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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Nov 24. 2017

영원히 기억될 11월 24일

11월 24일
2014년 11월 24일 엄마가 돌아가셨다.
2017년 11월 24일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2014년 엄마의 4일 장을 치르고 허망하게 맞이한 다음날 아침이 내 생일이었다. 참 기가 막혔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 앞에 넋이 나간 듯 장례를 치르고 집에 오니 정말 엄마가 사라진 것이다. 엄마 방에는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그대로 멈춰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로지 사라진 것은 주인뿐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생일이라니……. 나를 낳아 길러주시고, 누구보다 나의 생일을 축복했을 엄마가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하던 대로 한다면 생일은 가장 기쁜 날이어야 했다. 평소에 생일 1주일 전부터 축하 분위기를 만들고, 반강제 선물 주간을 만들며 까부는 나에게 “언제 철이 들려고…….” 라며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보던 그 어여쁜 얼굴이 오늘 생일 아침에는 사라진 것이다. 꺼이꺼이 우는 나에게 초등생 막내딸이 점토로 만든 미역국과 쌀밥을 차려 주었다.

2014년 막내에게 받은 생일 밥상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음력과 음력, 기일과 생일은 돌고 돌더니 올해 딱 한날이 되어 오늘 11월 24일이 되어 만나 버렸다. 오래전 엄마와 나의 생과 사가 겹치는 날이 오늘이 되어 맞을 줄을 상상조차 한 적이 있었을까? 엄마는 아주 오래전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나를 낳아 생명을 주셨던 것처럼 나를 온전히 건강하게 만들어 놓으시고 먼 이승의 길을 떠나셨다.

     2017년 11월 24일

 둘째 딸과 남편이 있는 대전과 부여에 오늘 눈이 참 많이 왔다고 한다. 단톡 방에 눈 오는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올리며 실시간 중계를 하고 있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지금 버스에 올라 인천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인천에는 눈이 오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꾸물꾸물하고 날씨가 춥다. 내 생일이 가을쯤에 있나 했는데, 요즘에는 거의 겨울로 넘어가고 있다. 예전 “ 우리 막내 생일이 돌아오니 이제 김장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하시던 다정한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루 종일 가라앉고 말았다.

생일과 미역국

 평생 엄마는 미역국을 끓이고 쌀밥을 지어주셨다. 고기가 없어도 고소하고 향기롭기까지 하던 미역국을 늘 생일 아침에 차려 주셨다. 소고기를 듬뿍 넣어 푹 끓여 주시던 출산 후 먹었던 미역국은 여러 날 먹어도 절대 질리지도 않았다.

 출산 후 딸의 몸조리를 위해 좋은 고기를 사기 위한 수고로움만 알았지, 엄마 주머니에 고기 살 돈이 없어 힘들었음은 생각조차 못 했었다. 이미 교사가 되어 월급도 받고 있었고, 아이까지 낳은 나이었으면서도 어쩜 그리 철이 없었을까?

 엄마가 거동을 못 하고 누워 있게 되면서부터는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 주었다. 바쁜 아침 출근 시간이었지만 미역국으로 생일 아침을 축하해 주었다. 남편이 끓여 준 미역국 앞에 엄마와 같이 식탁에 앉아 따뜻하게 먹을 수 있어서 역시 행복한 생일 아침이었다.

 오늘 생일 아침은 남편도, 물론 엄마도 없다. 생일이 뭐 대수냐? 어젯밤 잠깐 미역국을 패스하려다 생각을 바꿔 먹었다. 국거리 양지를 조금 사고, 미역도 새로 샀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흰쌀밥과 미역국을 끓여 변함없이 생일을 축하하고 출근을 했다. 흐트러짐 없이 평안한 일상을 사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좋아할 것 같다. 큰 슬픔과 아픔을 겪더라도 굳건하게 일상을 지키는 모습을 사소한 일에서도 유지하고 싶었다. 야무지게 나를 잘 챙기고 있다고 보이고 싶었다.

오늘 하루

 오늘 하루 차분하게 잘 보냈다. 카톡에는 생일 알림 기능을 해지시켜 조용하였으나, 밴드 한 군데는 놓쳐버려 그만 생일이 공개되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축하 인사를 받았다. 남편과 둘째 딸은 저녁 7시쯤 도착한다고 알려온다. 아마 8시쯤에는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생일파티를 할 것이다.

 절대 잊을 수 없는 11월 24일이 흐르고 있다. 늘 이맘때면 마음이 가라앉고 한참 동안 슬프겠지만 이것도 서서히 옅어지리라 생각한다. 슬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리라. 슬픔을 건강하게 슬퍼하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나이 듦이라 믿으리라.

엄마의 출산 기념일 축하드립니다.

 우리 딸들은 생일 아침이면 안방 문을 열고 허리 굽혀 인사한다.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러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면 나는 호들갑스럽게

“오늘이 바로 나의 출산 기념일이구나!”

라며 선수를 치며 함께 웃곤 한다.

 하늘에 계신 엄마께 큰마음으로 외쳐 인사드린다.
“ 엄마, 저를 낳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키워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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