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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익상 Feb 28. 2022

우리는 평화를 요구한다!

베라 무히나와 우리의 목소리

Требуем мира! / We demand peace! / 우리는 평화를 요구한다!


‘소비에트 조형예술의 여왕’으로 불리던 조각가 베라 무나(Ве́ра Му́хина)가 1950년에 동료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분쟁 발생 지역에 보낼 계획 하에 여섯 파트를 따로 조형한 후 한 자리에 배치한 형식의 작품으로, 한국전쟁이 멈추기를 기원하며 만들어졌다.


올림픽 시상대처럼 단이 나뉜 받침대 위로 총 8인의 형상이 보인다. 남자 넷, 여자 둘, 아이 둘. 하지만 우측 낮은 단의 여인이 안은 아이만은 죽어 있다. 이 여인과 죽은 아이는 전쟁의 피해자인 한국인이다. 가운데 세 남자는 독일군 깃발을 밟고 서 있는데, 2차 세계대전을 이겨낸 이들이자 현 인류의 세 인종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반면 좌측 낮은 단의 남자는 왼팔이 없고 눈이 멀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병사를 통해 전쟁의 참혹한 피해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운데 단상의 앞에는 한 여성이 아이를 안고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려보내고 있다. 인류의 평화로운 미래를 상징한다.


베라 무나는 1889년 제정 러시아 치하의 리가(현 라트비아 수도)에서 태어났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무나는 아버지와 함께 크림 반도의 페오도시야로 이주해 유년기를 보냈다. 1904년 아버지까지 여읜 후에는 쿠르스크의 친척집에서 성장했고, 이후 모스크바에서 예술 교육을 받았다. 1917년 10월 혁명과 함께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볼셰비키에 의해 소비에트 연방이 준비되던 시기, 무나는 조각가로서의 커리어를 걷는다. 소위 기념 프로파간다(monumental propaganda)의 핵심인 기념 조형물을 만들기 시작한 그녀는 1920년대 후반들어 소련에서 가장 주목받는 조각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1943년에는 ‘소련 인민의 예술가’로 인정받았고, 1941~1952년 사이에는 무려 다섯 번이나 스탈린 상을 수상했다. 1953년 <조각가의 생각>이라는 책을 출간한 직후 10월 6일 모스크바에서 협심증으로 사망했다. 30여년이 지난 1985년, 무나가 유년기를 보냈던 도시 페오도시야에 베라 무나 박물관이 세워졌다.


소련의 기념 프로파간다에 봉사했던 무나의 작품 가운데는 막심 고리키, 차이코프스키 등의 동상이 유명하다. 하지만 가장 국제적인 주목을 얻은 작품은 <노동자와 콜호즈 여인 Worker and Kolkhoz woman>일 것이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소련에 1등의 영예를 안긴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망치와 낫을 들고 있는 25미터 높이의 스테인레스 스틸 조형물이다. 프로파간다로서도 예술로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박물관을 거쳐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바티칸 미술관 소장품인 <소작농 여인 peasant woman>도 굉장히 멋진 작품이다. 지금 눈으로 보면 페미니스트 스웩이 느껴질 정도다. 작품이 아닌 다른 형태로 예술가의 멋짐을 뽐낸 예도 있다. 그녀의 고향인 리가에는 <자유기념비>(Freedom monument)라는 엄청난 조각상이 있는데, 1940년 소련이 라트비아를 병합하고 10년도 지나지 않아 스탈린 동상을 세운다고 이 조각을 허무려는 계획이 진행되었다. 이때 무나가 당의 계획을 반대하고 열심히 설득한 덕에 자유기념비가 라트비아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저 당의 기념 프로파간다만 실행한 예술가는 아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작품과 삶의 기록이다.


다시 <우리는 평화를 요구한다!>로 돌아오자. 이 작품은 지금 모스크바 무제온 예술공원에 설치되어 있다. 급하게 만든데다 이동 중 파손된 부분이 있어서 복원을 거쳤다. <우리는 평화를 요구한다!>는 일생 동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무나에게 또다시 들려오고야 만 전쟁 소식에 그녀가 취한 예술적 대응이자 평화적 프로파간다였다. 그렇게 그녀가 비둘기와 여자와 아이로 그려냈던 평화로운 인류의 미래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제정 러시아와 거의 같은 국기를 쓰는 러시아 연방에 의해서. <우리는 평화를 요구한다!>가 세워져 있는 땅 모스크바의 푸틴에 의해서. 그녀의 작품도 그녀가 지나친 땅들도 모두 질곡 속에 있다. 무나 박물관이 있는 페오도시야는 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에 속했으나 2014년부터 독립을 선언해 러시아 연방 크림 공화국의 땅이 되었다. 무나가 10여년 동안 살았던 쿠르스크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요지로 활용되고 있다. 그녀가 손수 지켰던 리가의 자유기념비만은 아직 건재하지만, 푸틴이 만지작거리는 핵 카드가 던져지는 참극이 발생한다면 그곳도 안전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 어느 곳도 무너지지 않았다. 복원과 재건을 거친 <우리는 평화를 요구한다!>는 크렘린에서 차로 10분 떨어진 무제온 예술공원에 버티고 서 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도 힘들지만 버티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 중에도 전쟁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세계 곳곳에서 연대와 전쟁 반대의 연명이 이어지고 있다. 아바즈의 전쟁을 멈추라(https://secure.avaaz.org/campaign/kr/stop_the_war_loc/) 서한에 서명한 인원이 거의 2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70년 전 무나의 유지를 이은 이들이 외치고 있다.


우리는 평화를 요구한다!

We demand peace!

Требуем мира!


참고자료 및 사진 출처(누락분은 확인하는대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위키피디아 영어판: Vera Mukhina, We demand peace!

https://prabook.com/web/vera_ignatyevna.mukhina/3753241

http://russia-ic.com/culture_art/history/1894

https://vsuete.com/demand-peace-sculptural-composition-mukhina/

http://www.alisetifentale.net/article-archive/2016/11/5/the-peasant-woman-leads-the-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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