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이 나올 정도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봄이 다시 오지 않는다면, 아니 이렇게 봄꽃만 언제나 떨어진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나를 치유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목련이 어김없이 우아한 자태로 진주처럼 다가오더니 앙증맞은 벚꽃의 시간을 내주었다. 송이송이 귀여운 것들의 위력은 가히 대단하여 우리의 마음을 녹이고, 우리의 하늘을 분홍빛으로 물들여놓았다. 죽어있던 거리를 살리고, 얼어있던 공원으로 어른과 아이와 강아지들을 불러 모았다. 따스하고 화사하고 푸근하고 나른한 그리고 아름다운...
벚나무, 벚꽃!
탄성을 자아내는 봄의 꽃들, 그리고 벚꽃! 매화도, 산수유도, 목련조차도 벚꽃의 향연에 손님일 뿐이다. 올해는 수년간의경험(시행착오)을 잊지 않고 최고의 조건( 평일, 운동화, 도보, 가족 등)을 살려 벚꽃을 맞이하러 간다. 인천대공원 벚꽃 길에 갇혀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2시간 이상 걸린 기억을 지우고, 불편한 구두의 아픔도, 꽃구경보다 사람 구경에 치인 시간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길을 나섰다.
집에서 가까운 중앙공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하늘을 수놓는다. 아파트 안 도로가에도 소담스러운 벚꽃들이 누구나에게나 손짓을 한다.따스한 햇살, 포근한 바람 속에서 벚꽃의 향연에 푹 빠져본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부드러운 마음, 겨울의 날쌘 바람을 견딘 보상인 듯 너무나 달콤하다.
벚꽃이 거의 사라진 지금, 늦은 벚꽃이 피었다.
꽃잎만 예쁜 게 아니다. 나무 아래 사진 찍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진정 예쁘다. 아기들도, 다른 어른들도 보기 좋지만 그래도 청춘들이 가장 예쁘다. 그들이 품어내는 젊음과 웃음이 가득한 얼굴이 빛난다. 잠시 벤치에 앉아 저 멀리 사진 찍느라 깔깔거리는 딸들을 바라본다. 여전히 예쁘고 빛난다. 봄마다 4월이면 찍는 벚꽃 사진을 마치 생애 처음인 듯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자태를 벚꽃을 함께 담으려는 모습이 애틋하기만 하다.
꽃만큼 예쁜 아이들이 꽃길만 걷기를 소망해 본다. 아이들의 청춘을 바라보다 불현듯 나의 20대를 떠올려보니, 가만... 벚꽃이 없다. 사진에도 기억에도 벚꽃이 없었다.
3월 만개한 교정의 목련을 교실 창문으로 바라보며 아이들과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수업을 잠시 멈추고 시선을 창밖으로 이끈 것은 나였기에 너무 예쁘지? 아름다움을 감상해 보자. 근데 너희들 눈에 꽃이 들어오니? (아니요) 왜? 너희가 꽃이라서?
아이들과 웃음으로 끝난 대화였지만 정말 아이들은 꽃처럼, 꽃만큼, 꽃보다 더 꽃 같은 얼굴들이다. 그래서 스무 살인 나의 눈에도 꽃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대학 친구들과 사진 한 장 정도는 찍었을 법한데, 대학 교정에 분명 벚꽃이 휘날렸을 텐데... 아무 기억이 없다. 사진 하나 없다. 봄마다 울리는 그 노래라도 있었으면 달랐을까?(아쉽게도 그 노래는 내가 마흔이 넘었을 때 세상을 벚꽃엔딩으로 물들였다)
유난히 식물 바보로 살아온 20대였지만 벚꽃을 모르고 지나왔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너무 바빠서? 너무 우울할 때라? 아니면 정말 내 청춘이 꽃보다 더 예뻐서? 그럼 내 또래 친구들은?
겹벚꽃이 어김 없이 피었다.
겨울의 찬바람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결국에는 봄바람을 이겨내지 못한다. 봄바람 타고 벚꽃잎이 흩날리며 우리 마음도 다시 춤을 춘다. 혹독한 겨울을 잘 이겨낸 나의 마음을 계절이 알아주는 듯해서 고맙고 흡족하다. 봄이 없다면, 봄꽃이 피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아파하고 쓸쓸해하고 많은 눈물을 흘릴까? 자연의 위대함이야 우리 인간의 마음으로는 절대 헤아릴 수 없지만 나이를 먹으니 느낌은 조금 알아가는 듯하다. 계절이 힐링이라는 말이 다시 다가온다. 햇빛, 바람, 하늘, 나무들이 나를 자라게 하고, 깨닫게 하고, 감사함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 준다는 것도 조금씩 알아간다.
50대에 깨닫게 하려고 20대에는 모르게 지나가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20대에는 보는 눈이 좁아서, 나만의 삶에 치중하느라, 꽃보다 예쁜 것들이 많아서... 였다고 나만의 20대를 돌아본다.
매일 만나던 그때 친구들이 꽃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안부를 전한다. 함께 찍은 꽃 사진 하나 없는 친구들이 다정한 이들과 꽃을 찾아 사진을 찍어 밝은 웃음을 전한다. 우리의 청춘에는 우리라는 꽃이 있었지, 라며 답글을 보내본다.
벚꽃이 사라져 아쉬워했더니 철쭉이 통통하게 출렁인다. 탐스럽게 퍼져있는 철쭉이, 송이송이마다 향기를 품고 허리쯤에서 인사를 건넨다.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색깔과 높이로 꽃송이를 만드는 봄나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청춘이 아닌 50대에게 청춘, 꽃을 선물하며 웃을 수 있게 하니 고맙다고! 봄이 주는 눈호강만으로도 한결 살맛이 나게 해 주니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