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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Apr 10. 2018

'스무 살'이 되어 속리산에 다녀오다

세조길 따라 속리산 법주사 소풍

스물, 스무 살

 우리 인생의 ‘스무 살’은 어떤 의미일까?

 가장 순수하거나, 가장 열정적이거나, 가장 아프거나, 가장 어지럽거나 때로는 가장 달콤하지 않았을까?

 스물이 되기 전, 스물이 지나 스물서넛이 되었을 적……. 또는 ‘스물’을 잊어버렸다가 이렇게 다시 떠올리는 무수한 때를 지나 나는 오늘 쉰이 넘어 ‘스무 살’을 만났다.

 대학 신입생, 스무 살에 만난 친구 3명과 속리산을 다녀왔다. 졸업 후 꾸준히 만난 것도 아니고, 우연히 연락이 닿은 이후에도 뜸하기를 반복하다 몇 년 전부터 1년에 두서너 번씩 만나고 있어서 사실 완전 허물없이 편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스무 살’ 얼굴이 되어서 만났다.

1987

  87년 1학년 때 우린 참 잘 어울렸다. 친구 한 명이 ‘We endless love six’라는 문구로 우리를 ‘WELS’라 콩글리쉬로 칭해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의 우정을 자랑스러워했다. 여자 세 명, 남자 세 명 아이들이 어울려 참 재미지게 잘도 놀았다. 같이 어울려 다니던 신촌 거리, 종로 바닥, 명동성당, 홍대입구, 학교 주변의 그 무수한 술집들과 커피숍들, 그리고 곳곳의 의미 있는 장소들 – 계단 집, 홍콩반점, 홍익 분식, 노랑 송아지 커피숍 ‘정다운’, 맥주집 ‘맥캔’까지…….

 무수한 일화들과 얽히고설키는 우정과 애정의 감정 교류는 때론 우리를 아프게 했지만 우리를 제대로 성숙시켜 나갔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이 군대 갈 즈음 기억부터는 가물거린다. 그들이 제대해서 후배들을 사귀며 연애와 결혼을 했듯이, 우리 여자 아이들도 선배들을 만나 연애와 결혼을 하며 점점 시간들이 흐른 것 같다.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때마다 같이 하지 못 했지만, 우리는 긴 시간들을 뛰어넘어 연락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오늘 남자 2명, 여자 2명(해외에 있는 2명 빼고)이 청주에서 만난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3월 이번 속리산 모임을 계획할 때만 해도 여유로움으로 몸과 마음을 준비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연속된 모임이 나름 나에게는 꼬인 나들이로 만들어 버렸다.

 금요일 늦은 귀가로 토요일 아침 힘들게 일어난 나는 얇은 옷을 대충 입고 몇 년째 꺼내지도 않은 등산복을 들고 집을 나섰다. 남편의 친절한 배웅으로 기분 좋게 출발했으나 속리산에서의 비주얼은 영 엉망이었다. 찍히는 사진마다 어찌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중년의 여자가 웃고 있는지……. 친구들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한 파마머리는 속리산 바람에 날려 마치 갈기 날리 듯 춤을 추고, 속에 입은 패딩 조끼는 드럼통처럼 부풀어 올라 불편하고, 차가운 바람에 민감해진 피부는 목과 귀가 상기되며 가렵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신고 나온 신발은 그날따라 발가락 여린 부분을 물어뜯어 스타킹 사이로 핏빛까지 맺히게 했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어머니 말씀이 있다. ‘ 시집가는 날 등창 생긴다고, 벼르고 벼른 일이, 세상일이 내 맘대로, 내 뜻대로 다 되지는 않는단다.’

친구들

 그럼에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친구들 덕분에 웃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주에 살아 이번 여행의 가이드 역할을 기꺼이 맡은, 나와 이름도 같은 친구는 어찌나 우리들을 살뜰히 챙겨주고 배려하고 사랑해 주는지 고마울 뿐이고,
바람 불면 바람맞을까 티도 내지 않고 우리를 챙겨주는 유쾌한 친구는 그 시절 그랬듯이 내내 웃게 만들어 줘 감사할 뿐이고,
무거운 카메라 장비까지 챙겨 와 우리를 찍어주려 애쓰는 친구는 세련되게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줘 역시 고마울 뿐이었다.
속리산 '세조길'

  그렇게 우리는 문장대가 멀리 보이는 속리산의 ‘세조길’을 가볍게 걷기로 했다. 물론 ‘맛집’에서 친구가 사준 매운탕을 배불리 먹은 후라 발걸음은 더 든든했다. 조금은 삭막한 4월 초인 지금도 여린 잎 보며, 계곡 물소리 들으며 걸을 만한데, 봄꽃이 잔뜩 필 때나, 녹음이 우거지거나, 단풍이 따가울 정도로 아름다운 계절에는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이곳은 2016년 9월에 처음 개통된 길이란다.
♡ 세조가 자주 왕래하던 속리산 길이라 하여 ‘세조길’이라 이름 지었다.
♡ ‘법주사’로부터 ‘세심정’까지 약 2,4Km 구간으로 세조가 직접 걸어 다녔다는 속리산 관광로이다.
♡ 개통 두 달 만에 72억을 벌 정도로 가장 성공적인 ‘명품길’ 사업으로 꼽히는 길이란다.

 노년의 세조가 이 길을 어떤 마음으로 왕래했을지, 시달리던 피부병의 원인을 어디서 찾고 있었을지, 진정 권력을 얻기 위해 서슴지 않았던 행동들을 후회했을지,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자신을 위한 참회의 길이라 여겼을지를 생각하며 ‘눈썹바위’를 지나고, 거북바위가 있는 ‘수정봉’을 지나고, ‘목욕소’를 지나 ‘세심정’에 도착했다. 중간에 반짝이는 물결이 가득한 ‘법주사’ 상수원지 위에 설치된 테크 따라 걷는 길 또한 바람이 몹시 불었지만 참 아름다웠다.

속리산 '법주사'

 ‘문장대’로 올라가는 길, ‘세심정’에서 돌아 다시 ‘세조길’을 되짚어 내려와 ‘법주사’에 당도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탑이라는 ‘팔상전’이 푸근하게 서 있었다.

 오층탑 처마마다 매달린 풍경이 푸른 하늘 속에 안기어 청명한 소리를 그리는 듯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 ‘화엄사’의 ‘각황전’과 함께 ‘법주사’ 하면 떠오르는 ‘팔상전’이 ‘법주사’의 마당을 차지하고 있어 든든했다.

‘팔상전’(국보 제55호) 내부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폭으로 표현한 ‘팔상도’가 있다는데, 멀리서만 보고 그대로 지나쳐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을 보며 돌아 나왔다.

 친구들이 각자 사진을 찍을 동안 나는 대웅보전을 다녀왔다.

 지금 찾아보니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 ‘소조 비로자나 삼불좌상’으로 보물 불상(보물 제1360호)이었다.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은 아미타불, 오른쪽은 석가불이었다. 법당에서 느껴지던 웅장한 위엄과 그윽한 눈빛들이 지금도 되살아난다.

대웅전 밖으로 나와 맞이한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 의좌상’(보물 제216호) 또한 신비로움과 정겨움을 간직한 부처님의 미소를 담고 있었다.
안타까워라! 청동 미륵불상

 다만 법주사의 품위와 매우 동떨어진 엄청난 크기의 금불상이 눈에 띄었는데 마음이 불편하고 거슬릴 정도였다. 감히 ‘돈칠’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내 눈에도 희한한 저 불상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지 친구들과 궁금해하며 법주사를 나왔다.

 내가 감히 함부로 본 것은 법주사의 ‘청동 미륵불’이었다. 

♡ 신라 혜공왕 때 청동으로 만들어진 미륵불이었다.
♡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만드느라 이 불상을 재료로 썼다고 한다.
♡ 1960년대 복원이 되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시멘트로 만들었단다.
♡ 1980년대 시멘트 구조물을 해체하고 다시 청동 미륵불상을 세웠다.
♡ 2000년대 들어서 불상 표면에 녹과 부식이 생기자 법주사는 80Kg의 순금을 불상에 입히는 ‘개금불사’ 작업을 통하여 불상을 지키려 했다.
♡ 그러나 부실 공법으로 광채가 사라지고 다시 녹이 슬자 2015년에 7억 원의 성금을 모아 다시 도색작업을 하여 현재의 불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인조 금 ‘골드 펄’로 도색을 했다고 하는데 어찌 저런 값싼 싸구려 페인트 같은 색칠이 나왔을까? 연유를 찾아 읽어보니 보물을 잃어버린 안타까움이 더했다.

즐거운 걸음걸음

 법주사 경내의 아름다운 흙담 앞에서도, 물결 잔잔하게 펼쳐지는 저수지 위에서도, 폭신폭신 부드러운 흙길 위에서도 아름다운 장소만 나오면 친구는 우리를 담으려 셔터를 눌렀다.

 서로 마주 보며 웃는 정겨움이, 손사래 치며 호들갑 떠는 깔깔거림이 그 자체로 맑게 울리는 듯했다.

 주차장 입구에 늘어진 어느 식당에 들어가 도토리묵과 동동주를 살짝 먹기도 했으나 가격과 맛이 별로여서 친구의 친구가 운영한다는 맛난 밥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가 친구를 찍고, 그 친구를 다른 친구가 또 찍고...그것을 또 찍고 ㅎㅎ
'수풍정' 밥집

  이름만으로도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을 것 같은 ‘수풍정’이라는 식당이었는데, 음식에서도 그 깔끔함과 담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석갈비’를 알맞게 시켜 맛나게 먹었다. 성실한 주인장 부부의 모습이나, 학기 중인데도 집에 내려와 부모님 일손을 돕는 대학생 딸의 모습이나 훈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아는 집이라 해서 갔는데 ‘블로그’에서는 이미 유명한 청주 맛집이었다. 

 ‘스무 살’ 친구들은 어느새 한 집안의 어버이가 되어, 2018년 민주시민의 자리에서, 직장의 주요 자리에서 우리 나이가 해야 할 일들과 지켜야 할 미덕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허물없이, 격의 없이, 오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와 대화들이 소중했다.

수풍정 음식 -by 정세진 작가


소풍을 마치고

 아름다운 토요일, 이제 오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이제 각자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속리산의 속리(俗離)처럼 오늘 잠시 우리들은 속세를 떠나 먼 순수의 시절, 스무 살로 돌아갔다 온 것일까?

 인천으로, 서울로, 용인으로 각자의 정체성이 가득한 그곳으로 다시 가야 하지만 마음은 이미 가볍다. 우리는 각자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청주를 떠나왔다.

 인천에서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가까운 그곳, 청주에 친구가 오랜동안 살고 있었다. ‘스무 살’ 때 그랬던 것처럼 ‘쉰’에 다시 만나 우정을 이어보려 한다. 가슴속 희미한 안개 거두고 밝은 햇살 받아들이며 좋은 관계 이어보려 한다. 

그래서 서로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길 기대하리라.
by 정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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