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일이 내가 아빠라니

<세상 참, 살다보면>

by 왕태일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여되는 '역할'은 참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시작이 된다. 나의 경우엔, 부모님의 세상 소중한 늦둥이 아들이 되었고, 누나의 말썽꾸러기 남동생이 되었고, 시골 할머니의 아낌없이 모든 걸 주고 싶은 소중한 손자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을까? 학생 때는 반장이 되기도 했고, 대학 때는 학부의 회장도 되었고, 성인이 된 뒤로는 한 여자의 남자 친구로서 그리고 직장에서는 작은 그룹을 운영하는 팀장, 여러 팀을 운영하는 본부장이 되면서 그에 맡는 다양한 역할을 통해 마땅히 하여야 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중이다.


역할(役割), 또는 사회적 역할(社會的役割)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자, 기대되는 행동양식을 의미한다.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의도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맡아서 살아가게 된다.

특히, 내 인생에서 그리고 현재 가장 막중한 역할을 부여받은 게 있다. 바로 한 여자의 남편이자, 가장이 된 것이다. 2019년 9월 28일 결혼 후, 아내가 생겼고 #부부스타그램 #부부의세계 해시태그를 남발하며 평범하지만 새로운 역할에 충실하게 지내는 중이기도 하다.


사실, 대담한 통솔자(ENTJ)의 성향을 가진 나는 외향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보니, 의도적인 역할을 많이 맡을수록 에너지가 샘솟고, 즐거움이 두 배가 되는 참,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문제? 아니지, 문제라기보다 상상도 하지 못했고, 처음으로 내가 맡아서 할 수 있을까? 시작부터 긴장되고, 막중한 책임을 느끼게 된 -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건 바로, 아빠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 바야흐로 6월 15일, 오전 11시. 나는 아빠가 된 것이다. 정확히는 임신 6주 차, 예비 아빠인 것이다.

서른아홉 살, 삼십구 년을 살면서 아빠가 된다는 건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일까 싶지만, 의도적인 역할 부여라고 하는 것이 적당한 설명이 될 거 같다. 한 살 많은 나의 아내와는 결혼 2년 차가 된 지금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결혼해보니 이렇게 좋은 걸 왜 우리는 늦게 만나게 되었을까, 조금 더 젊었을 때 만났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둘만 있어도 이렇게 좋은데 아이를 가져야 하나? 행복한 아우성을 외치고 있던 중이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역할'이라는 건 변화무쌍했던 걸까. 결혼하고 잘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에게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 것이다. "내가 아빠가 된다는 것"은 새롭게 태어나는 한 인간의 성장을 책임져야 하고, 나도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올바른 길로 안내를 해줘야 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할 텐데, 이런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을지 꽤 겁을 먹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로 보통 집 그리고 가까운 사무실을 오고 가며 지내는 아내가 혼자 있는 게 신경이 많이 쓰였다. 마침 처남네 딸이 태어났는데, 첫 조카라서일까? 아내가 이렇게 아이를 사랑하는 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리 핏줄이라지만 애정이 상상 이상이었고, 랜선 고모답게 멀리 떨어진 아이에게 선물공세도 이어졌다. 하필(?) 신도시에 살고 있다 보니 너무나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을 매일 만나게 된다. 멋진 유모차에 푹 안겨있는 갓난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자주 마주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리 소문 없이 우리 부부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의도적인 역할을 부여받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아빠;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


되돌릴 순 없다. 축복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세상 행복한 지금 그리고 앞으로를 기대하면 되겠다 싶다. 모두의 축하 메시지를 즐기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아이가 태어나고 "아빠~!"라고 불리는 순간. 진짜 아빠의 역할이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근데 '아빠'라는 개념이 참 신기하더라. 역할도 다양하기 때문인데, 기본적으로 아빠는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고, 자식의 남성 부모를 의미한다. 그럼 뭐가 또 있을까 싶은데, 장인, 시아버지를 의미하는 '아버님'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높여 '선친', 조부모님은 '아비, 애비'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한 가정을 지키는 '가장', 생물학적 '생부', 새아버지를 '의붓아버지, 계부'라고 한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호칭들인데 이 또한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이 다르고, 주어진 책임 또한 다르다. 뭐 어쨌든,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그냥 '아빠'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좋다. 나는 '아빠'가 되었다. 벌써 23주 차가 지났고, 작지만 꼴록꼴록 태동을 느끼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다짐을 해야겠다. 내가 아빠가 될 수 있는지는 이미 정해진 거 같고, 좋은 아빠, 멋진 아빠, 친구 같은 아빠, 세상 정직한 아빠, 잘생긴 아빠?! 뭐가 되든 아이에게 아빠의 역할과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주고 싶다.


난, 이제부터 대한민국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듬직한 [아빠]다.


왕태일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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