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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Oct 21. 2017

강 따라 물 따라 아름다운 유람!

추석 연휴 2017.10/7,8,9 단양-영월여행

'연휴'라서 떠난 여행

 순조로운 이치를 따르는 것이 ‘순리’했던가! 여행하는 내내 이 말을 자주 떠올린 것은 여행 목적이 ‘지쳤다’ ‘숨 막힌다’ ‘그래 여행을 떠나자’가 아니라 이 길고 긴 황금 같은 연휴에 왠지 떠나지 않으면 손해일 것 같고, 꼭 이 연휴를 활용해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떠난 여행이어서 결국 순조롭지 않은 많은 일들이 여행길에 일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행착오'의 연속들

 여행을 불편하게 한 '순조롭지 않은 일' 중 단연 최고는 떼로 몰려든 등산복 관광객들의 비상식적 행동들이었다. 그동안 나는 해외공항에서 단체로 등산복을 입은 한국 여행객들에게 보내는 부정적인 비하의 시선들에 대해서 얼마간 마뜩잖은 생각이 있어 왔었.

 ‘등산복을 단체로 입은 게 뭐 어때서? 개성이지, 꼭 자기들 취향대로만 맞춰야만 하나?’

 다소 얼마간은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으로만 해석하고 반감하는 마음이 더 컸었다.

 그러나 2박 3일 내내 가는 곳곳마다 고성방가에 새치기에 무질서한 그들의 모습은 불쾌감을 넘어 등산복만 봐도 질색할 정도로 불편했. 빼곡히 들어서는 대형 관광버스마다 3,40여 명의 단체 관광객들을 내려놓으면 그들은 떼 지어 화장실이든, 매표소 앞이든, 대기소 앞이든 가리지 않고 멋대로 웃고 떠들고 소리 지르고 막무가내로 질서를 어지럽히며 여행길을 방해했다.

이밖에도 도보로 5시간을 꼬박 헤맨 일과 그 바람에 계획과 달리 놓쳐 버린 제천 여행, 유명 맛집이라는 식당에서 경험한 황당함, 남의 돌탑을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리는 어린 딸과 그 부모들의 비상식적인 행동,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게 내버려 두는 식당에서의 부모들, 그리고 마지막 열차 안에서의 민폐 승차객들까지!
여행 시작-단양읍 도착

 7일 토요일 아침에 인천에서 느긋하게 출발하여 단양에 도착하니 2시간 반이 걸렸다. ‘다누리아쿠아리움’ 근처의 관광 안내소에서 관광안내도를 집어 들고 주변을 살피니 마침 그곳이 ‘쏘가리 특화거리’란다. 비록 4개의 가게가 전부라지만 주차하기 맞춤한 곳을 찾아 들어가니 그곳이 유명 맛집이라는데 깔끔한 밑반찬과 친철한 주인의 응대가 단양의 첫인상을 좋게 했다. 쏘가리 매운탕을 시켜 맛나게 얼큰하게 잘 먹었다. 곁들여 시킨 다슬기 파전은 입맛에 살짝 비리고 서걱거려서 반은 남겼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앞에는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높은 하늘에는 패러글라이더들이 산과 어우러져 끊임없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단양이 새로운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는 이유를 실감했다.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려 하였으나 우리 가족 누구도 용기를 내지 못해 그냥 눈으로만 만족하기로 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려면 예약은 필수이다.

충주호 관광선

 장회나루와 청풍나루 구간을 운행하는 충주호 유람선은 단양 팔경인 옥순봉, 구담봉을 끼고 제천으로 흘러 제천 십경까지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물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관광선은 1층부터 3층 옥외까지 있는데 우리는 주로 밖에 나와 있어서 관광안내 방송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설명 없이도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경관이 좋아 다녀 본 해외 유명 해안선 뱃길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널찍히 트인 강물은 속을 뻥 뚫어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숙소인 단양관광호텔 숙박권으로 승선비 2,000원씩을 할인받을 수 있어 더 좋았다.

단양팔경-상선암, 중선암, 사인암

 다음은 역시 단양 팔경에 속하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과 사인암을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소선암 자연 휴양림과 오토 캠핑장이 있었다. 가장 아래쪽에 있는 상선암부터 둘러보았다.

 삼선 구곡이라고 불릴 만큼 웅장하고 올망한 바위들이 서로 어우러져 시원한 물살과 함께 절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특히 올라오면서 들른 사인암은 정말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답고 주변 경관이 빼어났다. 단풍이 든 후의 모습은 더 장관일 듯했다. 사인암 입구의 청련암과 사인암을 바라보면서 물 따라 걷는 길은 시간이 흐르는 걸 잊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사인암에 푹 빠진 후 단양읍 쪽으로 올라오니 벌써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군중 심리에 속아버린 허울 좋은 유명 맛집

 해질녘 숙소를 향해 가며 검색한 곳이 그 유명하다는 맛집이었다. 긴가민가하며 들어갔더니 이미 대형 주차장은 차들로 빼곡했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엄청 많았다. 성격상 줄 서서 기다리며 먹는 타입은 아닌지라 보통은 패스하는 편인데 그 날 따라 날도 저물고, 도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이리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궁금도 하고 해서 고기 좋아하는 아이들 의견 따라 우리도 줄을 서보기로 했다. 대기 시간이 1시간이라는 데도 7시가 넘으면 아예 예약조차 안 된다는 상황에서 대기표 받은 것이 무슨 대단한 선물인양 그렇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선택

 정말로 어리석은 실수였다. 엄청나게 넓은 식당 안은 격 떨어지는 요란한 식기 소리로 가득해서 차분함과 조용함은 찾을 수 없었고 앳된 고등학생 얼굴의 종업원들의 서빙은 어설펐다. 기다리는 동안 10 여개의 블로그를 검색한 결과도 그다지 좋은 평가가 없었는데도 무슨 오기인지 우리는 '어디 한 번 맛없어 봐라' 이러면서까지 배고픔을 참아가며 기다리고 있었으니 '군중의 심리에 쏠려 판단력을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1시간 후 드디어 식당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헐~~! 이렇게 자리 잡고 또 40 여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눈이 저절로 치켜 올라갔다. 석갈비 1인분 200g에 15,000원이면 저렴한 것도 아니고, 팍팍하기만 한 고기 맛이 엄청 맛난 것도 아니고, 곁가지 반찬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도떼기시장 같은 이 곳이 ……. 도대체 왜? 이 식당은 줄줄이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일까? 왜? 왜? 마늘을 이용한 몇 가지 소박한 반찬 때문에 거의 2시간 가까이를 기다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유명 맛집이었는데……. 여행이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느림보 강물길

 다음 날 단양관광호텔의 조식은 좋았다. 깔끔한 음식이며, 해장국에 친절하고 편안한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다. 숙소에서 도보로도 가능하다는 안내 데스크 직원의 말을 듣고  ‘만천하 스카이워크’를 결국 도보로 다녀오기로 했다. 이 결정이 우리를 5시간 동안 꼼짝없이 걷게 만들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 출발은 당연히 차량이었다. 숙소를 나선 지 5분도 안 되어 우리는 도로가 꽉 막혀버렸음을 알아버렸고 이후로도 계속 추석 연휴를 이용한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임을 예상해 다시 숙소로 돌아와 차를 두고 걸어갔다 오기로 한 것이다.

 ‘느림보 강물길’이라 이름 붙인 이 길은 5시간 뒤 피곤에 지쳐 되풀이로 다시 돌아올 때도 아름답게 느껴질 만큼 볼수록 절경이었다. 물 위에 만들어 놓은 테크 길을 따라 걸으며 감상하는 그림 같은 풍경은 일일이 사진에 담느라 정신없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게다가 곳곳에 쇠그물로 만들어 놓은 개방형 바닥은 아찔함까지 더해 주어 재미까지 있는 길이었다.

만천하 스카이워크

 이 곳을 지나 ‘만천하 스카워크’에 도착했을 때는 짚와이어를 타려면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이미 사람과 차들이 뒤엉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동이 겹치지 않게 잘 구조화된 덕분에 스카이 워크 길은 걸음이 편안했고 조망이 좋아 만족스러웠다. 단양읍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최고봉 자리는 그대로 '만천하'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해 내고 있었다.

요란하게 알려진 '수양개 빛 터널'

‘만천하 스카이워크’를 관람하고 내려오니 사람들은 아침보다 더 모여들어 도로는 완전히 마비된 듯 더 복잡했다. 우리는 ‘느림보 강물길’을 다시 돌아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이 곳에서 1km쯤 걸으면 나온다는 ‘수양개 빛 터널’를 갈 것인지 잠깐 고민하다가 ‘수양개 빛 터널’을 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버스든, 택시든 차를 타고 숙소 주차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 섣부른 판단으로 우리는 꼬박 5시간을 걷게 되었고, 이 시간 허비로 제천 여행은 시작도 못 하게 되었다. ‘수양개 빛 터널’이 너무 유명하게 알려져서 기대를 하고 갔는데 비싼 입장료와 10분도 안 걸리는 터널 길이는 아쉬웠고, 밖에 조성된 LED 장미 꽃밭은 낮이라 아무런 아름다움도 뽐내지 못했다. ‘수양개 선사 박물관’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헐~~ 차가 없다니…….

 뜨거운 한낮의 태양을 피해 어서 우리 차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관람 시간 끝에쯤 온다는 버스는 추석 연휴로 인해 도로 비상에 걸려 오늘 운행이 불투명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 보았으나 역시 허사였다. 눈도 뜰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우리는 당황했다. 지침이 얼굴까지 올라온 아이들을 보며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주도적 역할을 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이 무거운 마음과 저려 오는 다리를 끌고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가야만 했다. 터벅터벅 앞으로 1시간 반을 더 걸어가야 하다니 아까 오던 길에 신기해하던 이끼 터널도 시루섬의 기적비도 무심히 지나치며 우리는 서로 말없이 되돌아가고 있었다.

터널을 뚫다

 우리의 마음이 풀린 것은 ‘애곡 터널’을 통과할 때부터이다. 도저히 40여분 동안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갈 기력이 없어서 용감한 남편을 따라 터널을 뚫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를 잘 맞춰 서로를 안전해하며 조심조심 어둠을 밝히며 지나갔다. 동생들을 챙기고 가족들을 챙기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풀어진 데다가 남편이 보여준 터널 속 '개그'에 그만 빵 터져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색하던 침묵을 깨고 다시 여행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때 터널을 뚫고 나온 뒤 다시 보는 저 너머 스카이워크도, 느림보 강물길도 새로운 얼굴이 되어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아침 10시에 나온 출발지를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다시 밟을 수 있었다.

맛있는 단양 구경시장

 허기질 때 찾아 간 ‘단양 구경시장’은 맛의 천국이었다. 부풀려진 맛집에 그렇게 당했건만 우리는 눈 앞에 펼쳐진 마늘을 이용한 각종 음식, 순대, 통닭, 만두 앞에 무너져버렸다. 전통 시장 특유의 흥겨운 분위기까지 느끼며 적극적으로 시장을 유람하다 우연히 들른 ‘만두 맛집’은 최고였다. 두 테이블도 안 되는 좁은 식당을 차지하고 길게 늘어선 문밖의 손님들을 보며 이유 없는 뿌듯함과 미안함을 느끼며 먹는 만두 맛은 참 특별했다. 투명한 만두피 안에 든 새우, 갈비, 마늘 만두 맛은 이 가게가 계속 번성하기를 저절로 기도하게끔 만들 정도였다.

도담삼봉과 우리 '도담이'

 드디어 단양팔경 중 1 경인 도담삼봉을 가게 되었다. 의미는 다르나 우리 막내딸 이름이 ‘도담’이라 우리는 “도담아~ 도담삼봉 오니 어떠니? 도담아~”를 연발하며 아재 개그를 남발했다. 정도전의 동상이 도담삼봉을 굽어보고 있었다.

모터보트

 1경에 걸맞게 아름다운 도담삼봉보다 우리는 모터보트 탑승에 더 열광하고 말았다. 3대의 모터보트가 운행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의 모터보트 운전 솜씨는 정말 대단했다. 180도 보트를 기울이는 것은 물론 도담삼봉 사이를 쾌속으로 질주할 때는 정말 부딪힐 듯 아찔했다. 곡예에 가까운 신기술 운전에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몸을 맡겨 즐겼다. 얼마나 스릴 있고 재미있었던지 목소리가 쉴 정도였다. 모터보트에서 내지른 비명과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인연과 우연

 원래 여행 계획은 단양 북부권(온달관광지, 구인사, 북벽 등)을 둘러보고 영월로 넘어가려 했으나 지인이 부친상을 당해 제천을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인천에서 소식을 접했으면 제천까지 조문 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인연과 우연에 대해 생각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영월로 넘어갔다.

한 밤의 작은 음악회

 영월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후라 주변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풍경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동강을 끼고도는 강변의 모습이 산과 어우러져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전날 하루 종일 운전한 남편을 위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계획한 것은 아닌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편의점 삼겹살을 사다 구우며 간단한 저녁식사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노래방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모처럼 가요부터 팝송까지 애창곡 서너 곡을 열창했고, 딸들은 센스 있게 난타로 박자를 맞춰가며 흥을 돋워 아빠를 응원하고 있었다. 즐거운 가족음악회였다.

동강시스타의 아침

 아침의 동강은 예뻤다. ‘어라연’을 향해 출발하는 길에 ‘테디베어’ 박물관이 있었다. 영월은‘ 박물관 고을’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박물관들이 모여 있었다. 주로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들이 많았는데 관람료가 생각보다 비싼 작은 박물관들은 패스했다. ‘어라연’이 뭔지도 모르고 유명하 다해서 왔는데 ‘동강 어라연 탐방로’를 따라 탐방하는 시간이 왕복 3시간이라는 ‘삼옥 안내소’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차로는 당연히 갈 수 없고 굽이치는 동강과 아름다운 어라연을 보려면 걷거나 래프팅 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도 아쉬워 20여분 더 나아가다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라디오스타 박물관

 영화 ‘라디오스타’의 촬영지였던 옛 KBS 영월방송국을 박물관으로 꾸며 놓은 곳이다. 안성기와 박중훈이 전하는 감동을 다시 느껴 볼 수 있고 각각의 체험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만했다. 꽤 오랜 영화의 장면이지만 주인공들이 서있던, 비가 마구 내리던 방송국 입구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장릉과 청령포

 영월 하면 ‘단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만큼 단종의 얼과 혼이 숨 쉬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단종의 능인 ‘장릉’과 유배지 ‘청령포’를 밟았다. 장릉 입구에 마련된 ‘단종역사관’은 단종의 탄생과 유배, 죽음과 복권에 이르는 단종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더 마음이 애잔하고 몇 백 년이 흘렀음에도 그때의 외로움과 황망함이 전해져 마음이 더 숙연해졌다. 능 올라가는 길을 따라 한참을 조용히 걸어 올라가니 단종릉이 나타났다. 멀리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일자가 아닌 기역자로 꺾여 있는 참도(신이 다니는 왼쪽 신도와 왕이 다니는 오른쪽 어도)에서도 비운의 안타까움이 느껴져 한참 가슴이 먹먹했다.

 청령포의 물은 맑고 깊었으나 슬픔이 가득했다. 깊은 강물 속에 고기가 한가득했다. 홀로 그 무서움을 감당해야 했을 어린 왕이 떠올라 울창한 송림도 슬프고, 하늘도 슬프고, 수령 600년이라는 관음송도 슬퍼 보였다. 노산군으로 강봉 된 뒤 창덕궁을 떠난 지 7일 만에 이른 곳이 유배지 청령포였다니 그 시간이 얼마나 아프고 아팠을까 생각해 본다.

영월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의 모습은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30분쯤 걸으면 나온다는 말을 밑에서 듣고 올라갔으나 거의 1시간 여를 걸은 듯했다. 가는 길은 편안한 산책길보다는 가파르고 등산길보다는 완만했다. 난 한반도 지형의 모습이 한 곳에만 있는 줄 알고 수년 전 다녀왔던 정선의 한반도 마을과 같은 곳이라 혼동했다. 물살이 비슷한 지형이라면 만들어 낼 수 있는 S자 곡선이 휘몰아가는 곳에는 삼면이 둘러 싸인 우리나라 지도 모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정선에도 있고 영월에도 선암 마을이 있다. 유람객들을 실은 뗏목이 마침 물 따라 주변에 흐르고 있어 더 아름답고 멋져 보였다.

한우 다하누촌

 요선정/요선암을 향해 가다 ‘영월 한우 다하누촌’ 이정표를 보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람이 북적거릴 줄 알았는데 매우 한산했고 그곳 상점 주인들도 적극적으로 영업할 의사가 없는 듯 심지어 심드렁해서 또 놀랐다. 오랜만에 한우를 먹으려는 계획을 바꿔 소머리국밥과 갈비탕을 먹었다. 무뚝함을 불친절로만 알고 내키지 않았지만 배고파 들어간 식당이었는데 곰삭은 김치 맛과 진한 국물 맛에 감탄하며 달려드는 파리를 쫓아내면서도 아무튼 맛있게 먹고 나왔다. 고기 식당에서 산 육회를 갈비탕 사장님이 정성껏 양념해 주었지만 배가 빠져서인지 아이들 반응도 그저 그래서 다 먹지 못했다.

요선암 가는 길-돌개구멍 강가

 요선암을 보고 여행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우리가 간 곳은 요선정/요선암 가기 전의 천연기념물 돌개구멍, 포트홀(pot hole)이 장관인 강가였다. 구혈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암반의 오목한 곳에 물(와류)이 모래나 자갈과 함께 소용돌이치면서 암반을 마모시키며 구멍을 만든 것이다. 어느 사진 찍는 부부와 멀리 다슬기라도 잡는 듯한 사람밖에 없어 역시 물 흐르는 소리만이 들리는 조용한 곳이었다. 신비로운 돌개구멍 사진을 찍고 서둘러 걸어 나왔다. 나오는 길에 시화전과 코스모스가 인상적이었다.

아쉬운 곳 여러 가지

 여기서 가까운 곳에 법흥사가 있다고 하나 시간상 둘러보지 못했다. 예약에 밀려갈 수 없었던 ‘별마로 천문대’나 그냥 지나친 ‘동강 사진박물관’, ‘선돌’ 등은 아쉬운 영월 여행지였다.

제천역에서 헤어지다

 우리가 서둘러 제천으로 향한 것은 열차 시간 때문이었다. 오늘이 추석 연휴 끝이라 내일이면 어김없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는 다시 부여와 대전으로 가야 하는 남편과 둘째를 위해 제천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남편은 제천역에서 우리를 내려 주고 둘째와 함께 대전, 부여로 떠나고, 남은 우리 셋은 청량리행 열차를 타고 다시 인천으로 내려오는 멀고 긴 귀가 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물 따라 강 따라 아름다운 유람

 급박하게 쉴 틈 없이 떠난 여행이지만, 여러 가지 변수들로 계획대로 안 된 여행이기도 하지만 우리 눈 앞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물길들이 펼쳐져 있었다. 단양의 남한강과 중추호, 영월의 동강, 서강의 남한강과 주천강 등등……. 언제나 그 강에는 생명이 흐르고 있었고 그 생명력이 다시 인간들을 키워내고 살려내고 있었다. 강을 따라 흐르는 역사의 현장을 함께 호흡하고, 강을 따라 도는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2박 3일의 여행이었다.

 엄청 긴 이 여행 기록 마냥 단양과 영월의 아름다운 물길은 한 동안 내 가슴속에 추억을 새기며 길고 길게 흐를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순리대로 아름답게 살 수 있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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