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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Sep 01. 2018

엘리베이터……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출근시간 엘리베이터 타기

 아침 출근시간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언제나 마음이 조급하다. 어서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여지없이 매일 반복된다. 좀 더 서두르면 나을 텐데……. 평생 분주함으로 아침을 매번 시작하는 내 천성을 돌아보니 그냥 이렇게 살아야하나 보다. 가방을 고쳐 매고, 샌들이나 부츠의 끈이나 지퍼를 마저 채우고 올리며 엘리베이터 위치를 확인하니 더 조급해진다.

 23층으로 된 우리 아파트에는 한 층에 4세대씩 살고 있다. 90여 세대를 위한 엘리베이터 두 대가 쉴 사이 없이 움직이지만 늘 그렇듯이 시간적 여유가 없는 날은 유독 더디게 오는 것 같다. (요즘 새 아파트는 현관문을 나서기 전 집안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미리 누를 수도 있다는데…….) 아침마다 바쁜 나는 버튼 누르기를 무슨 경주 초재기 하듯 늘 다급하고 간절하게 수행한다. 나의 부름에 곧 바로 달려오는 엘리베이터가 있을 때는 무슨 행운이라도 얻은 양 기쁘게 잡아타지만 그런 일이 아침 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11층에 사는 내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13이나 12 숫자에 불을 단 채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게 될 때는 거저 시간을 번 양 최고의 순간이 되지만 대부분 이 엘리베이터들은, 보자마자 강렬하게 버튼을 눌렀음에도 야속하고 냉정하게 11층을 패스해 버리기 일쑤이다. 동동거리는 마음이 최고조에 달할 때 가령 한 대는 23층 언저리에, 또 다른 한 대는 지하 주차장에 있을 때이다. 양쪽을 가늠하며 빠른 쪽을 선택하여 몇 걸음이나마 자리를 옮겨보지만 그것도 매번 헛다리짚을 때가 많다.  안타까운 것은 멀쩡히 올라오던 엘리베이터가 딱 10층에 멈춰 선 후 다시 내려가는 것이다. 바로 한 층만 더 올라와서 나를 태우고 내려가면 될 텐데…….

 “멍청한 기계 같으니 라고!”
 투덜거려보지만 나에게 바보인 그 엘리베이터는 분명 10층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고맙고 똑똑한 기계였을 테니 소용없는 원망일 뿐이다.

어느 쪽이 빠를까요? 늘 선택하고 기다리는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앞에서 문득 인생을

 두 대가 동시에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을 때는 경주하는 심정으로 한 층 한 층 내려오는 숫자에 집중한다. 보다 빨리 내려오는 것을 탔으나 매 층마다 서는 바람에 더 늦게 목적지에 도착할 때도 있고, 더 빨리 내려오려니 예상했던 것이 추월당하기도 하고, 빠르다 생각해 몇 걸음 옮겨 탄 그것이 결국은 늦는 경우도 많다. 물론 앞에 것을 놓치고 뒤에 탄 엘리베이터가 앞선 엘리베이터 보다 나를 빨리 내려놓은 경우도 부지기수다.

 “빠른 게 빠른 게 아니고, 느린 게 느린 게 아니다.”

 빨리 와 고맙다며 탄 것이 음식물 쓰레기 악취로 고약을 떨기도 하고, 간발의 차이로 놓치고 탄 다음 엘리베이터가 모처럼 반가운 이웃과의 만남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혼자의 공간이려니 편하게 탔는데 아직 인사나누지 못 한 어색한 앞집 아저씨를 불쑥 등장시키기도 한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다.”

 거대한 자전거 몸집 핸들에 옆구리가 휘어지기도 하고, 땀 냄새에 잠시 쉬었던 호흡을  배달치킨이나 피자 냄새로 살아난 시장기에 깊은 숨쉬기로 바꾸기도 한다. 세상에 없을 순진한 눈망울의 유모차 아기들에게 홀딱 빠지기도 하고, 초등생이던 아이가 어느새 장병이 되어 휴가 나오는 순간의 신기함을 그의 뒤통수에서 경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상에 장담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게 인생이다.”
줄서기 '라인'

 ‘~라인’이란 말은 TV에 나오는 유명 개그맨들 입을 통해서나 들어 본 인생을 살아 왔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줄 잘 서기’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으나 ‘줄 잘 서봐야’ 그닥 별 볼일 없음도 알게 된 나이에 이르렀다.

‘엘리베이터 줄 서기’나 ‘인생 줄 서기’나 내려가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중간에 어디에 서게 될지, 누구를 맞이하게 될지 모르는 것도, 뜻한 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까지 비슷하다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문득 ‘인생’을 떠올리는 것이 전혀 뜬금없는 연결고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빨리 타려는 나에게  다독이며 말한다. 늘 찰나에 끝나고 말,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느새 잊어버릴 다짐일지라도 “놓쳐서 기다리는 시간의 의미를, 내려가면서 가져야 할 생각의 중요함을 잊지 말라고…….”

‘ 빨리 타고 빨리 가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많은 인생임을,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운명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지혜임을, 버둥거리며 벗어나고자 할 때 오히려 행복과 멀어질 수도 있음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서기를 하며 끄덕여 본다.
 이미 떠나 간 것에 연연해하지 않기를
 내 발이 디디고 있는 공간에 충실하기를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심하게 낙담하지 않기를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얻거나 잃을 것이 있음을 알아채며 욕심내지 않기를 다시 되뇌어 본다.

 17층에서 붙박이로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저 엘리베이터도 지그시 기다리는 여유도 이제는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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