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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와 부크크

그리고 출간 3개월 동안

by 도시락 한방현숙
첫 시집 출간

책을 출간한 지 3개월이 넘었다. 내 생애 시집을 출간하다니……. 놀라움은 아직까지 지속이다.

무슨 용기로 시를 쓴 지 1년도 되지 않은 주제에 시집을 냈는지, 게다가 내 온 모습을 드러내야만 하는 내용을 담아 버렸는지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고 쑥스러움은 이미 극에 달했지만 그래도 난 시집을 내었다.

그리고 오늘도 '시'라며 짓고 있다.

브런치를 만나 글을 쓰게 되었고, 부크크를 만나 출간을 하게 되었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희미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소설’을 쓰리라 생각하며 꿈도 야무지게 ‘도시락’이라는 소설 제목부터 턱 하니 지어 놓았으니 글짓기에 대한 열망은 꽤 오랫동안 묵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쉽지 않은, 어려운 대단한 일 중의 하나인 글짓기가 아이 기르면서, 직장 생활하면서, 나이 들어가면서 분주한 나에게 쉽게 올 일은 없었다.

글짓기에 짬을 낼 수 없다는 것은 아직은 살만하다는 뜻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도저히 어쩔 수 없어 풀어내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을 때 시작한 것이 글짓기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어쩔 수 없는 슬픔과 아픔으로 허우적거릴 때, 언젠가 한번 들어 본 적 있는 ‘독립출판’이라는 말을 검색하다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2016년 4월의 일이다. 그리고 ‘브런치’ 활용 방법도 제대로 모른 채 시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생큐, '브런치'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시' 팔이 하는 시대에 (개인적으로 난 이 시인을 좋아한다) 50대 어느 여자가 쓴 나름의 한풀이 글을 누가 읽어줄까? 그렇지만 일단 나부터 챙기기로 용기를 내었다. 다른 이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가 되는 것은 나중 목표로 삼고 일단 나만의, 나를 위한 글을 지어나가기로 했다. 부족한 솜씨지만 시를 지으면서 나의 어린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고, 지난했던 간병의 아픔을 풀어낼 수 있었고,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가 엄청 고마웠다.

소설은 아직도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감정이 진정되면서 교사로서의 글, 수업에 관한 글, 더불어 사는 삶에 관한 글들도 쓰게 되었다. 무엇보다 서로 댓글을 달아주는 친절한 작가님들과의 교류가 나를 더 풍요롭게 해 주었다. ‘브런치’ 글을 읽으며, 핀란드, 인도, 미국, 일본, 네덜란드에서 보내오는 생생한 글을 접할 수 있었고, 신선한 영화, 연극, 책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다.

‘브런치’에 푹 빠진 것이다.
생큐, '부크크'

20년 뒤에야 시집을 낼 거라며 우스갯소리로 아마추어 실력을 덮으려 했으나, 아쉽게도 출간에 대한 욕심이 생겨 버렸다. 교류하는 작가님들의 연이은 출간 소식도 한몫 거들었다. 여기저기 자가 출판, 독립 출판을 기웃거릴 때 ‘브런치’에 ‘부크크’ 배너 공지가 떡 하니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여름방학 내내 ‘부크크’ POD 자가 출판에 시간을 쏟았다. 구독자나 공유자 수를 보면 의기소침해질 때가 태반이지만 엄마에게 보내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들였다. 편집, 교정, 배열 등등 허점투성이인 시집이지만 나에게는 그것조차 의미가 큰 첫 시집이 영광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브런치' 내에서조차 대우를 달리하는 'POD 자가 출판 시집'이지만 내게는 너무 예뻐 소중한 당신 같은 '시집'이다.

퇴고는 서두르지 말고 끝까지 꼼꼼하게 수시로 할 것
서점에 가서 요즘 출판되는 시집들을 참고로 둘러볼 것
구입자가 결국 지인에게 국한된다면 ‘부크크’에서만 유통시킬 것
책 표지는 이왕이면 전문적 작가의 손길이 들어간 작가 서비스를 이용할 것

그리고 다달이 ‘인세’ 받는 여자가 되었다. 당연히 보잘것없는 금액이지만 입금 문자가 올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은 여느 인기 작가에 버금가리라 믿는다.

책이 출간되고 단체 채팅방에 출간 소식을 알렸다. 가족과 친척들의 축하가 가장 컸고, 나의 개인적인 성장기를 공유하는 이들이었기에 눈물의 응원과 지지가 책 구매로 이어졌다. 총 200여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는데, 모두 지인의 힘이라 믿는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글짓기 연습을 갈고닦아야 하리라.
작가가 되고자

시를 쓸 때는 별 고민 없이 써 내려간다. 한 1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그리고 다듬기, 퇴고를 위해 하루 정도의 시간을 할애할까? 아예 잘 안 되거나, 쓸거리가 없을 때는 글을 쓰는 유형이 아니라

아직 창작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껴보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장점이면서 결정적 한계일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사람들은 운문보다 산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쓴 수십 편의 시 중에서 조회 수가 1,000회를 넘은 것은 두서너 개 밖에 안 된다. 그러나 학교 이야기나 여행 이야기에 관한 수필많은 산문들의 조회 수가 1,000을 넘었고, 동해바다 여행 이야기는 에디터 눈에 띈 덕분에 조회 수 4만을 바라보고 있다.

비록 ‘위크리 매거진’에 도전할 자격조차 안 되는 비인기 작가에 속해 있다 하나 기죽지 않고 계속 글을 쓸 열정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글 짓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다양한 친구들이 출간을 축하해 주었다. 20년 지기 동료 선생님들은 ‘출판 기념회’를 열어 주었고, 30년 전 고3 담임선생님은 격려의 문자를, 20년 전 첫 제자는 응원의 문자를 책 구매 인증 숏과 함께 보내 주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뜸했던 이모들과 삼촌들과도 대화를 이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하늘에 계신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며 박수쳐 주셨을까 하는 생각에 졸작이지만 흐뭇했다. 나를 생각하며 책을 구매해 준 많은 지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용기 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시집 온라인 판매 비율은 부크크와 타 외부 유통 (알라딘, 예스 24, 교보) 비율이 40:60 정도이다. 인세 비율 면에서 보면 ‘부크크’ 판매가 작가에게 훨씬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그런데 회원 가입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배송 비까지 생각하면 모처럼 내 책을 산다는 고마운 구입자들에게 외부 유통을 막을 수는 없었다. ‘부크크’가 좀 더 많이 알려져 유명해지면 좋겠다.

‘브런치’와 ‘부크크’에 출간에 대한 세세하고 친절한 안내 내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원고 다운로드하고, 교정하고, 출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많은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부크크’ 직원분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가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서투른 초보 작가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응원이라 여길 만큼 고마웠다. 문의할 때마다 귀찮아하거나 불친절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첫걸음부터 아마 포기했을 것이다.

아직도 브런치는

공유할 수 있는 50대 여성 ‘브런치’ 작가들이 많지 않고, 여행, IT, 창업, 그림 등 인기 분야의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sns에 능하지 않아 공유도 잘 못 하고, 출판사의 제의도 받은 적 없고, ‘브런치 북’ 수상 작가도 아니고 등등 ……. ‘브런치’ 가입자 70만 명 중에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는 일개 무명의 '브런치' 작가이지만 나는 그래도 ‘브런치’에 남아 있다.

아직은 글쓰기로 밥벌이 걱정할 필요 없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다른 이의 눈부신 발전을 질투 없이 응원할 수 있는 나이도 가지고 있고,
출산, 육아, 가사로 온 정신을 쏟아부은 영광의 바쁜 시절을 이미 보내고 있고,
나날이 쓰다 보면 언젠가는 실력이 늘겠지 라는 대기만성의 믿음도 가지고 있기에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브런치’를 두드린다.

'브런치'를 만난 지금이 내 인생의 '브런치 타임' 같기도 하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화사한 오전의 햇빛과 향기로움까지 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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