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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Aug 11. 2019

여행과 커피……. 그리고 강릉

 갑자기 출발!

 언제던가! MBTI 성격 유형 연수에서 알아 버렸다. 난 절대로 여행을 불쑥 떠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생활 속 간단한 예를 들어 성격 유형 판단 기준들을 쉽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강사님의 이야기에 몰두할수록 나는 계획적이고 원칙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후에도 쭉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비슷한 유형으로 살아왔으니!

그런데 갑자기 강원도라니! 인천에서 오전 내내 빌빌거렸는데 갑자기 강릉에 와 버렸다. 머물 곳도, 여행할 곳도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무계획적으로 떠난 것이다. 그것도 쾌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며!

 물론 갑작스러운 여행을 주도한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거부하던 나도 꽤 즐기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의외의 나를 발견하는 새로움이었다.

안목해변
찌는 듯 무더위 속에서도 ‘안목항’은 낭만적이었다. 아무렇게나 입은 나 같은 여행객에게도 세련된 배경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커피의 거리’라니……. 중년의 마음도 설레게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본 바다이다. 운좋게 이곳에 바로 주차했다.
모처럼 여름바다를 보니 참 좋았다.

바다에 들어가 수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다들 창 넓은 커피숍에서 이 무더위 속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나 보다. 이틀 내내 둘러본 강릉 주변 해수욕장에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모두 해외로 나간 건지, 다른 지역으로 떠났는지 유명가수들의 밤 공연이 펼쳐 친 경포대도 마찬가지였다.

예전 강원도의 힘이 빛을 잃었나 싶게 휴가철임에도 예전처럼 사람들로 바글거리지 않아 어쩐지 짠한 마음마저 들었다.
길구 봉구 등 유명가수들이 공연을 펼친 경포대
안목항

 안목해변에 들어선 수많은 커피숍들은 각각의 개성적 분위기로 ‘커피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 커피숍 브랜드들도 많았지만 ‘안목해변’이어서 색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멀리 등대를 끼고 있는 방파제가 나왔다. 방파제 넘어 차들로 빼곡한 대형 주차장을 보며, 커피숍에 들른 차들치고는 너무나 많다 싶어 의아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곳이 울릉도ㆍ독도를 갈 수 있는 강릉 항구였다.

이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울릉도행 배를 탔을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여행을 기원하며 그 어렵다는 독도 접안의 행운도 함께 하기를 응원했다.
항구에서 바라 본 해변 커피거리
안목항 방파제
강릉과 커피

‘강릉 커피 축제’가 따로 있을 만큼 이제 강릉은 커피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쌀보다 커피를 더 많이 소비한다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강릉은 핫한 여행지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이 방문 대열에 늦게 합류한 나는 커피로 인해 한 번은 실망하고, 한 번은 감탄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강릉 테라로사 커피 공장 본점 방문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무덤덤한 바리스타들의 응대와 어설픈 알바생들의 안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울림과 복잡함으로 한데 뒤섞여 시끌벅적한 공간만을 연출해 낼 뿐이었다.

예술의 전당 분점으로 만난 ‘테라로사’를 보고 본점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커피와 함께 먹을 고소한 빵이 이미 다 팔려 아쉬웠기 때문일까? 아니다. 오랜 줄 서기도 잘 참아냈다. 또 부저가 울려 커피 나올 때까지도 얌전히 잘 기다렸다. 그러다 햇빛 쨍쨍한 날이었음에도 흥건하게 물이 고여 질척거리는 화장실 바닥을 보고는 미련 없이 이 공장을 나와 버렸다.

 나에게는 커피 향도, 여유도, 햇살도, 손님의 대한 관심도 없는 그저 한철 장사만을 노리는 번잡한 곳일 뿐이었다.

엄청 높고 넓고 컸다.
능소화가 공장벽을 정겹게 만들었다.
테라로사 기념품점
야외 커피 테이블! 그러나 이날은 폭염이었다.

 의외의 커피 향은 우연한 장소에서 누렸다. 탁 트인 정동진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는 최고였다. 정동진에서 가까운 ‘하슬라’ 미술관 식당에서 맛본 커피였는데 크레마가 두툼하게 띠를 두른 모습에 짙은 커피 향까지…….  ‘하슬라 산야초 커피’로 특허를 받았다 한다. 한참을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아침에 먹은 얼큰한 곰치 국이 커피를 더 당기게 했을까? 식당 내부가 온통 예술적 볼거리로 가득 찬 미술관이었기 때문일까? 세련되고 정중한 바리스타 때문이었을까?

 커피를 마시러 강릉을 간다면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었다.

하슬라 미술관에서 바라 본 정동진 바다
미술관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한 이 식당은 피자도 맛나 보였다.
강릉, 해변, 커피

 그날 나만의 상황과 경험이 빚어낸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로 또 때때로 언제든 바뀔만한 느낌이겠으나 이날은 그랬다. 세상에 고정 불변한 것은 거의 없을 테니까……. 고민하거나 걱정할  필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세상 싫다던 것에 꽂혀 마니아가 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일 테니까 말이다.

 30대에는 커피를 단 한 잔도 안 마셨다. 40대는 식후 달달한 믹스 커피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려 했다. 어느 해 달달한 다방커피를 찾아 지인들과 헤매던 인사동 거리 속의 나는 40대 중반이었다. 이제는 매일 드립 커피를 마신다.

 커피의 오일이 생각난다 싶으면 사은품으로 받은 커피 머신을 작동시키기도 한다. 분쇄기에 커피콩을 넣는 횟수만큼 마시는 커피도 진해지고 뜨거워지고 있다. 다양한 산지의 커피콩 종류나 커피 추출 방법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고 미숙한 수준이지만 나날이 커피를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이러다 커피를 딱 끊을 수도 있고……. 어차피 인생은 모르는 거 투성이니까!


 강릉, 해변, 커피……. 역시 떠나길 잘했다.

안목항은 강릉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할리스 커피점은 여기였나요? 작가님? ㅎㅎ
유명인들의 사인이 빼곡하다.
언제 또 무슨 거리로 변화할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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