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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Sep 05. 2017

배롱나무 눈에 들어오다.

상인천중/ 명옥헌 배롱나무

 배롱나무-백일홍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도시에서만 살았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닐 텐데, 유독 나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개나리, 진달래 빼고는 모두 모르는 것투성이니 어쩜 배롱나무를 모르고 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모르는 동안에도 여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고, 지고 피고를 반복하며 뜨거운 여름을 이겨냈을 나무. 100일 동안 피고 지는 그 시간 따라서 벼도 익어간다는 말을 최근 듣고, ‘백일홍’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무더위 속에서도 송이송이 아름다워 기특한 상인천중 배롱나무
나의 배롱나무

 우리학교의 오랜 교정에도 몇 그루 배롱나무가 서 있다. 이렇게 잘 생기고, 이렇게 아름다운 배롱나무가 또 있을까 싶게, 우리학교 배롱나무는 무리지어 있지 않고 혼자 서 있는데도 기가 막히게 멋지다. 특히 매끄럽게 자유로운 무늬로 자라 오른 줄기는 어떤 예술가도 손대지 못 할 오묘한 구부러짐을 만들어 내며 한창 아름답다.

 아침 출근길 무심히 걸어오다가도, 이 배롱나무를 마주치면 금세라도 한 폭의 명화를 감상하는 듯 마음이 아름다움으로 차올라 멈춰 서게 된다. 다가가 여린 꽃송이를 마주하고, 지는 꽃송이와 피는 꽃송이에 눈길을 주고, 줄기를 눈으로나마 훑어 만져보면 내 마음도 배롱나무가 되는 듯하다.

우리 학교 배롱나무만큼 매끄러운 가지를 가진  배롱나무를 아직 보지 못 했다.
배롱나무 별명과 군락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자미화(紫薇花)’로 불릴 만큼 보랏빛이 흔하지만, 붉은 꽃, 흰 꽃도 있다 한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반질반질한 나무줄기도 원숭이가 미끄러질 정도로 매끈하다 해서 ‘원숭이 미끄럼 나무’, ‘간지럼 나무’, ‘백양수’로 불린다고 하고 전라도에서는 쌀이 나올 때까지 피는 나무라하여 ‘쌀나무’ 라고도 불린단다. 우리나라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특히 소쇄원, 식영정을 비롯해 강진 백련사, 고창 선운사, 경주 서출지등이 배롱나무군락지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나는 담양 후산리의 명옥헌을 잊을 수 없다.

명옥헌 배롱나무

 명옥헌을 처음 찾은 날 배롱나무 꽃무더기에 취한 것이 꿈인가 싶을 만큼 와락 내 마음 속에 꽃잎들이 펼쳐졌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심히 후산길을 걷다 모퉁이를 돌았는데, 와우~ 생전 처음 보는 꽃나무 잔치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엄청나게 펼쳐진 나무들의 향연과 그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꽃비로 떨어져 연못가를 수놓은 것이 배롱나무와 명옥헌이라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와 마음에 푹 꽂혀버렸다.

 이글거리는 뜨거운 태양을 마주하고 걸은 보답으로 손색없는, 한 여름의 열기를 단숨에 몰아내기에 충분한 아름다움이었다. 8월의 뜨거운 한 낮에 배롱나무는 그렇게 나를 완전히 빠져들게 하였다.

     

그 꽃 (고은)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 한
그 꽃                          

 내려갈 때라도 배롱나무를 알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한 마음으로 그 후 맞은 여름들은 늘 배롱나무를 기다리게 한다. 돌아보니 곳곳에 이미 배롱나무들은 서 있었다, 나만 모르고 지나쳤을 뿐!

 초록 잎 사이사이 마다 자리한 꽃 분홍 꽃들을 볼 때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이 나무를 알았던 것처럼 옆 사람들에게 배롱나무의 아름다움을 역설하게 되었다. 하나하나 송이들이 모여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이 나무의 매력이다. 나도 언젠가 시인처럼 배롱나무의 모습을 시인의 마음으로 칭찬하고 싶다.

아파트 곳곳에도 이미 이렇게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목백일홍 (도종환)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 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시인 따라 덩달아 나도 배롱나무 시 한 수 지어본다.

배롱나무 (도시락-한방현숙)

배롱배롱
되뇌이다 보면

어느새 경쾌한 발음이

나무줄기를 타고 오른다.

 

매끈하게 피어올라

쌀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초록 송이마다 꽃분홍 빛 모였다니

더 없이 기특하고 야무지다.

     

피는 꽃, 지는 꽃
가타부타 말없이

석 달 열흘 삼세번이나 힘을 내

어울리며 붉게 철들어가니 더 미덥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모든 수고로움 위로하느라

아주 천천히 다음 계절을 부르며

     

익어가는 벼에게

고개 숙일 시간 마련하고 나서야

제 소임 다했노라

빛나던  내어주니

더 눈물겹고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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