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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Sep 08. 2022

현재(지금)를 잘 살아낼 수밖에!

Carpe diem! Seize the day!

 비가 억수로 내리는 저녁시간, 남편과 삼겹살 집에 앉아 있었다. 태풍으로 인한 폭우가 염려되는 마음 가득이지만, 폭우는 남의 일인 것처럼 식당 안은 상관없이 흥성거렸다. 곧 저 빗속으로 걸어가 온몸을 적시고 비바람에 휘청거릴지라도 지금은 고소한 삼겹살 냄새에 취한 채 밖의 상황을 감상이라도 하듯 가끔 바라볼 뿐이다.

 오늘 종일 빗속을 헤매 다녔다.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또 다른 병원을 들르고,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말기암이라는 충격적인 소식,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들으며 하루가 고단했으나 난 지금 삼겹살을 먹고 있다.

 슬픈 마음으로 조문을 하고, 안타까움으로 병문안을 하였으나 결국 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지만 나는 배고픔을 느끼고, 누군가는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나는 내 조금만 상처가 더 중한 것이다.

 

 내리는 비만큼이나 축축한 기분이 든다. 인생의 생로병사 중 늙고, 아프고, 죽는 일이 더 많이 자주 있을 나이에 이르니 무상함(人生無常)이 수시로 찾아든다. 게다가 아무리 슬프고 두려운 일이라도 끝내는 나 혼자 안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자 몹시 외롭고 서글프고 우울했다. 부모, 형제, 자식과 친구와 그 두려움을 나누고자 몸부림치지만 결국 마지막 가는 길에는 나 혼자 뿐인 걸, 처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자꾸 잊어버리고 엉뚱한 말씀을 하시며, 약 하나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는 시부모님이 나를 아프게 한다. 가장 지적이고 야무졌던 외삼촌이 파킨슨병으로 나뭇가지처럼 말라 가는 모습이 나를 무너지게 한다. 자꾸 들려오는 친구들의 부모님 부고장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거동을 못하고, 정신을 놓으시고 버티고 버티다 요양병원으로,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주변 어른들이 한숨을 쉬게 한다.

 

 100세 인생이라 흔히 말하는데, 80세도 못 채우고 병들어 고생하는 삶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 모습 그대로 곧 나의 삶이 될 두려움에 좌절하고 허무함에 또 쓰러진다. 오랜 병마와 싸우다 돌아가진 엄마를 간병하며 지난한 노인의 삶에 이골이 났다 여겼건만 여전히 우울하고 충격적이다.

 바삭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집으며 남편을 쳐다보니...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쌓여있다. 흰 귀밑머리, 엉성한 머리숱, 여유로운 턱선과 불어난 몸집까지, 우리에게 늙음이, 노쇠함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 남편을 거울 삼아 나의 늙음과 민첩하지 못함과 기능 저하를 확인하니 삼겹살이 퍽퍽해져 목이 멘다.

 60년대, 386세대로 30년대 생 부모 밑에서 자랐다. 헌신과 고생으로 자식을 키운 부모님은 어느덧 80대가 되었고 부모님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자식들의 발전과 성장에 보람을 느끼는 부모 자식 간으로 살아왔다. 나라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함께 성장해 50대가 된 자식들은 부모세대보다 안정된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서 90년대 생 자식들을 낳아 길렀다. 그들은 자라 MZ세대로 20~30대 청춘이 되었다.

 경제적 성장, 대학 졸업 후 취업, 꿈의 실현 등이 결코 시대의 흐름과 비례하지 않은 90년대 생 자식들은 생활이, 삶이 어렵다며 결혼도, 출산도 미룬다고 한다. 제 몸 하나 홀로서기가 힘들다며 웬만한 생활의 가지를 쳐내며 혼자 생활하려고 한다. 예전의 가치와 전형적인 삶의 틀을 고집하는 30~40년대 생 부모들은 힘없는 노약자가 되어 부양의 책임을 우리에게 묻는다. 고루한 부모세대와 앞서 나가는 MZ 자식 세대 사이에 꽉 끼어있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의 나의 늙음과 병약함을 절대 자식(물론 누구와도)과 함께 할 수 없으리라는 걱정이 우울함에 보태진다.

 우산까지 뒤집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잠시 멈췄다. 언제그랬냐듯 비도 보실보실 순하게 내린다. 곧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태풍이 위력을 과시하겠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쉬어가니 숨통이 트인다.

 좋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따뜻한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며 빗속을 걸어갈 용기를 얻는다.

  

 나처럼, 누군가도 다가올 나(남)의 고통에 어쩔 수 없을 거라는 우려를 곱씹어 애써 지워 버리자. 그것은 불행이 아니고 오히려 인생의 참모습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자.

 아직 늙지 않았다. 걸어 다니고, 감상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으니 아직 감사할 뿐이다.  Carpe diem! Seize the day! 를 읊조리지만 말고 진실로 받아들이고 마음먹자. 소중한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자고, 인간답게 예쁘게 살아보자고!

 외삼촌께, 시부모님께 전화 한 번 더, 따스한 마음 더 보태보자고 생각한다.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는 생로병사의 길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진실을 다해 보자며 오늘의 우울을 날려본다.

 다시 폭우가 또 내리더라도 갈 길을 가야 하고, 비가 멈추는 날이 있을 테니, 쨍쨍한 삶을 감사한 마음으로 또 살아야겠지! 그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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