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하는 방법 그리고 도자기 이야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혼자 여행 일정을 무슨 기준으로 짜냐는 질문을 들었다.
나 100% P로서 철저히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기준으로 여행지를 결정한다.(그렇다고 여행지를 꼼꼼히 공부하거나 촘촘한 계획을 짜는 건 아니고…)
예를 들어보자면… 어제 도착한 이곳 드레스덴은 오래전부터 끊어질 듯 안 끊어지다 끊어져버린 인연의 SNS 피드 때문에 오게 되었다.
모올래 공개 계정이었던 피드를 염탐하는데, 그가 드레스덴의 군주의 행렬 사진을 올리며 벅차했던 글을 봤던 것이 꽤나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
군주의 행렬(Procession of Princes)은 이곳 작센 지방을 다스렸던 후작, 공작, 선제후 등등의 모습을 순서대로 그려낸? 구워낸? 벽화이다.
원래는 금과 보석 등으로 장식된 벽화였는데, 풍화와 세월을 맞아 보수를 거쳤고, 1900년대 초반 인근 마이센 도자기 공장에서 만든 타일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구워낸 벽화라고 표현해 봤다.
그렇다면 도자기 이야기를 해보자.
1600년 즈음까지 세계에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국가는 딱 둘이었다. 명과 조선. 때문에 당시 유럽으로 넘어간 중국의 도자기는 최고의 명품이었다.
Chiana는 중국이자 도자기란 뜻이기도 하다. 투박한 토기, 도기를 사용하다가 곱디고운 자기를 처음 접한 유럽사람들에겐 그 자체가 중국이란 유니버스였을까?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도공을 잡아가 도자기를 만들도록 했고, 큐슈의 아리타 지역에 자리 잡은 도공들이 만든 중국의 것을 모방한 도자기를 유럽에 판매했다.
이렇게 중국과 일본에서 넘어온 귀하디 귀한 도자기는 ‘하얀 금’이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넘어온 아름다운 도자기라는 유니버스를 갖고 싶었던 이가 바로 드레스덴의 군주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였다.
인근 마이센에서 유럽 최초의 도자기 생산에 성공한 그는 진정한 도친자였으며, 이곳 드레스덴을 독일의 피렌체로 만들었다고 한다.
도자기를 만들 곳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적합한 흙뿐 아니라 적정 온도와 습도 등이 받쳐줘야 문제없이 고온의 가마에서 빚어진 것들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정도의 열정맨이기에 ‘강건왕’이라는 닉네임이 붙었으리라.
박물관은 내일 갈 예정이고(사실 힘들어서 미룸ㅋㅋ) 오늘은 군주의 행렬 인근에 있는 마이센 매장에 다녀왔다.
오 마이갓 설마 저 숫자들이 가격??? 아리타의 가키에몬 가마 매장에서 호들짝 놀랐던 그때가 뒤통수를 후려갈기듯 떠올랐다.
어쩐지 매장 사장님이 “마담~ 궁금한 것 있음 언제든지 물어봐용~”하고 여유진 응대를 해주신다. 그의 모습 뒤로 가키에몬의 현 오너의 고급진 자태가 불현듯 오버랩되었다.
마이센의 화려하고도 다양한 컬렉션들을 구경하던 중 하얀 커피컵 앤 소서가 눈에 들어왔다. 손잡이 부분이 독특하고 잡은 느낌 또한 색다르고 좋았다.
가키에몬 가마에 갔을 땐 녹차를 대접 받았었는데, 입에 닿아 넘어가는 그 넘김이 일품이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마이센 찻잔의 넘김새(?)가 어떨지 궁금해졌다.
가격도 가격이고, 이고지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언젠가 사러 다시 와야지’ 라는 나 나름의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며 매장을 나왓다.
아아 시절인연의 피드로 시작해서 위시리스트로 다시 세운 여행 계획으로 끝난 글이 되었다.
참고로 언급된 아리타는 동아시아사 교과서 한 켠의 조선인 도공 이삼평 신사의 사진을 보고 훌쩍 떠났던 여행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하나의 이미지로 여행을 떠나는 나임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