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리와 남덕의 사랑, 그리고... 그림과 편지

영화 '이중섭의 아내'를 보고

by 도시락 한방현숙

♡ 1916년 생의 필체와 그림이 이렇게 세련될 줄이야!

♡ 서귀포 이중섭 문화의 거리 끝, 이중섭이 살던 곳! 그리고 이중섭 미술관.

♡ 코로나 19 전, 제주여행 때 그 거리에서 샀던 중섭의 엽서 그림이 아직 선명하다.

♡ 영화에서 보니 제주 셋방은 더 남루하고 비좁아 보였다, 사진만 덩그러니 놓인 채.

♡ 예전 국정교과서에 이중섭의 전기문이 실려 있어 전국의 아이들이 중섭과 '황소'를 알았다.

♡ 전기문을 통해 '오산학교, 임용련, 일본 문화학원 유학, 태양상, 민족의식 등'의 정보를 알 수 있었다.

♡ 39살에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영양실조에 걸려 죽다니, 그렇게 그리워하던 가족을 두고 어찌 떠났을까!

♡ 턱이 긴 조선 남자를 여자는 '아고리'라 부르고, 그 남자는 발가락이 아스파라거스 닮은 일본 여자에게 '이남덕'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

원산, 부산, 제주도, 통영 그리고 일본 동경에서의 겨우 일주일의 만남!

♡ 사랑하는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 태현이와 태성이,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 죽어서야 그 명성을 떨치는 가난한 예술가의 운명? 생명과 바꾼 것일까?

♡ 34살에 혼자된 아내는 두 아들을 키우며 어떤 세월을 견뎌왔을까?

♡ 다리와 손이 떨리는 아흔 넘은 아내는 아직도 설레는 미소로 중섭을 떠올린다.

♡ 갑자기 전해 들은 남편의 부고, 그리고 수십 년이 흘러 휠체어를 타고 처음 보는 남편의 그림, '황소'를 마주하고 있다.

♡ 예술가에게 창의성은, 말해 무엇하리! 생명과도 같은 독특함.

♡ 가슴 시린 작품, 아름다운 은지화!

♡ 극도의 가난은 화가 이중섭을 어떻게 망가뜨렸을까?

♡ 아이들에게 보낸 손편지마다 그려진 그림과 글씨들, 내용은 감동적이고 색채는 정겹다.

♡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벌거벗은 아이들의 엉덩이와 가족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 한글로 쓰인 손편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 그토록 예쁜 신여성, 여자는 이렇게 할머니가 되었다.

♡ 한일수교가 맺어지기 전이라 바다 건너 가까운 곳을 왕래할 수 없었다니, 그래서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

♡ 신경이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라 항상 남편의 안부를 걱정했다, 고 아내는 말한다.

♡ 미술 감각과 디자인 실력이 뛰어났던 남덕!

♡ 모국어의 위력, 아버지가 아닌 엄마가 조선 사람이라면 아들은 한국말을 할 수 있었을 텐데...

♡ 늙은 어머니, 일본의 좁은 침실과 어지러운 주방!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 자기를 드러내는 독특함을 찾아내는 것이 예술가의 길인가 싶다.

♡ '길 떠나는 가족'과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나는 이 그림이 참 좋다.

♡ 글과 그림에 가득 담아 표현한 사랑이 수십 년간 살아 감동을 준다.

♡ 2022년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으로 <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이중섭 전시회가 열리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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