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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태일 Jul 27. 2023

사무실을 내놓았습니다

나는 독립꾼입니다. ep.13



오전 9시가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서재에 놓인 노트북과 배터리, 마우스, 외장하드를 부산스럽게 챙긴다. 출근 준비를 이렇게 간단했다. 미팅이 있는 날이면 얼굴부터 발끝까지 신경 쓰느라 시간이 꽤 걸리지만 평소라면 초간단 출근룩을 지향한다. 가끔은 씻지 않을 때도 있다. 걸어서 7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회사가 가깝게 위치해 있기 때문에 어쩌면 긴장의 끈을 조금은 내려놓은 것도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유니폼 같은 조거팬츠를 입고, 네이비 컬러의 맨투맨과 롱패딩을 입고 사무실에 걸어왔다. 아침 찬 공기가 굉장히 반가웠다. 따뜻한 집안의 공기가 아늑했다면, 바깥의 겨울은 답답했던 머릿속을 맑게 정화시켜주는 느낌이었다.


''터벅터벅''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워졌다.

회사의 현관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조금은 낯설었다.



"사장님, 잘 지내셨죠?

사무실을 내놔야 할 것 같아요"


그랬다. 사무실을 내놓기로 했다.

올해 봄, 약간 쌀쌀했던 3월에 계약을 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4계절을 보냈다.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후회 없이 한 시즌을 보낸 것 같다. 창업 후 강남에 위치한 공유 오피스에 입주하고 싶었지만 코로나와 육아 병행으로 집 근처를 계약했었다. 정말 편했고, 자연경관이 좋아 마음까지 즐거웠다. 아쉬운 게 있다면 결국 '사람'이었다. 오피스텔이라 나만의 아지트 느낌은 굉장히 남부러울 거 하나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특히 겨울이 되면서 '에너지'가 조금 빠지는 기분이 반갑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사무실에 '이름'도 부여했다.

674office. 이유는 간단했다. 674호였기 때문이다.

비밀번호는 0215, 나의 딸이 태어난 날로 정했다.


@우리는 왕조시대

이름을 붙인 이유는 '생동감'을 주기 위해서다. 보통은 '혼자' 출근해서 온종일 보내는 곳이기 때문에 따뜻한 조명, 푸른 나무와 여러 식물을 키우며 '공존'하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다행히 여러 식물들은 계절이 바뀌어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 매일 출근하면 환기를 시켰고, 강렬한 태양빛과 바람 그리고 청소를 통해 674office는 여전히 나만의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었다.


오늘은 나의 아지트에 변화가 생겼다.


'사장님, 674호인데요. 사무실을 내놔야 할 것 같습니다.


사무실을 내놓는 보통의 이유는 '이사'일 것이다. 사업이 잘 되든, 아니든 어디론가 가야 할 테니 말이다. 이번엔 좀 달랐다. 어디로도 가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 계약 해지였다. 누군가 이곳에 빨리 들어오길 희망하는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내놓기로 했다.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아내와 충분히 논의했고, 앞으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해야겠지만 디지털 노매드로 당분간 보낼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올 초에 창업 결정할 때쯤엔 노매드 라이프를 보내고자 했었다. 서재에서 일하거나, 카페에서 일하고 싶었다. 노트북만 있으면 움직일 수 있는 '지식사업' 중 하나인 '광고 대행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아'로 인해 서재에서의 일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어쩌면 핑곗거리를 찾았던 거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무실'이 과연 얼마나 필요했을까 싶다.


좋은 점은 심플했지만 강력했다. 심적 안정감이 있었고, 물리적 사무 공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회사'의 모습은 충분히 갖췄기 때문이다. 책상과 의자, 미팅 테이블과 의자, 여러 조명과 화분, 커피, 티 등이 회사의 유형 자산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쉬운 것도 분명했다. 심리적인 거리가 있는 '미사강변신도시(하남)'이라는 위치였다. 오고 싶어 하는 지인들도, 초대하고 싶은 파트너사에게도 약간의 '부담'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쁘면 사무실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급하게 서재에서 업무를 처리하거나, 외부에서 미팅하고, 끝나면 카페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장인들 틈에서 업무를 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월세 및 관리비 약 1천만 원이라는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분명 좋은 결과로 월세 부담은 없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꽤 근사한 신축 오피스텔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과했던 것 같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남겨진 건 적막함이 흘렀던 674호는 674office가 되어 아늑하고, 돈을 벌어다준 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되어 이별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는 왕조시대


''사장님, 입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요''


최근 몇 개의 팀이 674office를 방문하고 돌아갔다.

학생도 있었고, 가족도 있었고, 사업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인터폰 방문에 기록된 '문 앞'에 출입했던 사람들이 보였다.


어제였다. 여유롭게 자료를 찾고, 커피를 마시던 중 부동산에서 급하게 공간을 보러 온 것이다. 

''죄송해요. 계셨는지 몰랐네요. 좀 들어가서 봐도 될까요?''

부동산 사장님인 세상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띠며 초인종을 눌렀다.


작은 공간엔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5명의 남녀 성인들로 가득 찼다. 찬 공기가 여전히 외투에 묻은 채 따뜻했던 나의 공간을 메우기 시작했다. 여자분이 지낼 공간을 보러 온 것 같았다.


''정말 깨끗하게 사용하셨네요'' ''뷰가 나름대로 괜찮은데요'' 등 여러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사무실을 내놓는 건 나였기 때문에 조금의 호객행위를 했다.


''1년 보냈는데, 계절감 느끼기가 너무 좋습니다. 비데는 사용하지도 않았어요. 매일 청소하고 닦았습니다. 신발장도 붙박이장도 모두 새 거예요. 세탁기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이다.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로봇처럼 줄줄 내뱉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면,


오늘 연락을 받았다. 약 10일 뒤에 입주 의사를 밝혔다고 말이다. 생각보다 빨랐다. 곧, 새해가 되고 1월 초에 계약 종료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성스럽게 닦으며 사용했던 가구와 화분을 처분해야 했다. 중고 장터를 통해 싼 값에 팔아야만 처리가 가능할 것 같았다. 


''기분 괜찮아?'' 아내가 톡으로 물었다. ''이왕 나가는 거 빨리 종료하면 좋지 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대답했다. 사실 사무실을 내놓고 나서 괜히 벽에 걸린 액자도 바라보고, 열심히 청소했던 바닥도, 창문도, 화장실도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운 거다, 아쉬운 거였다. 그래도 '공동육아'하다가 '독박육아'를 하면서까지 사무실을 얻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8시간 꽉 채워서 지낸 곳이었다.


사무실을 내놓는다는 건, 망해서일 수도 있고, 성공해서일 수도 있다. 확장일 수도 있고, 환경에 변화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단지 외부의 시선이고, 내가 빠진 거였다. 연말이 되고 새로운 선택이 필요했다. 사업은 나름대로 순항했지만 나의 회사, 가치, 설루션, 비전, 그리고 조직 문화 등 앞으로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 조금은 아쉬웠다. 솔직히 실패했다.


직장 다닐 때보다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돈을 조금 더 벌었다는 건 긍정적인 환경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의미가 떨어졌다. 개인 중심으로 일하는 건 '프리랜서'와 다를 바가 없다. 팀이 되어 생각을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비전을 통해 회사를 키우고, 새로운 사람이 자리를 채워야 했다. 그리고 사업가로서 무언가의 가치를 남기고, 설루션을 만들어내야 했다. 하지만 아쉬운 결과였다. 


직장 다닐 때와 하는 '일'이 동일했기 때문이다. 메인 직무가 흔들리니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쉽게 이어갈 수가 없었다. 오롯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내놓는다는 건 그래서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감성에 젖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괜히 울컥하면 창피할 테니까 말이다. 사업가로서는 1차 실패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확장'이 아닌 '비움'을 선택했다.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재개'Re.start에 가깝다. 조만간 다가올 디지털 노매드의 일상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또 새해라서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to. 입주자분께

이곳은 674office가 첫 꿈을 안고 시작했던 공간입니다.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따뜻함과 의미 있는 시간'이 기록된 곳입니다. 1년 동안 아끼고, 잘 사용했습니다. 당신의 '의미'로 채우시고, 성공하세요!


우리는 왕조시대

왕태일 DREAM | MARKETING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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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립꾼입니다. Ep.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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