언제나…….'라고 쓰고 싶었으나 고민하다 결국 아주 건조한 문구를 알려 주었다. '나날이 발전하시길…….'

 남편은 민망해 하며, 허허 웃으며 모처럼 나의 이벤트를 마무리해 주었다. ‘4시간에 걸친 나의 깜짝 방문 이벤트는 대성공이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폭염주의보 속 부여 여행 시작

 저녁을 먹고 계획을 바꿨다. 원래는 당일 코스 부여 나들이였는데, 마침 내일부터 남편 휴가이기도 해서 하루 더 머물다 인천에 가기로 했다. 한참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마치 부여 토박이 마냥 부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 동안 다닌 맛 집들을 소개하며 부여 자랑에 빠졌는데, 그 첫 번째가 민물장어집이었다. 가격은 인천 유명 장어집보다 저렴했다. 가장 큰 특징은 국내 최초의 친환경 생물학적 수질 정화처리 시스템으로 성장촉진제나 항생제가 절대 들어가지 않은 천연사료를 수입해서 키운다는 것이다. 아이들 없이 둘이 식사를 하려니 좀 낯설었다. 알맞게 장어구이를 먹고 궁남지로 향했다.

밤의 궁남지 빛의 잔치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 연못, 포룡정, 서동과 선화 공주, 연꽃 축제 등으로 떠올린 궁남지이나 밤이라 연꽃이 피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연잎들이 검게 흔들리는 길을 따라 저 멀리 보이는 불빛들을 좇아가니 그 곳이 포룡정이었다. 불빛에 늘어진 능수버들하며, 색색으로 솟아오르는 화려한 분수까지 정말 아름다웠다. 불빛으로 에워싼 포룡정 다리는 장관을 이뤄 무더운 밤공기를 이겨낼 만했다. 일본 정원 문화의 원류가 이곳이라니 자랑스럽기가 끝이 없다.

부소산성 둘레길

 다음날 아침 부소산성에 오르기로 했다. 부소산문을 지나 왼쪽 방향으로 향하는 제3코스를 택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릴 만큼 아침부터 태양은 달아올랐으나 부소산성 길에 이르자 이내 소나무 등으로 우거진 울창한 숲들이 그늘을 만들어 내어 주었다. 서복사 터를 지나 낙화암에 이르기까지 완만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진 둘레길은 산책로로 맞춤이었다. 날씨는 뜨거워 온 몸이 땀에 젖었지만 고른 숨으로 편안하게 오를 수 있었다.

낙화암, 백화정, 고란사

 그 유명한 낙화암에 이르렀으나 아래는 흙탕물이 흐르고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로 마음이 언짢았다. 궁녀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백화정도, 고란초와 고란 약수가 유명하다는 고란사도 모두 보수 공사 중이어서 매우 어수선했다. 게다가 폭염 속이라 차분히 둘러 볼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고란사 초입에서 아이스크림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스님의 모습 또한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란초를 보지도, 먹어 보지도 못 했지만 아마 소태처럼 쓴 식물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황포돛을 쓴 배를 타고 백마강 유람

 구드래 공원으로 가는 유람선을 타고 부소산문 주차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7명만 모이면 바로 출발하는 유람선도 있으나, 황포돛배가 운치있어 보여 30여분을 기다렸다. 황포돛배는 30명 이상이어야 출발한다. 기다리는 동안 눈불개라고 불리는 잉어들의 활기찬 움직임을 보며 백마강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불볕 더위였으나 그래도 습하지 않아 황포돛이 가리키는 하늘은 높고 맑았다.

유람선을 타고 낙화암을 멀리 보니 송시열이 썼다는 글씨도 보이고 그제야 낙화암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관광객 유치만을 위해 페인트 칠로 아무렇게나 붉게 덧칠해진 글씨를 보고 있자니…….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송시열은 어떤 마음으로 낙화암이라는 글자를 썼을까? 생각도 해 본다.

 해설사의 설명 끝에 흘러 나오는 백마강 노래는 처연하게 백제의 향기를 들려주는 듯 했다.

 도착한 구드래 선착장에서 아까 출발한 부소산문 주차장까지는 20여분 걸렸다. 가는 길에 '알쓸신잡'에  나온 유명한 막국수집도 있었으나 남편은 또 색다른 먹거리를 사 주겠다며 미련없이 지나쳤다.

태양은 갈수록 익어가 정점을 찍고 있었다. 폭염주의보 안내 문자가 계속 날아왔다. 비록 뜨거운 태양 아래 우리의 얼굴은 인상을 쓰고 있었으나  백제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태양도 어쩌지 못 했다. 우리는 계속 걸어 나갔다.

구드래 조각 공원을 지나고, 국무총리 공덕비도 지나고, 곳곳의 문화 유적 조사지도 지나니 처음 출발 장소가 나왔다.

정림사지 석탑

 
참게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고, 식당 바로 앞에 있는 정림사지 박물관으로 향했다. 담을 따라 매표소로 내려가는 길에는 내가 좋아하는 신경림, 고은, 신동엽 시인들의 시가 양 옆에 서서 백제를 노래하고 있었고, 인근 백제 초등학교 교문도 마치 백제 유물인 듯 예스러워 보였다.

 정림사지 석탑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듬직하게 서 있었다. 볼수록 안정감있게 하늘로 솟은 탑은 웅장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이었다. 날렵하고도 부드럽게 하늘로 솟아 있는 각 모서리는 세련되게 아름다웠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글씨가 새겨져 있어 한때는 소정방이 세운 탑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웅장했을 정림사를 그리며 뒤쪽 강당으로 가니 그 곳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이 세월의 흔적 그대로 앉아 있었다. 깍이고 잘린 모습이 그 동안 겪은 세월의 풍파를 말하는 듯 했다. 두 손 모아 합장을 올리고 머리를 조아렸다.

 여전히 작열하는 태양 아 땀을 닦으며 정림사지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극락정토 문이 말해 주듯 백제 사비시대의 절정을 이룬 불교 문화의 정수들이 모여 있었다. 탑을 만드는 과정과 복원된 정림사의 모습들을 알 수 있었다.

국립부여박물관

 사비 백제의 발자취를 걸어보기 위해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1관-부여의 선사와 고대문화, 2관-사비백제와 백제 금동대향로, 3관- 백제의 불교문화, 4관- 기증으로 빛난 문화재 사랑으로 이루어졌는데, 입장도 무료인데 오디오 가이드 대여도 무료이다.

 당연 2관에 많이 머물러 있었는데, 요강으로 사용된 호자,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백제의 대표적 금석문 사택지적비 등 많은 유물을 보고 드디어 백제금동대향로 앞에 멈춰 섰다. 아~~감동 그 자체이어라!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향로가 출토될 당시의 사진을 떠올렸다. 어찌 말로 감동을 다 이를 수 있으리…….

온몸에 진흙을 쓰고 있었던 백제금동대향로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 몸체 아래를 물고 있는 받침, 연꽃 잎으로 장식되 몸체, 산봉우리가 층층히 겹쳐진 형태의 뚜껑, 그리고 뚜껑 위의 날개를 활짝 편 봉황까지……. 탄성이 절로 흘러 나왔다. 신산 모양 뚜껑에는 42마리 동물, 5인의 악사, 17명의 인물이 74개의 봉우리 사이에 돋아져 새겨져 있고 몸체 연꽃 잎 사이와 위에는 25마리 동물과 2명의 인물이 표현되어 있다. 금동대향로에서 받은 감동 위에 3관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의 감동까지 얹어진 충만한 마음을 안고 박물관을 나섰다.

신동엽 문학관

 문학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건축학도들의 주요 답사지가 될 만큼 뛰어난 건축 예술을 선보이고 있는 신동엽 문학관을 찾았다. 승효상이 설계한 문학관에는 임옥상 화백의 설치 미술 ‘시의 깃발’이 마치 신동엽의 시들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문학관 앞에는 신동엽 생가가 복원되어 있었다.

 생가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으로 신동엽의 짧은 일생을 잠시 그려볼 수 있었다. 간암으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 했는데  6.25전쟁 참전 후 죽을 고비를 넘기며 걸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 잡아 먹었던 가재 때문에 평생 간디스토마로 고생했다는 일화가 떠올라 마음이 더 아팠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잘 생긴 신동엽 시인의 흉상이 우리를 쳐다본다. 백석, 정지용, 윤동주 등으로 이어지는 미남 시인 계보에 걸맞게 참 생겼다. 첫째 딸인 신정섭 화가가 그린 신동엽 초상화가 크게 걸려있전시관 내부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풍성한 자료와 사진, 유품들로 가득차 있었다.

신동엽 시인의 아들!
피울음으로 시를 쓰다

 우연일까? 한겨레 신문을 보다 보니 신좌섭 의대 교수가 시집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알린다. 시집 제목은 ‘네 이름을 지운다’이다. “떠나가 버린 이들/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너무 일찍 떠난// 그들은 오늘도/ 나와 함께 길을 걸을 것이다”(‘비 내리는 날’ 부분) 이 부분을 보고 마음이 쓰렸다. 2014년 11월에 수능을 앞둔 생때같은 아들을 잃어버렸단다. 그리고 나서 “무언가에 씐 듯 시작한 건데, 돌이켜보면 시를 쓰는 일이 저에게는 자기 치유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 살아 있었을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2014년 11월은 내가 엄마를 잃어버린 때이기도 하다. 나의 첫 시집 ‘엄마를 잃어버리고’도 같은 이유로 지금 7월에 출간되었다.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한 이유와 상통해서 마음이 더 쓰였다. 이 신좌섭 교수의 아버지가 바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신동엽 시인이다. 사실 부여에 신동엽 문학관이 있는 줄 몰랐다. 어제 시외버스 터미널을 코 앞에 두고 내릴 준비를 할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신동엽 문학관을 가리키는 이정표였다.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 그대로 되살아나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남산, 남두희 사진전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예상치 못 한 만남과 기쁨을 맞이할 때이다. 신동엽 문학관 기획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전 관람이 그것이다. 마침 南山 남두희 사진 작가님이 계셔서 작품마다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蓮, 하늘을 잇다’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데 벌써 5번 째 연작 전시회였다. 초입의 새벽 이슬이 가득한 연꽃부터 화사하게 산등성이 위에 떠오른 연꽃, 어둠의 등불로 은은하게 비추는 연꽃, 변화 무쌍한 빅토리아 연꽃까지 모두 궁남지 연꽃들이란다. 밤길에 방문하여 연꽃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온 궁남지를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전시회 관련 팜플릿과 현수막에 보이는 백제금동대향로 촬영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니 부여의 상징인 대향로가 세세하게 들어왔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인천에서 부여로 내려 오는 동안 도시의 변화를 가로등에서 느낄 수 있었다. 청양을 지날 때는 곳곳에 고추를 머리에 인 가로등이 즐비했고, 궁남지로 들어올 때는 선화공주와 서동 인형이 가로등 머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사진들을 보니 부여 가로등 머리에 모두 금동대향로 모형이 얹어 있었다. 그 때는 보이지 않던 대향로가 이제야 눈에 들어오다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다시 실감해 본다.

낮의 궁남지, 연잎 왕관을 쓰다

 아는 만큼이 넓어져서 다시 대낮 궁남지로 향했다. 어제 어둠 속에서 빛으로 운치를 전해 주던 궁남지는 전혀 다른 초록의 세상으로 다가왔다. 연꽃 축제는 끝났지만 연꽃들은 아직도 살아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 주었고, 풍성한 연잎들과 알찬 연밥들 사이에서 우리는 춤을 추었다. 때로는 이 연못 사이로 카누도 다닌다하니 궁남지의 매력은 무궁무진한 듯 보인다. 남두희 사진 작가님의 설명 따라 빅토리아 연꽃도 눈여겨 다시 찾아 보았다.

 좀 이른 저녁을 먹고 부여백제문화단지를 가기로 했다. 백제에서 건조 숙성(드라이에이징)으로 유명한 한우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숙성일이 30~50일 정도라고 한다. 설명을 듣고 고기를 먹으니 진짜 치즈맛이 올라왔다. 유명 TV프로그램 촬영지라는 소개와 함께 식당 입구에는 유명 연예인 사인으로 가득했다.

땡볕 아래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콤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도 바깥은 한낮처럼 뜨거워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았다. 그래서 착각했을까? 부여백제문화단지에 도착하니 이미 관람 시간이 종료되어 시계를 보니 6시가 넘어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안내도 주변만 기웃거리다 돌아왔다. 문화단지 주변에 있는 아울렛 조차에서도 역사적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왔다. 온 백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문화유적지 부여이다.

돌아 오는 길

 구름마저 아름다운 푸른 하늘이 흐려지다 석양에 물들고 다시 어둠에 천천히 둘러싸여 가는 모습을 보며 인천으로 돌아왔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단순 깜짝 방문으로 도착한 부여에서 보낸 시간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넒어진 날들이 되어 돌아올 줄은 생각 못 했다. 폭염 뙤약볕 아래에서의 인내는 썼으나 열매는 무엇보다 달콤했다.

 백마강의 고고한 흐름이, 궁남지의 출렁이는 연잎들이, 정림사지석탑의 의연함이, 대향로의 신비스런 향기가 어우러진 부여는 다시 백제의 고도가 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되어 옛 향기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서 되살아난다. 백제 향기 가득한 부여에서 내가 '부여'라고 쓰고 '백제'라고 다시 읽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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