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다.
'죽음'의 이별
제자의 어머니가 최근이 아니라 이미 다섯 살 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만났을 열여섯 살에 이미 그 슬픔을……. 많이 미안하고 많이 아팠다.
추모
차례와 제사
나의 '차례와 제사'
♡ 우선 좋다는 남원 물푸레 제기 세트를 거하게 장만했다.
♡ 어동육서, 홍동백서 등 인터넷을 보고 제사상 차리기 지식을 총동원했다.
♡ 차려보니 부족한 느낌이 들어 한번은 절에서 모시기도 했다.
♡ 상에서 그대로 냉동실로 갔다가 버려지는 음식을 보고 회의감도 들었다.
♡ 제사에 관한 안동 스타일과 우리(친정) 집 스타일 차이로 남편과 소란스럽기도 했다.
♡ 며느리로서 의무가 아닌 딸의 순수한 마음으로도 돌아가신 후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망설이기도 했다.
♡ 과메기, 갈비, 킹크랩 등 평소 좋아하시던 음식을 올리기도 했다.
♡ 퇴근 후 열심히 정성껏 차린 것에 비해 초라한 상을 보고 속상하기도 했다.
♡ 매번 다음 상은 잘 차릴 것을 약속드렸지만 여전히 지키지 못해 죄스럽기도 했다.
‘기억하지 않으면 잊힌다.’
‘기억해줘- Remember, me!'
온전히 납득되지 않았던 내 안의 ‘차례와 제사’에 대한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해 준 것이다, 놀랍게도 '멕시코'가 배경인 '디즈니 픽사'의 영화가 나에게 나름의 해답을 줄 줄이야!
가족은 원래 그런 것!
‘가족은 원래 그런 거잖아요? 응원해 주는 거!’
죽은 자의 날
제단에 사진을 올리고, 죽은 자를 추모할 수 있는 물건을 올려 금잔화를 밟고 오는 조상님들을 기다리는 ‘미구엘’ 가족들의 사랑은 아름다웠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결국 모두가 기억하지 못할 때, 아무도 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지 못할 때 비로소 소멸한다는 설정이 슬프면서도 아프게 다가왔다.
사랑과 추억을 동반해야
죽은 자를 살리는 기억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승세계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이승에서의 기억은 사랑과 추억을 동반해야만 한다. 그래서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의 단순한 언급은 기억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설 /추석’ 때마다 등장하는 ‘명절증후군’이나 ‘시댁 기피증’이 되바라지거나 예의 없는 며느리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뵌 적도 없는 시댁 조상님 제사에 거저 참여하는 것만도 어색할 텐데, 온갖 차례 준비 가사노동에 종일토록 시달리고 정작으로 차례의식에서는 배제되는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일에 계속 노출이 된다면 당연히 나타나는 결과가 아닐까?
기억해줘
우리는 함께 주고받은 사랑의 대가로 서로를 기억하고, 기억의 대가로 서로에게 잊히지 않는 의미로 자리 잡는다. ‘헥터’와 ‘마마 코코’가 그랬듯이…….
아름다운 선물
Remember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