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락 한방현숙 May 15. 2022

(나와) 친한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잘 지낸다면...

 요즘 대화에서 'MBTI'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어느 사람의 성격과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말할 때, MBTI를 거론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깨달음의 감탄사를 연발하는 모습이 심리검사 결과를 엄청 신임하는 모양이다. 우리 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역시 엄마는 '○○○○'가 맞다며 저희들끼리 맞장구를 친다.

 당연히 결과가 맞지 않을까? 심리검사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자료들을 내가 입력한 것이니... 내가 파악한 내 성격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내 성향과 성격 파악에 골몰하고 있으니... 참 삶이란 복잡하고, 관계란 그중 제일 어렵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얻고, 인정 욕구가 가득 채워질 때 행복을 느끼고, 공정함과 도덕성을 가장 큰 가치로 삼는 나는 누구와 친할 수 있을까? 단호하고 까칠하고 원칙주의자인 내 안에도 수많은 망설임과 부드러움과 흔들림이 시시때때로 혼재되어 머리를 든다.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맺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면 적극적으로 다가가 친구나 또는 지인이 되었고, 아니다 싶으면 단칼에 그 관계를 끊어내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물론 시간이 흘러 그들과 어울리지 못함을 후회하며 홀로 외로움에 빠져 참담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는 할지언정 헛갈리지는 않았다.

 요즘 머리와 가슴이 어지럽다. 이 나이에 큰 마음으로 품어내지도, 용기 내어 진심을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는 소심함이 딱할 뿐이다.

 왜 품어내지 못할까? 섭섭하고 속상하기 때문이다. 왜 물어보지 못할까?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고 가는 감정이 동일하고, 기대는 마음이 쌍방통행이면 찰떡궁합일 텐데... 그러지 못하면서 아슬하게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관계가 참 버겁다. 글을 쓰는 내내 '점점 멀어지나 봐, 넌 떠나가나 봐~~ 라는 가사가 되뇌어진다.

 아닌 것 같으면서 아슬하게 이어지는 관계가 힘들다. 나는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기에, 다른 무엇인가를 품고 있으면 불편한 사람이기에... 좋게 말하면 순수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직선적인 성격이기에 머리가 어지럽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고, 단점 없는 사람이 없을 텐데, 나는 오늘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나 또한 단점 투성이, 실수투성이 인생이면서, 타인의 단점과 실수에 왜 그리 섭섭해하는지, 왜 그리 상처를 입는지 도통 알면서도 모를 일이다.(아마도 모른 척하는 거겠지)

 나와 친한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고 있다.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불호는 하늘을 찌를 정도다.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가까이 마주하는 것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그러진 관계 끝에 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자리를 뜨고, 그 사람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그 사람의 예상 행동에 고개를 젓는다.

♡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함께 욕해 줄 수 있는 사람?
♡ 나와 적대적인 사람과 역시 어울리지 못하는(않는) 사람?
♡ 나의 스트레스에 공감해 주는 사람?
♡ 나의 어려움에 불만을 보태 그를 더 비판해 주는 사람?

 

 나와 친한 사람이 이렇게 해 주길 바랐다. 나의 친구가 이런 사람이길 원했다. 그러나 혼자만의 마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섭섭함이 커지고 불편함이 생겼다. 결국 마음이 굳어지고 차가워지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지속과 유지가 어려워 틈만 나면 애정 하는 마음이 불쑥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실망하고 또 힘들어하고... 정리를 해야만 했다. 나의 평정을 위해 연결고리를 (끊고 싶지 않지만) 끊을 용기를 내야 했다. 여러 날의 봄날이 달콤함을 주더라도 그중 하루의 폭풍이 나를 휘몰아친다면 기꺼이 봄날을 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하루가 나를 갉아먹을 정도라면 손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정심을 지닐 수 있도록!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상대 행동에 휘말리지 않도록!
법륜 스님의 말씀 - 다음 이미지

 여러 날이 흘렀다. 쉽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먹으니 서서히 평정이 찾아오고 있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의 차이가 없을지라도 내 마음이 정리되니 전처럼 휘말리지 않고 내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 감정 밖에서 멀찍이 떨어져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걸음을 옮기고 있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말하던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는 말이 귀에 꽂힌다. 사자성어 類類相從(유유상종)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말이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 센스 있는 표현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나를 싫어하고 내가 힘들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는 그의 손을 당분간 놓기로 했다. 내가 힘들 때 같이 아파하고, 같은 편이 되는 것이 친구의 자세고 예의라면 나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음은 쓰리나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다시 부를 수밖에... 그래서 나도 점점...

'점점 멀어지나 봐, 넌 떠나가나 봐~"



매거진의 이전글 스무 살, 사진에도 기억에도 벚꽃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