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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r 07. 2018

인천 북성동 헤이루체 카페와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와 시각장애인

  나의 선생님

 은사님을 뵙기 위해 인천 북성동을 찾은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반 아이들에게 '은사님'의 뜻을 물으니 고개를 갸웃거리다 한 아이가 '임금님'이냐고 묻는다.ㅎㅎ) 구월동에 사는 내가 자유공원을 끼고도는 북성동을 찾는 일도 드문 일이지만 이 나이에 고3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뵙는다는 것도 흔치만은 않은 일 중의 하나이다. 고1, 고3 두 번씩이나 담임선생님으로 만났을 만큼 선생님과는 인연이 깊다. 내가 같은 교직의 길을 걷고 있기도 하고 (게다가 과목도 같은 국어교사이다.) 워낙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컸던지라 졸업 후에도 늘 선생님을 마음속에 그릴 만큼 따랐던 것이 이런 인연을 만든 것 같다.

인천시 북성동

 정년퇴임을 하실 때쯤 다시 연락이 되어 뵙기 시작한 후 이번이 두 번째 선생님 댁 방문이다. 선생님 댁에서 천천히 산책하는 마음으로 자유공원을 가로질러 내려가면 요즘 들어 핫한 장소로 나날이 부각되고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이 나온다. 쌀쌀한 겨울 날씨이지만 평일 한낮의 여유로움이 온몸으로 느껴져 모처럼 호젓한 발걸음을 즐길 수 있었다. 선생님과 그 선생님의 제자 두 명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모습은 주변에서 청명하게 울리는 새소리들만큼이나 경쾌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갤러리 카페 '헤이루체'

 선생님께서 자주 가다는 단골집 ‘문차이나’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거슬러 집으로 향했다. 식당에 올 때와는 다른 쪽의 길들을 찾아 걸었는데, 이 길들에는 예쁘장하거나 멋스럽거나 또는 고풍스럽거나 세련되거나 등등 제 각기 개성을 뽐내는 카페들이 많았다. 어서 들어가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곳들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비탈길에 있는 카페 ‘헤이루체’도 그런 곳이었다. ‘갤러리 카페’라는 알림천에 특히 ‘시각장애인 사진전’이라는 안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헤이루체’에서 자주 사진전이 열린다는 것이다.

'헤이루체'1층에서
시각장애인 사진전

 들어가 보니 겉모습만큼이나 아기자기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안 쪽 전시실에서는 ‘시각장애인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고, 사진이나 엽서들을 판매하기도 했으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풍성한 생화들이 향기를 품어내었고, 볕이 좋은 날에는 옥상 야외 카페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인상 푸근하신 사진작가 주인님이 사진도 찍어 주셨다.

'헤이루체' 2층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짝이 되어 찍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작품들이 마음에 와닿을 때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배우 한지민과 박형식이 주인공이라는 것만 기억나는 영화였다. 이 때는 영화 제목도 잘 모르고, 그저 떠오르는 것은 한지민의 연기를 극찬하는 영화 소식 내용뿐이었다.

시각장애인 사진 작품들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

 이 날 이후 한참 지나서 본 그 영화 제목은 ‘두 개의 빛: 릴루미노’이었다. 허진호 감독의 작품으로 30여분 정도 상영되는 단편영화이다. 여기서도 시각장애인으로 나오는 두 남녀 주인공이 각각 비장애인과 짝을 이뤄 사진 찍기 동호회 활동을 한다. 짧은 만남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장애라는 틀 속에서 나와 웃음과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릴루미노 기능 설명관련 이미지(다음이미지)

 영화를 보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뿐만이 아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각장애인들 중에서 완전히 검게만 보이는 시각장애인(전맹)은 드물다.
♡ 대부분 빛과 어둠을 구분할 수 있는 저(低) 시력자들이다.
♡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시각 보조 기기 이름이 ‘릴루미노’이다.
 ♡‘릴루미노(Relúmĭno)’는 ‘빛을 되돌려 주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 이 영화는 삼성전자가 개발한 ‘저시력자를 위한 VR 기기’와 ‘릴루미노 앱’을 소개하기 위한 마케팅용 영화이다.
♡ 저시력자들이 가장 많이(92%) 즐기는 여가활동은 TV 시청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무조건 동정하며 도와주려는 할머니의 충격적 행동이 비장애인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 한지민은 눈동자의 초점으로도 연기가 가능한 배우이다.
눈동자로도 연기하는 한지민(다음이미지)

 짧은 영화이지만, 비록 광고용 영화이지만 충분히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전하는 메시지도 건강하다.

인수와 수영 그리고 사진동호회 사람들
'북성동'에 꽃피는 봄이 오면

 북성동 카페 이름 ‘헤이루체’의 뜻은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아마 ‘릴루미노’처럼 아름답고 감사한 뜻이 담겨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꽃피는 봄이 와 자유공원이 벚꽃으로 흩날리며 나의 마음을 흔들 때쯤 다시 방문하여 이번에는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고, 멀리 인천항구도 바라보며 또 다른 사진전이 열리고 있을 ‘헤이루체’를 만나야겠다.

 물론 나의 선생님도 다시 찾아 뵐 것이다.

 지난겨울 한창 마음이 울적하고 우울할 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시기라도 한 것처럼 박노해 시 몇 편을 건네 준 선생님 덕분에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다.

 꽃피는 봄에 우리 선생님께서는 또 어떤 울림과 가르침을 나에게 주실까 행복한 웃음을 지어본다.

선생님 댁 '곰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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